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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정착'하기

어렵지 않지만 결코 쉽지도 않은,

by 니은
@카디프에서 머물 집으로 이사한 후 처음 장본 날.


2018년 9월 3일 카디프에 왔다. 살 집도 구하지 않은 채로. 런던 히드로공항에서 예약한 벤을 타고 150kg가 넘는 짐가방을 싣고 미리 예약해 둔 카디프 숙소에 도착했다.


학교에서 부엌달린 원룸 기숙사를 배정해 줬지만 수업 듣는 건물에서 꽤 멀었고, 거실과 방이 구분되지 않는 좁은 공간이 싫어서 다른 학생에게 양보했다. 학교 기숙사도 12개월 계약에 월 91만원(세금은 모두 포함)이니 그리 싼 편도 아니다. 런던이 아닌 지역의 대학들은 학부든, 석/박사든 학생들에게 기숙사를 거의 배정해주는 편이다. 다만 커플이거나 자녀가 있는 가족에겐 선택의 폭이 좁고 공간의 제약도 크다.


KakaoTalk_Photo_2018-10-27-09-24-57.jpeg @ 집 구하기 전 머물렀던 카디프의 호스텔

개강은 9월 24일, 20여일 동안 정착을 위해 집을 구하고 필요한 것들을 갖추기엔 빠듯한 시간이다. 'rightmove' 사이트에서 마음에 드는 동네, 집을 고르고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뷰잉(viewing)을 예약하고 집을 보러다니는 일과가 시작됐다. 업무처리가 늦은 영국에선 왠만하면 메일보다는 전화나 방문을 권한다. 마음에 드는 집을 보고싶다고 하면 보통 빨라야 다음날 오전, 오후쯤으로 약속을 잡아준다.


@ 카디프에서 구한 아파트의 부엌.

보통은 학기 시작 전 7~8월에 좋은 집들이 많이 나가고 9월은 매물이 귀할 때다. 계약기간도 최소 12개월 이상인 경우가 많다. 체류기간이 짧은 학생에겐 조건이 좀 더 너그러운 shared house도 괜찮다. 가구는 모두 갖춰진 furnished house가 좋고, 보안과 편리함을 원한다면 apartment를 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동네를 고르는 것은 그 도시를 얼마나 잘 아느냐에 달렸다. 카디프의 경우엔 시티센터, 뷰트공원 인근 pontcana, 로스공원 인근 roath, 학생들이 많이 사는 cathays, 바닷가 근처 cardiff bay, 젊은 직장인이나 외국인이 많이 거주한다는 canton 등 다양한 곳들이 있는데 가보면 동네마다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어떤 동네가 내 취향인지 빨리 아는 방법은 자전거를 빌려 직접 돌아다녀 보는 게 최선이다. 각 학교에서 직접 운영하는 부동산 에이전시가 있는데 그곳에 물어봐도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카디프에서 구한 아파트의 거실.

좀 더 고차원적인 정보를 원한다면, 구글이 있다! 'Census UK'를 검색하고 내가 관심있는 동네의 우편번호를 입력하면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국적, 성별, 나이까지 볼 수 있다. 좋은 학교가 있는 곳이 좋은 동네라는 명제는 여기서도 어느 정도 통하기 때문에, rightmove에 학교 검색을 활용해도 좋다.


서울에서 단독주택에 살았던 나는 영국에서도 예쁜 공원 근처에 있는 정원 있는 주택을 선호했지만, 이런 집들은 대부분 가구가 갖춰져있지 않고 방도 필요한 수보다 많아 고민 끝에 방 한칸 달린 도심 아파트를 택했다. 강의실까지 5분거리!


영국은 모든 게 느리지만 또 그만큼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마음에 드는 집을 골랐다고 해도 바로 계약하고 이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카페트를 바꾸고 벽을 칠하고 청소업체가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통은 집이 비어있어도 이사 날짜를 1-2주 여유를 두고 정하게 된다.


영국에선 세입자에 대한 'reference check'가 엄청 복잡하고 엄격하다. 영국 국적의 현지인이 보증인이 돼 줄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신분과 거주지, 소득, 직장, 신용상태를 증명해야 한다. 집을 보여주는 부동산 에이전시와 신용을 체크하는 회사가 따로 있을 정도다. 두 명이 이사할 예정이라면 각각 여권사본, 영문으로 된 은행잔고증명서와 재직증명서, 소득증명서, 한국에 있는 집 주소로 받은 세금고지서, 영국 학교 등록증명서, 영국 체류지 주소로 받은 세금고지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진심으로 비자받기보다 더 어렵다!


이걸 통과하는 방법은 최소한 6개월치의 월세를 보증금과 함께 미리 지급하는 것이다. 나는 12개월 계약이 아닌 9개월만 계약하자고 요구했기 때문에 전체 월세를 한번에 내고 들어가 살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내야할 서류는 여권사본, 영국 학교 등록증명서, 영국 체류지로 받은 세금고지서(단기숙소일 경우 결제내역)로 줄어든다. 이사 당일까지 집을 다른 세입자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한 holding fee를 500파운드 내고, 이사 당일날 fee를 제외한 나머지 보증금과 렌트비를 낸 후 짐을 옮겼다. 월세는 기숙사보다 40만원 가량 더 비싸다.

@ 카디프 아파트 침실.


이사한 후에는 또 다른 회사의 담당자가 와서 'inventory check'를 하면서 집 상태를 확인해준다. 그리고는 집주인이 관리를 맡긴 회사의 담당자가 우리집을 관리해주는 시스템이 시작된다. 굉장히 느리지만 체계적이다.


집을 구한 건 이제 시작일 뿐. 전기/수도/인터넷을 연결하고 은행계좌를 오픈하는 데 또 한참이 걸린다. 은행계좌는 Barclays에서 만들었는데, 미리 지점에 가서 약속날짜와 시간을 잡은 후 인터넷으로 학생계좌 신청서류를 작성해 제출하고 reference number를 받아 정해진 날에 다시 지점을 찾으면 된다. 약속잡는 데 보통 1주일, 카드 나오는 데 1주일 정도가 걸린다. 학생에겐 debit card 정도만 나올 뿐이다.


전기, 수도는 이전 세입자가 쓰던 회사에 전화를 걸어 미터기 숫자를 읽어주면 다시 새로운 계약이 시작된다. 어려울 건 없지만 전화연결이 쉽지 않다. 인터넷은 British Telecom은 18개월부터 계약이 가능해서 우체국에서 제공하는 브로드밴드로 12개월 계약을 했다. 월 31파운드 정도 내면 속도가 제법 빠른 인터넷을 설치할 수 있다. 공유기가 내장된 셋톱박스가 배달되기 때문에 그냥 전원에 연결만 하면 바로 연결된다. 문제는 신청하고 2주를 기다려야 한다는 점.


뭐든지 바로바로 되는 서비스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사는 한국인에겐 무한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9월초에 들어와서 이 모든 게 해결된 10월 중순이 돼서야 나는 비로소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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