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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ak Jun 28. 2024

아재요!Re 삼시세끼

족발을 삶다

족발을 삶다

 어느 날 아재가 된 나를 발견했다. 결혼 전까지는 라면밖에 끓이지 못했지만, 나름의 도전정신을 가지고 다양한 음식재료를 가지고 장난을 친적도 많았다. 그 끼를 살려 요리 관련 글을 써 보고자 한다. 뭐 솔직히 얘기하면 요리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지만, 요리가 음식을 가공하는 행위자체를 얘기한다고 봤을 때, 인류가 음식재료를 가지고 끓이거나 볶거나 삶거나 데치거나 굽거나 하는 모든 행위를 우리는 요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근본도 없는 아재가 하는 요리는 또 다른 매력이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이름을 붙여 보았다. 아재요!Re 삼시 세끼!!. 삼시 세끼를 모두 요리할 순 없지만, 간혹 만들어지는 음식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 보고자 한다. 아재들의 특징은 요리 재료를 모두 갖추고 요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에 남아 있는 다양한 재료를 인터넷 검색과 본인의 감을 이용하여 만드는 것이 특이한 점이라 하겠다. 오늘은 그 첫 번째 희생양인 돼지족발 삶기로 정해 보았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고난도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아재는 그것을 단순화시킬 줄 안다. 그러면 그 머나먼 여정의 시작을 함께 출발해 보자.


 퇴근시간이 되었다. 와이프는 야근을 하고, 아이들은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고 있을 무렵, 나는 자주 가는 정육점으로 스쿠터를 몰면서 퇴근을 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차는 왜 이리 많은지, 마치 나라 경제가 폭망 하여 외식할 돈이 없어 퇴근시간과 동시에 모든 사람이 퇴근하여 러시아워가 앞당겨졌다는 음모론을 생각하며 정육점에 도착했다. 원래 정육점에 들른 목적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돼지 LA갈비를 사기 위해서였다. 전날 큰 아들에게 돼지 LA갈비와 목살 불고기 중 어느 것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돼지 LA갈비를 선택해서 오늘은 그걸로 2팩을 사서 퇴근해 저녁을 먹일 참이었다. 하지만 도착했을 땐, 목살 불고기와 고추장 불고기만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첨 보는 아이템이 하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오늘의 요리 재료 족발이었다. 크기를 봐서는 족발 가장 아랫부분을 손질해 놓은 거 같았다. 먹을 거라곤 콜라겐 덩어리 밖에 없어 보였지만, 양에 비하면 가격이 5,000원으로 저절로 손이 가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결국 소고기 국거리 한 팩과 족발 한 팩을 사서 퇴근했다. 요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인터넷이 알려줄 터, 또한 인터넷이 알려준 각종 채소와 양념은 냉장고에 있으면 있고, 없으면 안 넣으면 될 터이다. 이것이 바로 아재의 요리다. 

돼지족발 한 팩을 사서 핏물을 빼야되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 대충 빼고 한 번 삶는 것으로 대체하자!

 아재들은 레시피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고, 그들만의 꼰대끼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검색을 통해 찾아본 내용은 먼저 핏물을 1~2시간 뺀 후 각종 재료를 넣고 2시간가량 졸이면서 끓이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20분 핏물을 수돗물을 재투입하면서 강력하게 제거하고, 한번 끓여서 조리는 방식을 택했다. 2시간을 언제 기다렸다. 2시간을 또 조리냐? 차라리 그럴 거면 사 먹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 번 삶은 족발을 찬물에 헹궈서 식혀 놓고 다시 검색을 했다. 

 핵심 재료를 살펴보니, 액젓과 간장이 메인이고 색깔과 단맛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쌍화차와 콜라였다. 나머지 재료들은 돼지 잡내를 없애는 데 사용되는 것들이었다. 문제는 쌍화차도 없고, 콜라도 없는 상황에 쌍화차의 대용재료는 믹스커피라는 것을 못 본체 이것을 어떻게 하나 망설였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 법, 재료가 없으면 냉장고 문을 열어라, 네가 원하는 모든 것들이 어딘가에 쳐 박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콜라를 대신해 냉장고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팔려나가지 않는 캔 커피 두 개를 족발에 투입했다. 콜라의 단맛을 위해 설탕을 5스푼 때려 넣었다. 이렇게 모든 재료를 투척하고 뚜껑을 열어 놓은 상태로 1시간을 삶았다. 1시간 후 육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이제부터는 조리는 형태로 족발을 뒤집어 가며 색을 내야 한다. 

족발을 삶을 동안 마련한 아이들 저녁, 육적을 굽고(좌, 가운데) 육수를 부어 육적 냉면을 만들어 보았다.

 족발은 요리지만 오늘의 저녁식사는 아니다. 아이들에게 냉면 먹을 거냐 물어보고 먹는다고 하여 냉면을 삶아 주기로 했다. 애들은 먹이기 전에 먹을 건지 항상 물어봐야 한다. 아니면, 나의 노력이 모두 나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지옥을 경험하게 되니 말이다. 육전용 소고기는 한 달 전 사놓은 재료가 냉동실에서 추위에 떨고 있음을 미리 알고 있었다. 부침가루가 없으면 그냥 달걀 옷만 입혀 낼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부침가루가 있어 육전을 만들었다. 족발 삶기가 없었으면 내동실에서 해동해서 핏물도 키친타월로 좀 제거하고 했을 텐데 족발과 함께 멀티태스킹으로 저녁을 차려야 해서 핏물을 제거하지 못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해 그냥 넘어갔다. 냉장고에 있던 삶은 달걀은 나만 하나 얹어서 먹었다. 3면 분 면을 너무 좁은 냄비에 끓여 면 상태가 영 좋지 않았으나 아이들의 허기가 이를 모두 허용해 주었다. 저녁을 치우고 다시 족발 조리기에 돌입했다.

초반 1시간은 족발삶기(좌), 후반 1시간은 족발 졸이기(후)

 저녁 먹은 것을 치우고 본격적으로 족발 요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된장과 고추장을 넣었는데, 고추장 양이 더 많아서인지 붉은색이 더 강하게 감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알고 있는 족발의 색깔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반 부 한 시간은 불을 낮춰 족발을 뒤집어 가며 익히고 색을 입혔다. 가만히 놔 둘 경우엔 아래쪽 족발이 눌어붙을 수 있어 뒤집는 것을 멈추면 안 된다. 이걸 또 한 시간 해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어 과감한 아재는 30분으로 단축해서 족발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익힌 상태로 먹으면 너무 흐물흐물한 상태라 잠시 식혀 먹기로 하고 쟁반에다 족발을 올려 식혔다. 양이 제법 많았다. 

완성된 족발의 색이 제대로 잡혔다. 간혹 보이는 털은 사전에 제거해주는 것이 좋다.

 이렇게 인생 최초로 돼지족발을 삶아 만들어 보았다. 4시간을 넉넉히 잡고 해야 하는 요리시간은 아재의 통찰력으로 2시간으로 줄였고, 중간중간 어질러진 싱크대를 치워가며 시간을 절약했다. 완성된 족발을 2개 뜯어먹었는데 발 가장 아랫부분만 모아놔서 살은 거의 없고 콜라겐과 껍데기만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행히 첫째 아들이 태권도 수련 후 4~5개를 먹어서 요리한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많은 시간과 노력과 재료가 필요한 요리임을 깨닫고, 다음부터는 사 먹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한 번쯤은 만들어서 먹어볼 만한 의미 있는 요리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남은 족발은 현재 냉장고에 위치하고 있다. 주말에 막걸리랑 한 번 먹어 볼까 하는 생각에 어제의 노력이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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