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장기 트레킹, 등산이 다이어트에 미치는 영향ㅎ
6월 중순부터 2주간 영국 북부 잉글랜드를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르는 코스트 투 코스트(Coast to Coast Walk) 트레킹을 마치고 런던에서 사흘 쉬다가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왔다. 7월초 비엔나에 정착한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비엔나에선 한 달간 에어비앤비로 아파트를 빌려 살고 있다.
13일간 총 309km를 걸은 내 생애 첫 장기 트레킹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정말 몸은 어마어마하게 힘들었지만 마음은 행복한 희한한 경험이었다. 살면서 해본 경험 중에 단연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다.
매일 눈뜨면 걷고 해지면 숙소에 도착하는 단순한 일정. 그런데 묘한 매력이 있다. 우선 하루종일 인터넷조차 터지지 않는 산을 걷고 또 걷고, 종이지도에 의지해 길을 찾고,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 같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고, 나중엔 그 풍경과 하나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행복해진다.
머릿속에 온갖 복잡한 생각들이 많았지만, 걷다 보면 모든 게 단순해지고 또 심플해진다. 다리가 아프고 힘들어 죽겠지만 입과 눈은 웃고 있다 ㅎㅎ 특히 코스트 투 코스트 구간의 경치는 유럽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절경이자 영국 잉글랜드 북부 자연과 마을 그대로를 보여주는 정말 꿀단지다.
영국에서 총 2년간 교환학생, 석사유학을 했고 신혼여행도 영국으로 왔고, 출장도 오고, 여행도 여러번 왔지만 이번에 본 풍경과 코스마다 묵은 마을이야말로 진짜 영국스러운 모습 그 자체였다. 어쩌다 이 코스를 찾아서 왔나 스스로를 엄청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다.
이 구간은 영국의 national trail은 아니지만 산 좋아하는 영국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완주하고 싶어하는 코스로 알려져 있다. 근처 프랑스. 독일은 물론 미국, 호주, 캐나다, 남아공 등지에서 완주하러 먼길을 날아온다. 동양인은 완주하는 동안 우연히 만난 중년의 한국인 부부 한 커플밖에 없었다.
트레킹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렇게 좋을 줄 기대도 않고 왔다가 다들 놀랐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요즘 유행하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도, 그곳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진짜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한 번 와보면 좋을 곳이라고 칭찬했다.
2주간 매일 짧게는 6시간, 길게는 9시간이 넘게 걷고 또 걷는 나날이 되풀이되다보니 몸이 금방 회복되지가 않는다. 다행히 물집, 피멍은 두어개에서 그쳤지만 무릎이 꽤 아프고 매일 7kg 배낭을 메고다닌 탓에 어깨도 뻐근하다. 빨리 정상 컨디션을 되찾고 싶어서 잘 먹고 낮잠도 꼬박꼬박 잔다.
트레킹하면서 몸관리도 같이 한다고 몸에 좋은 음식만 챙겨먹으려 노력했지만, 영국 CTC 트레일은 결과적으로 펍 크롤과 유사한 유혹을 선사했다. 작은 마을이든, 산장이든, 외딴 집이든 저녁만 되면 사람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바글바글 모여들어 피시앤칩스에 맥주 마시며 어울리는 바람에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은 여러 트레커들의 만류와 함께 산산조각났다 ㅎㅎ;;;
결과적으로 매일 대접 꽉꽉 채운 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로 든든히 먹고, 종일 진땀을 빼면서 6-9시간 걷고, 저녁엔 시원한 맥주에 피시앤칩스, 어니언링, 요크셔푸딩, 램스테이크, 비프스튜, 스테이크앤파이 안 먹은 게 없을 정도로 배불리 먹고 다녔다.
매일 푹자고 일어나서 맛있게 먹고 걸으면서 꿈에나 볼 법한 경치를 구경하다 저녁에 술 한잔하고 맛있는 음식 먹고 사람들 사귀는 재미에 이건 트레킹이 아니라 그냥 호강하는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이어트 걱정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다니 ㅎㅎ
그렇다면 트레킹, 등산이 몸에 미친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몸무게는 정확히 1kg 줄었다. 너무 먹어서 오히려 살이 쪘을까 걱정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놀라운 건, 따로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배에 복근이 전보다 훨씬 더 선명해졌고, 엉덩이와 허벅지 군살이 눈에 띄게 줄었다. 등산이 단순한 유산소가 아니라 엄청난 근력운동이라는 걸 보여주는 결과가 아닐까.
어느 정도 쉬면서 몸을 회복하고 비엔나 아파트에서 바로 옆 골목에 있는 짐을 찾아가 한 달 회원으로 등록했다. 매일 비엔나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난 후 한가한 시간에 들러 하루 한 시간씩 스트레칭과 웨이트를 열심히 하고 있다. 독일어를 한 마디도 못하지만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영어를 꽤 잘해서 트레이너와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다.
얼마 전, 가을이 오기 전에 세일이 한창인 비엔나 시내를 오가다 내가 평소 좋아하던 denham에서 청바지 두벌을 샀다. 스키니와 보이프렌드핏으로 나온 일자 청바지였는데 25인치가 몸에 꼭 맞았다. 진심 대학 졸업 후에 처음 입어보는 25인치다ㅠㅠ
다이어트하며 운동한 지 이제 6개월, 운동하면서 관리하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