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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 Jul 19. 2019

비엔나 한달살기,

조용하고 소소한 하루하루

@ 비엔나에 한 달간 렌트한 아파트. 편하고 아늑하고 소박하다. 마음에 든다.

"비엔나에서 한 달 살아볼까?"

"런던, 파리, 바르셀로나, 베를린 다 놔두고 왜 하필 비엔나?"

"소시지가 맛있잖아!"

"...." (반박 못함)


이리하여 7월 1일, 영국에서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날아왔다. 

오자마자 39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시원한 영국을 놔두고 왜 여길 왔나 싶었다.

한 달간 빌린 에어비앤비엔 선풍기가 있었지만 에어컨은 없었다.

다행히.. 그날 이후 내내 비엔나 날씨는 20도대에서 높아야 30도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살았다ㅎ


비엔나에 얻은 아파트는 딱 맘에 든다. 

지어진지 100년은 넘어 보이는 건물 5층(유럽의 4층) 꼭대기 집인데 문을 여닫는 아주 클래식한 엘리베이터가 있고, 천장이 높디 높으며 큼지막한 창문이 집 곳곳에 있어 여름에도 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비엔나는 '링'을 경계로 안쪽은 올드타운이랄까, 슈테판성당과 유명한 거리들이 즐비한 소위 말해 관광지다. 링 밖은 주거지와 박물관, 미술관, 시장들이 흩어져 있다. 우리 아파트는 '마리아힐프'라고 링 밖에 위치한 주거지이자 최근 편집샵과 빈티지샵이 많이 생겨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지역에 있다. 


오스트리아가 독일 못지 않게 소득 수준이 꽤 높은 편이고 게다가 비엔나가 수도인지라, 아파트 렌트비가 결코 싸진 않다. 하지만 관광 물가보다 생활 물가는 확실히 저렴하고 동네에서 현지인들이 사는 풍경을 가까이 볼 수 있어서 좋다. 


@ 비엔나 시청사에서 여름 밤마다 열리는 축제. 이날은 내가 좋아하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라이브 공연 영상을 틀어주는 날이라 맥주 한잔 하며 보고왔다. 

아파트에서 여름 밤마다 음악축제가 열리는 시청사까지는 걸어서 20-30분쯤, 박물관이 몰려 있는 Museum Cartier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링 안까지 들어가려면 30-40분은 걸어야 한다. 걷기 좋아하는 우리는 대중 교통은 거의 이용한 적 없이 사부작 사부작 골목을 구경하며 잘 걸어다닌다.


난 비엔나에 세번째인데 처음 두번은 2-3일 정도만 묵어서 시내 중심가 호텔에 머물면서 관광지 위주로만 다녔다. 이번엔 관광지 말고 산책 삼아 여기저기 다녀보는데, 짧은 여행보단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도시를 즐기기엔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비엔나에서도 소소한 루틴이 있다. 아침 7시30분쯤 일어나 커피와 짭짤 고소한 빵에 버터를 발라 과일과 함께 먹는다. 아침에 일어나 큰 창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집안 곳곳을 타고 다닌다.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한국, 영국, 유럽뉴스 보다보면 슬슬 잠이 깬다.


@ 헬스장에서 내가 즐겨 운동하는 기구와 웨이트존이 있는 3층. 

9시쯤 집을 나서 바로 옆 골목에 자리잡은 짐으로 간다. 4개층을 모두 쓰는 헬스장인데 7월 한달 회원으로 등록했다. 헬스장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자 동양인인 것 같다ㅎ "구텐 모르겐" 내가 아는 몇 안되는 독일어로 상쾌하게 인사하고 들어가면 운동하러 온 주민들이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준다. 독일어를 못해서 아쉽다ㅠ


헬스장 문화충격, 오스트리아 사람들 생각보다 매너 좋다. 단 한 사람 예외없이 씻을 때 쓰는 타올 말고 별도로 큰 타올을 하나씩 준비해와 운동할 때 기구에 깔고 한다. 땀이나 사용 흔적을 남기기 않기 위해서다. 스트레칭 존에 누군가 있어서 뒤편 구석에서 하려고 했더니 알아채고 금방 자리를 내준다. 기구에서 오래 쉬거나 핸드폰을 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영국 헬스장에선 신발도 라커에 넣고(혹시나 분실될까봐), 군데군데 부서져 있는 라커도 많았는데(ㅋㅋ 자유 분방한 곳), 여긴 운동화나 밖에서 신고 온 슬리퍼도 라커 안에 넣지 않고 아래에 그냥 둔다. 라커나 샤워실이 꽤 안전하고, 항상 청결하고 뭔가 굉장히 질서 정연한 느낌을 받았다.


횡단보도 건널 때도 신호가 바뀌지 않으면 임의로 그냥 건너는 법이 없는 오스트리아 사람들 답다 싶다 ㅋㅋ 내 취향은 어느 정도 자유분방한 영국이지만ㅎㅎ 운동갈 때 번거로워도 타올 챙겨가서 기구에 잘 깔고 한다.  


운동 끝나면 간단히 마트에서 장을 봐서 집에서 점심을 해먹거나 동네 맛집에서 외식을 한다. 베트남, 태국, 인도, 중국, 이탈리아 요리가 워낙에 대중화돼 있어서 동네 구석구석 가볼 맛집이 많다. 맛도 수준급인데 관광지에 비해서 훨씬 더 저렴하다. (그러나 영국에 비해 좀 저렴할 뿐 한끼에 둘이 최소 3만원 이상은 든다.)


밥 먹고 너무 더운 한낮이 지나고 2시가 넘으면 집밖을 나와 박물관, 미술관, 숲, 시내 쇼핑몰 등 가보고 싶었던 곳에 간다. 안 가본 골목을 가보고, 동네 레코드 가게를 가보고, 커피도 한 잔하고 하다보면 시간이 절로 간다. 내 인생에 이런 시간이 다시 올까 싶은, 그런 여유다.

@ 오늘 다녀온 알베르티나 미술관. 여기 콜렉션이 정말 좋다. 모네, 르누아르부터 20세기 거장 피카소, 마티스, 미로까지. 몰랐던 훌륭한 화가를 새로 알아갈 수 있는 기회도 많다

해 떨어지면 집에 와서 맛있는 저녁을 해먹고, 비엔나 외곽에서 만든 싱싱한 화이트 와인도 한잔 한다. 그린칭 이라는 곳인데 지하철 타면 금방 닿는 곳에 포도밭이 있다. 포도밭 언덕에 올라가면 도심이 한눈에 보인다. 진풍경이다. '호이리게'라고 그해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을 파는 선술집도 많고, 마트에 가면 4-6유로에 괜찮은 호이리게를 살 수 있다. 풍미가 대단히 다채로운 건 아니지만 시원하게 마시면 가볍고 깔끔하니 좋다.

@ 포도밭에서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곳. 세계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수도는 비엔나가 유일하단다. 비엔나에서 만든 화이트와인, 리즐링. 꽤 맛있다.!
@ 다양한 풍미와 가격대의 와인을 파는 마트. 직접 사서 마실수도 있다. 저 포도밭에서 키운 포도로 만든 와인 ㅎㅎ

좀 더 돈을 써서 질 좋은 리즐링을 사도 좋고, 맛있는 맥주도 워낙 싸다. 한 병에 1유로 정도 한다고 보면 된다.   슈바이네학센을 사랑하는 우리 부부는 맥주에 고기 사서 집에서 10유로도 안되는 가격에 훌륭한 저녁을 먹으며 행복해한다ㅎㅎ 

@족발과 흡사한 맛을 내는 슈바이네학센이 맛있다. 고기는 엉덩이살, 정강이살, 뱃살 등으로 다양하게 판다. 

저녁엔 논문을 위한 자료조사도 하고 글도 쓴다. 가장 중요한 일과지만 미루다 저녁에서야 하게 된다는ㅠ (그래도 하는 게 어디냐..ㅎㅎ)


한 달은 정말 짧다. 여기 있는 동안 독일도 가고, 헝가리도 다녀올 생각이어서 더 짧다. 비엔나가 문화, 예술, 자연 등 즐길거리도 많아서 더 그런 것 같다. 낯설지만 뭔가 아늑하고 포근하고 친근한 도시, 매일 여기서 보내는 소소한 하루하루가 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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