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친구들 ㅎㅎ
석사 2학기도 이제 거의 끝이 났다.
영국 학제는 정말 눈 깜빡하면 지나갈 정도로 스피디하다.
5월에 뒤늦게 시작하는 수업이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벌써 영국온지 8개월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영국에서 생활이 시간가는 줄 모르게 즐거운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출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매일같이 마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또 틈틈이 여행을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느끼는 박탈감 같은 게 없다.
그리고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이 다들 좋아서 즐겁게 생활하는 덕분이다.
매번 펍에서 보거나 친구집에 놀러간 적은 있지만 초대한 적은 없어서
한국음식이 맛있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친구들의 기대에 부응할 자신은 없었지만
한식을 만들어서 애들을 초대해봤다. 고맙게도 부르니까 9명이나 와줬다. 귀여븐 것들ㅎㅎ
40분 떨어진 한인마트까지 걸어가서 한식재료를 두둑이 산 후에 달달한 불고기와 잡채, 김치전, 유부초밥, 만두튀김, 콘치즈를 만들어서 한상 차렸다. 우리까지 11명이 먹을 음식이라니... 이 정도 규모는 처음 해본다. 밥그릇, 술잔, 수저, 접시 모두 두개씩만 딱 놓고 사는 우리는 플라스틱 식기랑 나무젓가락도 사야했다ㅎㅎ
예상외로 친구들은 내가 만든 멸치견과류볶음과 김치전을 가장 맛있어했다. 남편에 따르면, 내 음식이... 스탠다드 한식 기준 그렇게 맛있게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ㅋ. 엄청 매콤한 닭볶음탕과 오븐 삼겹살 구이를 하고 싶었지만 애들 절반이 채식주의자였다ㅠ 어찌됐든 그래도 술과 함께 음식은 다 해치웠다ㅎ
술 마시면서 우리는 브렉시트에 대한 불평도 쏟아내고, 취업 걱정도 얘기하고, 연애에 결혼에 진실게임까지 온갖 수다를 떨었다. 가장 큰 이슈는 역시, 뭘 하면서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이를 먹어도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고, 뭘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할지 아직도 막막한데 대부분 20대인 친구들은 더 불안하겠지.. 그래도 매일매일 변화없는 일상을 사는 것 보단, 이렇게 불안하고 불안정할 때가 행복할 때인 것 같다며 위로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답이 행복한 결말로 정해져 있을 때나 해당되는 얘기다. 현실은 훨씬 더 잔인하기 마련이니까..
좁은 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7시부터 밤 12시까지 시끌벅적 놀고나니 다시 대학때로 돌아간 느낌도 들고 재밌었다. 마지막엔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이....ㅠ 다이어트한다고 음식 간만 보고 거의 먹지는 않은 탓에 다음날 속이 꽤 쓰렸다. 다음날은 종일 굶고 회복하느라 하루를 보낸 것 같다ㅎㅎ 이후 식단과 운동을 더 빡세게 조절해야 했다는 ㅠㅠ
이스터 끝나고 5월에 한번 더 불러서 이번엔 해산물로 매콤한 요리를 만들어 즐겨봐야겠다.
얘들아 고맙당, 덕분에 내 서른 중반의 유학생활이 외롭지 않고 즐겁단당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