그녀와의 한 판 승부
팔꿈치가 어제보다 더 욱신거렸다. 팔꿈치를 중심으로 120도 정도 벌리면 그런대로 괜찮은데 180도로 펼 때 뻐근함과 함께 아이구구~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9시부터 여는 한의원에 8시 20분부터 가서 줄 서 있기로 했다. 아침부터 쨍한 햇빛을 피해 가며 도착했을 때 이미 7~8명이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곳에 누워있다 보면 들려오는 소리들이 있는데 대개 골프 치다 어깨 다친 사연, 배구하다가 손가락 삐끗한 사연 등 운동하다가 다쳤다는 이야기였다. 그때마다 '운동을 왜 하는 거야? 건강하자고 하는 거 아니야?' 생각했다. '건강하기 vs 다쳐서 안 건강하기'를 사이에 두고 내기하자는 것인지 혼자 비웃었다. 꼭 우리 아빠가 담배도 피우면서 약물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 내가 지금 오른쪽 팔꿈치를 부여잡고 여기에 누워있다니.
1년을 배운 탁구는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다. 짜릿한 경기의 세계로. 배운 것을 하나씩 시도해 보다가 점수를 얻었을 때 머리 뚜껑이 열릴 정도의 통쾌함이 있었다. 실력부족으로 초등학생들과 경기하다가 희망부 어른들로 영역을 넓혀갔다. 비슷한 실력이 맞붙었을 때 턱걸이로 이기거나 아슬아슬하게 졌다. 어른들과의 경기는 이기거나 지거나 크게 상관없었다. 어차피 내 실력에는 져도 그만 이기면 완전 감사한 일이니까.
문제는 그녀와의 경기였다. 초등학생 5학년 그녀도 나와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었다. 집에서 30분 주는 핸드폰 사용 시간에도 유남규나 신유빈 탁구 영상을 보며 분석하고 있다는 말이 들려왔다. 그녀는 나의 최대 라이벌이다. 허점 많은 내 공은 그녀에게 두드려 맞기 바빴다. 그 작은 공을 얼마나 싸납게 내리꽂는지... 내가 내리꽂히는 것 같았다. 내 눈은 휘둥그레졌고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이 웃긴지 씩~웃곤 했다.
"다음에는 연습 많이 해와서 내가 또 도전한다. 긴장하고 연습해 와."
우스개 소리로 마무리 인사할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씁쓸함이 올라왔다. 말없이 순할 것만 같은 야리야리한 그녀는 속에 대포를 감추고 있었다.
그날도 탁구장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나를 기다린 듯하였다. 피할 수 없는 한 판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다양한 서브로 판을 흔들고 가까스로 그녀의 공을 받아냈다. 온 땀 흘려 세트 스코어 2:2. 마지막 세트에서도 듀스 상황이 계속 됐다. 서로 온 힘을 다해 그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내 마지막 서브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서 겨우 그녀를 이겼다. 진심으로 뛸 듯이 기뻤다. 그때 그녀는 손가락으로 왔다 갔다 세어보더니 자기 서브 공격 차례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효라니. 이미 경기가 다 끝난 상황이라서 황당했다. 5학년 그녀와 진심으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너 그래서 이거 승복 못하겠다는 거야?"
"네. 저 못해요."
내가 여유 있게 이길 수 있다면야 "그럼, 이거 무효로 하고 다시 하자." 했겠지만 자신이 없었나 보다. 그 말은 차마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이긴 건데... ' 주변의 눈치도 보여서 쉬었다 다시 하기로 하고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oo야, 그래도 이모 많이 늘지 않았어?"
"아니요, 별로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동안 흘렸던 땀들이 데모할 판이었다.
"나 그래도 대회에서 2승도 했다고."
"상대가 약했나 보죠."
구차하지만 MBTI(성격유형검사 도구)까지 데려와서 나는 F, 감정형임을 강조했다. 그녀는 완벽한 T, 사고형이었다. '난 어른이다.'를 혼자 되뇌었다. 심호흡을 하고 네 덕분에 대회에서 2승했다며 그녀에게 음료수 하나를 급히 사서 먹였다. 쉬었다가 공을 왔다 갔다 하는 렐리 연습을 했지만 쉽사리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 후로도 그녀는 나와 계속 경기를 하고 싶어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새로 배운 훅서브를 써먹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고 했다. 내가 모임이 있어서 못 가면 그 이모 언제 오냐고 여러 번 관장님과 남편에게 물었단다.
나도 그녀처럼 강한 공격을 성공하고 씩~웃고 싶다. 허둥대는 그녀의 모습 뒤에서.
탁구장 한쪽에는 '가나다라 탁구예절'이 적혀있다. 가르치는 입장이면 성심으로 지도하고, 나보다는 하수라고 성의 없이 치지 말며... 이런 식으로 가나다라~~ 타파하까지 탁구예절이 정리되어 있었다.
어디를 놓치고 있었을까. 마지막엔 웃으면서 인사하고 악수하며? 파트너를 존중하여 칭찬하고 격려하며? 하수들은 고수들의 앞선 기술 경청하세? 어디 즈음일까.
그녀를 이기고 싶어, 있는 힘껏 탁구공을 내리치다가 오른쪽 팔근육이 아프기 시작했다. 견디다가 팔꿈치까지 쑤셔서 오늘 다섯 개의 침을 맞고 전기치료 자국을 안은채 집으로 돌아왔다. 1년을 치던 탁구. 왜 갑자기 이럴까 싶어 "왜 이런 걸까요?" 묻자 한의사 선생님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웃으며 "힘을 과하게 쓰셔서 그렇지요." 했다.
그렇다. 힘을 과하게 쓰고 있었다. 내 안의 어린아이가 총출동해 버렸다. 내 땀의 열매를 멋지게 알리고 싶었다. 어린 시절, 이겨야만 존재할 것 같은 내가 어느새 다시 튀어나와 버렸다. 시큰거리는 팔꿈치를 만지작거리며...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