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요!리 - 묵은지 닭볶음탕
요즘 젊은이들은 복날을 챙기는 거 같지 않다. 학교나 직장에서 복날이라 특식 비슷하게 닭요리를 내놓아도 닭이 나온 이유가 복날 때문이란 걸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반면, 우리 부모님 세대는 초복, 중복, 말복을 항상 인식하시고 특별한 음식을 챙겨 드시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나도 아직 복날이면 보신을 위해 닭이나 장어 같은 기력충전에 좋다는 음식을 챙겨 먹곤 한다. 특히, 이번 여름은 최장의 열대야 기록을 갈아치우고 연일 폭염 경보가 내려지는 날들이 이어져 복날의 의미는 예년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나는 개학을 해서 점심시간에 나온 닭죽으로 말복을 대충 때웠지만 아직 방학이 한참 남은 아이들은 복날인 줄도 모르고, 닭으로 몸보신도 하지 못할 듯하여 퇴근을 하면서 슈퍼에 들러 11호 생닭과 닭볶음탕용 채소를 사서 퇴근을 했다.
냉장고에 묵은지가 없는 줄 알고 그냥 평범한 닭볶음탕을 만들려 했지만, 두 번째 냉장고에 묵은지가 한통이 나있어 메뉴를 묵은지 닭볶음탕으로 변경했다. 둘째가 김치찌개나 김치찜같이 김치가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던 터라 메뉴의 변경 혹은 업그레이드가 더 좋은 선택이었다. 잡내를 없애기 위해 닭을 먼저 삶아서 찬물에 헹구고 채소를 손질하고 요리를 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끝냈다. 맛있게 만들어 막걸리 안주로 한 그릇 먹고 놀러 간 애들을 위해 남겨둘 생각에 즐겁게 요리를 시작했다.
기본적인 준비를 끝내고 이제 간장과 고춧가루와 설탕 등을 넣고 40-50분을 끓여 완성하면 됐다. 인덕션의 타이머를 맞춰두고 뚜껑을 닫고 막걸리를 사러 다녀왔는데 닭볶음탕에서 약간의 탄 냄새가 나서 보니 물이 거의 다 줄어있었다. 항상 요리를 할 땐 지켜봐야 하는데, 또 방심을 했구나 하고 반성을 하며 물을 더 투입하여 한번 더 끓여 냈다. 너무 오래 끓여서인지 닭고기의 탱글함은 사라지고 살들이 녹아내렸다. 절반의 실패를 받아들여야 했다.
다시 한번 끓여낸 묵은지 닭볶음탕은 탄내가 많이 나지 않았지만 예상한 모습의 걸쭉한 국물이 있는 결과물이 아니었다. 막걸리 한 잔과 저녁으로 묵은지 닭 볶음탕을 먹는데 친구 녀석 2명이 집 근처로 술 마시러 온다고 해서 남은 닭볶음탕을 포장용기에 넣어두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에게도 닭볶음탕에게도 미안했다. 다음번엔 제대로 만들어 주리라 다짐하며 친구들과의 술자리로 향했다.
PS. 연일 기록 경신 중인 열대야를 겪으며, 어쩌면 복날도 이제 초복, 중복, 말복만으로는 부족한 시기가 도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2 갑자를 적용하여 갑복, 을복, 병복.... 이렇게 복날이 늘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구는 도대체 언제까지 뜨거워 질지 고민하며 친구들과 한 잔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