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가질 순 없는건가요?
지난 주말 지인을 만나러 런던에 1박2일로 다녀왔다. 카디프 살다 기차타고 가끔 런던을 가면 시골사람이 서울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ㅋㅋ. Paddington 기차역에 내려서 Westend까지 천천히 걸어내려오는데, 내가 서울에 살았던 사람인가 싶게 낯선 기분이 들기도 한다.
Goldsmith, University of London에서 오퍼를 받고 카디프대와 고민할 때 런던에 사는 게 나을지, 카디프에 사는 게 나을지를 엄청 고민했었다. 서울에서 15년이나 살아온 내가 또 복작거리는 대도시에 사는 게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여유롭고 아기자기한 소도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역시 런던은 문화적으로 너무나 즐길거리가 많은 훌륭한 도시다. 유럽 왠만한 대도시들은 거의 가봤지만 런던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기에 좋은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가가 비싸 여유롭고 풍족한 생활은 어렵지 싶다. 그렇다고 카디프를 예찬하고 싶진 않다. 있을 건 다 있지만 문화적으로 좀 더 다채로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늘 있다.
어디에 사느냐, 어떤 회사에 다니느냐, 어떤 학교를 다니느냐. 이런 선택은 정말 중요한 문제다. 얻는 게 있으면 꼭 포기해야 하는 게 있다.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많은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 런던 같은 대도시에 있는 학교들은 학생 개개인을 세세하게 케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수업을 듣는데, 내가 수업을 잘 따라가든 말든, 학교생활이나 교우관계에 어려움이 있든 말든, 진로를 위한 준비를 알아서 하든 말든 학교에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서 '방치돼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적잖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디프대 같은 몇몇 지방 학교들은 학생 개개인의 적응과 학업, 교우관계, 진로에 대해 꽤 세세하게 관심을 가지고 케어해준다. 이것도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많이 듣는 이야기다. 카디프대의 경우 이런 부분까지 학교가 챙겨주나 싶을 정도로 깨알같은 정보를 학생들에게 제공해준다. 인트라도 너무나 잘 꾸려져 있고, 문제가 생기면 도움 받을 곳도 확실하게 안내된다. 비싼 등록금이 아깝진 않구나 느낄 정도다.
한국이나 영국/유럽권에서 명성이야 당연히 런던 소재 대학이 높을 수밖에 없다. 어떤 걸 선택하느냐는 순전히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 나도 옥스포드나 캠브리지대학에 합격했다면 그게 런던에 있든 깡촌이든 어디든 갔을 것 같다ㅋㅋ.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또 다른 고민거리는 어느 도시에서 직장을 구해 살 건가 하는 문제다. 20대 대학생일땐 막연히 런던에서 일하면서 살면 좋겠다, 뉴욕에서 취업하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지금은 좀 더 현실적인 고민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 실제 내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질'이다. 런던에 직장을 구해 산다고 가정하면, 서울에서보다 많은 돈을 벌 기회가 있겠지만 동시에 서울보다 훨씬 비싼 월세를 부담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런던에 집을 사지 않는 이상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이게 과연 얼마나 지속가능한가 하는 거다. 이런 문제 때문에 현지인과 결혼해서 완전히 정착하지 않는 한 꽤 오래 살다가도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얼마를 버느냐보다 실제 내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질이 얼마나 높은가가 정말 중요하다. 연봉 1억을 받아도 세금내고 집세내고 남는 게 2000만~3000만원밖에 없다면, 이따금 가족과 멀리 떨어져 왜 이곳에서 이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20대땐 가능하지만, 30대에도 가능한지는 고민해볼 문제다.
어디서 뭘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어려운 문제다. 친구들과 이런 고민을 나누다보면, 서울도 그렇게 살기 나쁜 곳은 아니구나. 내가 살고 일하던 곳이 꽤 좋은 점도 참 많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