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서머셋 몸, 송무 옮김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P.69)
<달과 6펜스>(민음사, 2019)는 화자인 내가, 사교 모임에서 찰스 스트릭랜드의 아내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당시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 증권 브로커로 안정된 삶을 사는 40대의 평범하고 말 없던 남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아내와 가정을 떠나 버립니다. 주인공 ‘나’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아내 부탁으로 그를 다시 돌아오도록 회유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서 찰스 스트릭랜드와 친분이 생기게 됩니다. 이야기는‘내’가 주변인들로부터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사람에 대해 전해 듣는 형식으로 시작하여, 직접 만나고 경험한 것을 묘사하는 구조로 전개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가 창조한 찰스 스트릭랜드가 마치 살아있는 듯 생명력과 입체감을 갖게 되어 그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합니다. 결말 부분을 다시 주인공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처럼 묘사하여 찰스 스트릭랜드를 신화 속의 주인공처럼 보이게 합니다. 존 인물인 화가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한 작품 <달과 6펜스>에서 서머싯 몸은 찰스 스트릭랜드가 이 세상 어딘가에 정말 살았던 것 같이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서머싯 몸은 영국 작가로 1874년 파리 외교 공관에서 태어났습니다. <달과 6펜스>는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발표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쟁 직후 피폐해진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꿈을 좇은 찰스 스트릭랜드의 신화적, 기인적인 이야기는 그 시대의 독자들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서머싯 몸은 제1, 2차 세계대전 당시 정보기관원으로 활약하였으며 그 경험을 살려 추리 단편집 <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을 발표하였습니다. 지금은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생전에는 극작에도 재능을 보여 <프레드릭 부인>, <재크 스트로> 등 여러 편의 희곡을 발표했으며 대표 소설에는 <인간의 굴레>, <면도날>, <인생의 베일> 등이 있습니다.
서머싯 몸은 왜 책의 제목에 ‘달’과 ‘6펜스’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책의 뒷부분에 실린 작품 해설을 보면, “<달>과 <6펜스>는 서로 다른 세계를 가리킨다. 또는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암시하기도 한다. 둘 다 둥글고 은빛으로 빛난다. 하지만 둘의 성질은 전혀 다르다. 달빛은 영혼을 설레게 하며 삶의 비밀에 이르는 신비로운 통로로 사람을 유혹한다.”(p.309)고 설명합니다.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이 이상향과 현실을 대비한 것이라는 해설가의 해석입니다. 작가 서머싯 몸 역시 평소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처럼 냉소적인 성격이었다는 기록을 감안해 본다면. 당시 타임지의 비평가가 전작 <인간의 굴레에서>의 주인공 필립을 “달을 동경하기에 바빠 발밑에 떨어진 6펜스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한 혹독한 평이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요? 자신에게 냉혹했던 비평가의 평에 대해 문학적 표현을 빌어 답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서머싯 몸은 바로 다음 작품이었던 <달과 6펜스>에서 그 달(꿈)을 쫓아, 평범한 사람은 꿈도 꾸지 못하는 비범함과 자기의 불같은 열정으로 인해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인생에까지 영향을 미친 예술가의 삶을 그려 냄으로써 꿈이 어떻게 사람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이 틀에 박힌 생활의 궤도에 편안하게 정착하는 마흔일곱 살의 나이에, 새로운 세계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던 그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p.245)
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작가는 현실에서 마주한 비평가의 날 선 논평에 맞서 원시적이며 예술적인 광기에 휩싸인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에 자기 생각을 투영하지 않았을까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하였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p253~254)
사람은 두 발로 탄탄한 땅을 밟고 살아갑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널 정도로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믿기에 안전한 땅에 내딛는 발끝에만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설 속 초반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찰스 스트릭랜드의 자취를 쫓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폭탄선언을 한 것이 아니라는 복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평범하고 안정적이었던 삶 속에서 뒤늦게 그림이란 꿈을 꾸기 시작했고 그것은 어느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그 열망이 자신의 생명줄이고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기 때문에 안정된 삶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지 않았을까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찰스 스트릭랜드의 무모하기까지 한 열정적인 선택이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간혹 ‘그때 내 선택이 다른 것이었다면’이라는 상상은 하지만, 찰스와 같이 무모한 선택을 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독자라면 <달과 6펜스>를 통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버림받고 자살한 ‘블란치 스트로브’에 대해 “어리석고 균형 잡히지 않은 인간”이라 그런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하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무례한 태도를 보며 내적 갈등으로 격한 감정에 휩싸일 수 있는 독자라면 서머싯 몸의 앞선 발표작 <인간의 굴레에서>(민음사, 1998)를 먼저 읽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