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 러닝 코스 개발 핑계 음주
#시작. Friday Night Fever에 울린 카톡 알림음
다양한 카톡 방에서 가끔 알림음이 울리는 방이 있다. 대학교 동기이자, ROTC동기인 절친 3인방의 카톡방. 한 명은 왜관에서 살고, 한 명은 포항에서 살고, 또 한 명은 대구에서 살아 같은 도시의 친구들만큼 자주 만나지도 못하지만, 절친임엔 의심이 끼어들 틈이 없다. 청춘일 때 그렇게 놀고 마시고 사랑하고 지내며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친하지만, 기껏해야 100km 이내인 물리적 거리는 또한 무시하기 힘들어 카톡 조차도 가끔 하고 있었다. 그러던 10월의 어느 날 금요일이었다. 세 명이 모인 카톡방에 카톡이 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홀로 술상을 차려 술을 마시는 사진이 올라왔다. 이 날은 다들 약속이 없었는지, 금요일 밤을 모두 집에서 보내고 있었다. 가족은 뿔뿔이 방으로 흩어지고 개새끼만 남은 쓸쓸한 거실 사진을 보며 우리는 장년의 마지막 해를 보내며 신세한탄을 했다.
이제 나는 늙어가고, 배우자와는 친하지 않고, 아이들은 커가며 나와 멀어지는 느낌을 갖는 나이에 이렇게 밤이 찾아오고 가족은 집에 있는데 혼자 술을 마시면 사람은 감성적으로 변하기 마련 아닌가? 서로의 신세를 한탄하는 그때, 왜관 친구가 포항친구에게 토요일에 놀러 가겠다는 얘기를 꺼냈다. 잠이야 뭐 모텔에서 자면 되고 기껏해야 100km도 되지 않는 거리인데 우리가 1박 2일 놀러도 못 갈 이유가 뭐 있겠냐는 당당함으로 모임 대화가 시작됐다. 똑똑한지 얍삽한지 포항 친구는 '잠시 대기!'를 외치고 와이프가 있는 큰 방에 들어갔다 온 후 본인이 왜관으로 가겠다고 얘기를 하고 왜관 모임이 순식간에 결정이 되었다. 나는 따로 약속이 있었지만, 과감히 합류를 결정하고 작년 여름 영남 알프스 트레일 러닝 이후 오랜만에 3명의 모임이 성사되었다. 모임의 주제는 '오랫동안 건강하게 술 마시기!'로 정해졌고 왜관 낙동강변 10km를 뛰고 술자리를 갖기로 하고 희망찬 마음을 서로 간직한 채 카톡을 마무리했다.
#1. 가을을 느끼며 왜관으로 결집하다
아직 오후의 햇살은 장년의 인간들의 피부를 병들게 하고, 눈부심으로 눈물이 나는 강렬함을 간직하고 있는 10월의 중순이다. 일찍 모여봐야 할 일도 없고 하니, 오후 4시를 기준으로 왜관 친구집으로 집합하기로 했다. 포항 친구는 새로 뽑은 BMW를 타고, 나는 새로 뽑은 YAMAHA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는 각자 사는 곳에서 왜관이라는 공동의 목적지로 향했다. 대구와 왜관은 대구에서 먼 동네 거리 밖에 되지 않고, 도로도 잘 연결되어 있어서 50분 이내에 도착이 가능했다. 집에서 대충 달리기를 위한 짐을 싸고 유튜브 영상을 찍기 위해 고프로도 챙기고 오토바이를 타고 집을 나섰다. 가을 하늘답게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아직 찬 기운을 품고 있지 않아 오토바이를 타기 딱 좋은 날씨였다. 처음 가는 길이라 휴대폰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키고, 음악을 들으며 왜관으로 향했다. 왜관에 도착하니 포항 친구 녀석이 아파트 주차장에서 왜관 친구를 만나고 있었다. 타이밍이 이렇게 딱 맞아떨어질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며 오토바이를 주차시키고 친구집으로 들어갔다. 이사한 지 3년이 지났는데 처음 방문하는 집이었다. 그래도 젊었을 땐, 이사를 가면 집들이도 하고 서로의 집을 자주 방문 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그런 일도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집에서 우리를 반겨 주는 것은 왜관 친구의 개 '밀크' 뿐이었다. 와이프는 주말임에도 일을 하러 가서 밤늦게 온다고 하니 일단 밤까지는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는 한 30분 쉬다가 해가 좀 저물면 달리기를 하러 가자고 했다. 나는 이틀연속 컨디션 회복을 위해 5km를 뛰었는데 컨디션이 더 안 좋아져 제대로 뛸 수 있겠나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인디언 속담처럼 같이 뛰어 보기로 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2. 왜관 낙동강변을 달리다
해가 좀 저물자 우리는 각자 챙겨 온 신발을 신고 아파트 옆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작은 실개천 변에 모여 몸을 풀었다. 나는 달리기보다 한 잔 술 생각에 별 감흥은 없었지만, 포항에서 모여 셋이 같이 뛴 이후 오랜만에 만난 터라 적절한 흥분이 밀려왔다. 게다가 처음으로 유튜브 제작을 위해 고프로를 들고뛰는 첫 번째 러닝이라 약간 긴장되기도 했다. 실개천변을 따라 동네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처음 뛰는 코스라 어색했지만, 설명 함께 같이 뛰어주는 친구가 있어 어렵진 않았다. 어느덧 실개천에서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지역으로 들어오니 탁 트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낙동강을 건너 메타쉐콰이어 숲과 대나무 숲을 통과하여 뛰면서 풍경과 러닝을 촬영했다. 왜관 철교를 다시 건넌 후 뛰고 있으니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전체 코스가 중복되는 구간이 거의 없어 지루하지 않게 뛸 수 있었다. 출발지점으로 오니 스마트 워치는 9km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컨디션 난조로 그만 뛰고, 친구들은 10km를 맞추기 위해 남아있는 에너지를 활용해 전력 질주로 나머지 1km를 뛰어 10km를 맞추고 낙동강변 달리기는 마무리되었다. 역시, 매일 운동하는 포항 친구의 달리기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제 샤워하고 나가서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자!
#3. 한 테이블 안주 2만 원 실비집으로 시작한 술자리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고 한 잔 하러 나섰다. 대구에 있는 여자 후배도 불러서 한 테이블을 딱 맞추기로 했다. 우리가 찾은 곳은 왜관 친구의 최애 단골집이며 아파트와 근거리라 자주 찾는 곳이었다. 이 집의 특징은 안주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무조건 테이블당 2만 원의 안주값이 책정이 되고 이후 술 소비량에 따라 주인장의 안주가 무작위로 추가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술값은 병당 5,000원으로 이 지역 다른 식당보다는 다소 비싼 편이었다. 우리는 4명을 맞춰 소주와 맥주와 막걸리를 시켰다. 유튜버 초보인 나는 쪽팔림을 무릅쓰고 영상도 조금 찍었다. 좀 있다 나온 안주는 돼지수육, 꼬막무침, 생선구이, 부추전, 소라 등 다양한 음식이 5-6개 나왔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안주를 먹을 수 있어서 맘에 들었다. 운동도 마쳤고, 테이블에 깔릴 안주들이 격대비 훌륭한 안주들이라 술이 술술 들어갔다. 더하여,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재미있는 대화는 술자리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다.
1차를 마무리하고 2차는 왜관친구의 최애 2 집인 해물탕 집으로 갔다. 3-4년 전에 왔을 때 갔던 집인데 장사가 잘 돼서 확장 이전을 했다고 했다. 2차 중에 왜관 친구의 와이프가 합류하여 5명이 즐거운 시간과 진실의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돌아오는 길에 3차로 포차에 들러 맥주를 마시고 후배는 대리를 불러 대구로 우리는 왜관 친구 집으로 가서 하이볼에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아침해가 뜰 즈음 잠자리에 들었다.
#끝: 잠은 친구집에서 자더라도 아침은 밖에서
포항 친구의 지론은 본의 아니게 잠은 친구집에 얹혀 자더라도(물론 숙박업소에서 자는 것을 선호한다.) 가족들이 깨기 전에 일어나서 친구집을 나가는 걸 모토로 살아왔다. 나는 뭐 아무 생각 없으니 그저 따를 뿐이다. 늦게 자서인지 해가 떴음에도 나는 잠에 빠져 있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잠을 깨지는 않았다. 잠시 후 포항 친구 녀석이 나를 흔들어 깨웠고, 그 부스럭 거리는 소리는 왜관 친구 와이프가 아침을 준비하려고 부엌에서 움직이는 소리였다. 포항 친구는 우리는 집에 간다며 아침 준비를 말리고 나를 깨워 후닥닥 집을 나섰다. 밖에 나온 우리는 근처 국밥집에서 국밥을 나눠 먹으며 덜 깬 잠을 쫓고 쓰린 속을 달랬다. 왜관 친구 와이프가 깨기 전에 나왔어야 하는데, 어제 우리들의 술자리가 너무 길게 이어지니 탓인지 다들 아침까지 깨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국밥으로 정신을 차리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차와 오토바이를 몰고 떠났다. 1박 2일의 긴 시간을 함께했으니 또 얼마간의 시간은 다들 잘 버티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각자 집에 도착해서 서로 안부 문자를 남기고 갑자기 마련된 1박 2일의 왜관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음엔 포항에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