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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 Dec 20. 2018

네덜란드 낭만겨울여행

헤이그, 로테르담, 암스테르담


크리스마스 연휴 첫 여행지는 네덜란드다.

벨기에는 가봤지만 네덜란드는 처음이다. 큰 기대는 없었는데 생각보다 매력 넘치는 곳이었다.

미술이나 건축을 통해 문화적인 감성을 충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네덜란드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곳이다.


우선 미술관 이야기부터. 헤이그부터 로테르담, 암스테르담까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도시들에 있는 미술관은 꽤 인상 깊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비하면 소박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네덜란드 출신 거장들의 생애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 알차다.


먼저 헤이그에서 들른 마우리츠하이스(Mauritshuis) 미술관.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작품으로 유명한 곳이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소녀를 생기 있는 피부표현과 반짝이는 입술, 초점을 잃은 시선으로 아름답게 그려낸 그림 앞에는 항상 관람객들로 붐빈다.


하지만 이 미술관의 진짜 백미는 렘브란트가 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해부학 강의'다. 렘브란트는 초상화를 잘 그려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고 하는데 '해부학 강의'를 보면 죽은 이의 팔 힘줄을 들어올릴 때 느껴지는 긴장감, 해부를 제각기 다른 표정으로 쳐다보는 수강생들의 역동적인 표정, 죽은 이와 살아있는 사람의 전혀 다른 생동감 있는 피부 표현 등이 정말 인상적이다.


로테르담에선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을 가볼만하다. 루벤스와 렘브란트 두 거장의 작품을 비교할 수 있게 잘 전시해 놨고 모네, 드가, 고흐뿐 아니라 현대 설치미술도 볼 수 있는 꽤 스펙트럼이 넓은 미술관이다. 특히 루벤스가 거대한 작품을 그리기 전에 목판이나 종이에 먼저 그린 습작도 같이 전시돼 있었는데, 이런 천재적인 화가도 작품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구나 느끼게 했다. 간단한 습작이 아니라 구도와 디테일이 모두 살아있고 채색까지 한 또 하나의 작품이었다. 작품을 향한 루벤스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로테르담은 미술관보단 사실 건축으로 더 인상깊은 도시다. 중앙역 건물부터 시작해서 도시를 걷는 내내 오피스빌딩이든, 아파트든 정말 특색있는 건축물이 즐비하다. 재래시장을 현대화한 마켓홀(Markthal)은 주거공간과 현대적인 시장이 교묘하게 어우러진, 꼭 한번 가볼만한 공간이다. 재래시장을 현대화하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하는 일이지만, 이렇게 로테르담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들르는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게 정말 인상적이다.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무한 자극한다.


마지막으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과 '레이크스 미술관(Rijks Museum)', '모코미술관(Moco Museum)'. 어디든 둘러볼 만한 가치가 있지만 최고는 역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모아 놓은 반 고흐 미술관이다. 꼭 미리 예약하고 시간에 맞춰(30분 정도는 여유를 준다) 가야 한다.


유럽 미술관을 좀 다녀보면 반 고흐 작품은 꽤 자주 만날 수 있지만, 그의 초창기 작품부터 죽기 직전에 그린 작품까지 모두 살펴볼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한 것 같다. 무엇보다 농부의 목가적이고 빈궁한 삶을 도화지에 담고 싶었던 27살 청년 고흐가 그린 작품과, 그가 프랑스 파리로 가 더 넓은 세상을 접한 뒤 아를에 정착해 독창적인 스타일을 꽃피운 작품들까지, 보다보면 그림이 아닌 고흐의 일생을 들여다보게 된다.


고흐는 그냥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 다른 화가들과 소통하고 일본미술에도 영감을 받는 등 부단히 노력한 화가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고흐만의 색채, 붓놀림, 감성은 그가 타고나서 어느날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고흐도 처음엔 자신이 존경하던 밀레와 비슷한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데서 출발해 서서히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간 것이다. 그 과정 자체가 무한히 감동적이다.


작품들 중에선 '고갱의 의자'가 인상깊었다. '고흐의 의자'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고흐는 의자를 통해 그 주인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한 달간 그린 그림들도 볼 수 있다. 수많은 영감을 자기만의 색깔로 소화해낸 열정적인 화가의 일생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레이크스 미술관에선 렘브란트의 '야경(Night Watch)'이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인기를 누린다. 모코미술관은 전시테마가 그때그때 바뀌곤 하는데 내가 갔을 땐 그래피티 화가로 유명한 뱅크시의 전시가 열렸다. 이 세 곳의 미술관이 모두 지척에 몰려 있기 때문에 본인의 취향에 따라 골라서 찾아가보면 좋을 것 같다.


미술관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다. 나는 미술관에 들를 때마다, 자기 색을 찾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던 화가들처럼, 나도 내가 가진 색깔을 찾아가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열정이 오랫동안 남아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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