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는 받고 왔니?ㅎㅎ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2월 중순에 귀국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3월에 복직했으니 벌써 두 달이 지났다.
그 사이 나는 새로운 집을 구했고, 새로운 팀에 합류해 두 번의 월급을 받았고,
석사학위 논문이 'merit'으로 통과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작년 하반기 논문 제출을 마치고 6개월 가까이 유럽, 아프리카, 남미를 돌며 여행하다가
중국 운남성과 태국 방콕을 거쳐서 푹 쉬다 한국엘 들어왔는데
오자마자 한국은 코로나바이러스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2월만 해도 영국에 있는 친구들이 나를 걱정했었는데
이젠 내가 회사도, 펍도, 카페도 나가지 못해 답답하다는 친구들을 위로하는 입장이 됐다.
주변에선 석사공부도, 6개월간의 여행도, 안전하게 마치고 한국에 귀국해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정말 그런것 같다. 영국에 있는 내내 원화강세 덕분에 파운드도 저렴했고 아픈 곳 없이 잘 있다 왔다.
솔직히 말하면, 내 인생에서 최고의 나날들 중 한 때가 아니었나 싶다.
만 9년간을 나름 정신없이 살다가 모두 내려놓고 떠난 영국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내가 사랑한 내 짝꿍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행복할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또 배웠다.
그게 가장 큰 성과라면 성과다.
내가 필요로 하는 책을 읽고 공부하는 재미를 알았고,
주변에 좋은 친구와 지적이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행복감을 느꼈다.
하루 종일 별다른 생각없이 도시를 걷고, 산을 오르고, 낯선 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온전히 쉬는 방법을 배웠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적확하고 고급스러운 영어로 표현하는 법도 배웠다.
좋은 소설과 책, 논문을 읽고 좋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깊이있는 여행을 하기 위해
영어로 제대로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진지하게 영어를 배우게 됐다.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도 나는 내가 배운 것들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중이다.
데이터분석은 여전히 주말 클래스를 등록해 실전을 익히면서 일에 접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영어는 '링글'이라는 서비스를 신청해서 대학에 재학중인 원어민과 소통하면서 재미있게 배우고 있다.
내 석사 전공, 여행하면서 겪은 일들, 시사에 대한 토론, 책 이야기 등을 나누면서 자유롭게 영어를 배울 수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 걸어서 출퇴근하고, 주말엔 산을 오르고,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운동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시간여유가 넘쳐서 시작했던 운동이지만 이제는 내 몸을 관리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이것만한 게 없다는 걸 알게 돼서 멈출 수가 없다ㅎㅎ
한동안 소소한 글쓰기를 멈췄었는데,
다시 시작해야겠다.
너무 지겹고, 지루하고, 무의미하고, 싫어져서 떠난 내 일상과 직장, 서울이었는데
1년반 만에 돌아온 이곳은 나에게 더이상 지긋지긋한 도시가 아니다.
그래서, 그동안의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그때 용기있게 떠났던 걸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