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하재영
골목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좁은 통로 안에, 현관문이라 부를 수도 없는 허술한 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좁은 방에 미처 들이지 못한 세간살이는 문밖에 널브러져 있었고 통로 끝에는 공용 화장실이 있었다. 골목을 지나치며 문이 열린 집을 곁눈질로 보았다. 문틈으로 한두 평 남짓한 방이, 나동그라진 빈 술병이, 문을 등지고 앉은 남자의 후줄근한 뒷모습이 보였다.
(p.56)
언젠가 신문 사회면에 실렸던 사진 한 장이 생각났습니다. 대치동 건너편 구룡마을. 우리나라 최고가 아파트 중 하나인 타워팰리스를 마주 보는 강남 판자촌 마을을 촬영한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속의 장면이 사회가 바라보는 ‘집’의 가치를 대비하는 것 같아 씁쓸했었습니다. 모두가 부동산 가격이 미쳤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라고 하고, 다른 이들은 이미 반등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언젠가부터 '집'은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제값(기대하는 가격)이란 것을 받고 팔아야 할 투자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작가 하재영은 전작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창비, 2018)에서 그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동물권'을 주제로 유기견 실태를 오랜 시간, 치밀하게 조사하고 기록하였습니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라이프앤페이지, 2020)에도 등장하는 강아지 ‘피피’를 가족으로 맞이한 것이 계기가 되어 유기견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썼다고 합니다. 작가는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에서 집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요? 책은 어릴 때 살았던 집부터 결혼하여 현재 사는 집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에세이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학교에서 누군가가 혼날 때 그 아이는 구경거리가 되었다.”(p.23)라는 문장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느꼈던 배려 없는 훈육으로 인한 수치심을 이야기합니다. “누군가에게 집이 쉼터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집은 일터가 되었다.”(p.26)에서는, 다른 가족의 쉼터가 될 수 있도록 얽매였던 엄마의 삶을 기억해 내고 ‘집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시작합니다. 또한 갓 독립한 시기에 느꼈던 기본권의 상실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자기만의 방은 독립과 해방의 공간이기 이전에 나의 눈물을 타인에게 들키지 않을 권리였다.”(p.54)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도 품위를 지키고자 애쓰는 사람의 슬픔에 공감합니다. “품위는 인간의 예의이자, 가진 것 없는 자가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방어선이었다.” (p.83).
작가는 “이 책에 등장하는 집들은 내가 그곳에 살지 않았다면 지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쓰였다.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다. 삶의 배경은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p.180~181)며 공간이 가지고 있는 배경이 사람됨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삶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집’이란 공간에서 ‘현재를 어떻게 응시할 것인가’에 집중할 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작가 하재영은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에서 자신이 살았던, ‘집’이란 공간 속 다양한 추억을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불편하지만, 일상으로 지나쳤던 통념을 끄집어내어 이야기하며 어떻게 주체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지 기록하였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집’을 매개로 발생한 상황에 따라 작가의 생각이 전개되어 독자의 입장에서 산만하고 반복된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작가 하재영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라는 제목을 보고 부동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기대하는 독자라면 매우 실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삶을 고민하고 있고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무엇이 자기 삶에 큰 가치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색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 싶은 독자라면 작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열망에 빠지지 않을까? 짐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