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산에서 기린 맥주공장까지
아소산의 맑은 공기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적절한 절주로 마무리한 어젯밤의 술자리 때문이었을까? 오늘의 답사는 아침 일찍 시작되었다. 아소산 분화구를 향하며 다양한 화산 지형을 관찰하고 분화구에 올라 살아있는 화산활동을 느끼고 싶었다. 10년 전에 찾았을 때 안개로 보지 못한 아소산 분화구를 이번에 꼭 보겠다는 다짐과 기대로 산 정상 부분으로 차를 달렸다. 해발고도를 높이자 지난주에 내렸다는 폭설이 아직 녹지 않고 있었고, 제설차가 추가로 조금 흩날린 눈을 녹이기 위해 염화갈슘을 뿌리며 내려가고 있었다.
어느덧 차는 아직 녹지 않은 얼음 위를 달려 아소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10년 전 성행했던 가게들이 들어선 휴게소는 빈 채로 방치되고 있었고, 버스 정류장에 딸린 기념품 가게와 커피를 파는 작은 공간만이 과거의 화려했던 시간을 대변하고 있는 거 같았다. 눈 덮인 아소산과 분출하는 수증기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기대는 눈으로 통제된 차량운행과 입산통제로 무산되면서 기대가 큰 만큼 다들 실망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뭐 어쩌랴? 눈 덮인 주변의 풍경을 둘러본 뒤 온천을 향해 차를 몰았다. 차는 어느덧 이 길이 차가 다니는 길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차를 돌리기도 했지만 어느덧 앞에서 온천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우리들은 이부스키에서 봤던 논두렁 태우는 연기가 아닐까 다시 한번 의심에 사로잡혔지만 어느덧 바위를 뚫고 올라오는 계란 냄새를 동반한 수증기를 볼 수 있었다. 산책로까지 만들어져 있어서 차를 갓길에 세워두고 화산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올러갔다. 그곳에는 온천수가 고인 물속에서 화산가스에 의한 기포가 형성되고 있었다. 아소산 분화구는 못 봤지만, 아소산 보디 더 본 사람이 적은 듯 한 숨겨진 화산활동 장소를 보고 아소산 분화구에 대한 아쉬움을 없앨 수 있었다.
수증기가 뿜어 나오는 산중턱의 화산지대를 거쳐 차로 잠시만 달리면 2개의 온천이 등장하는데 해발고도가 높은 곳은 비싼 료칸에서 운영하는 대중온천이고 조금 아래에는 료칸 없이 대중온천만 운영한다. 크기는 아담하고 작지만 야외온천도 있어 머리는 차갑게 몸은 뜨겁게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수건은 제공되지 않아 둘째 날 받아 뒀던 수건을 활용했다.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첫 손님이라 양해를 구하고 아무도 없는 온천 내부를 촬영할 수 있었다. 한 시간의 피로회복 온천을 하고 마지막 목적지인 후쿠오카 기린 맥주공장 견학지로 향했다. 거리가 1시간 30분가량 떨어져 있었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 40분이었다. 매번 이동으로 아슬아슬하게 하는 이 쫄깃함이여! 다행히 마지막 목적지도 5분을 남기고 도착했고 무사히 기린맥주공장 투어를 할 수 있었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아사히공장과 기린 공장 모두 무료로 운영이 되었는데 최근에 다시 투어를 시작하면서 투어비를 받고 있다. 그래도 투어의 내용을 떠나 마지막에 나오는 갓 짜낸 맥주를 두어 잔 들이켜는 것만으로도 그 가격은 충분히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맥주 시음투어까지 모두 마치면 기념품샵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구매하고 나오면서 3D상태로 사진일 찍히는 곳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나오면 1시간 조금 넘는 투어는 끝이 난다.
기린 후쿠오카 공장을 떠나는데 수위아저씨가 무슨 얘기를 하는데,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 대충 들어보니 운전자가 누구냐? 운전자가 붉은색 종이 팔찌를 잘 착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운전자가 술을 마셨는지 확인하는 과정인 듯하였다. 렌트한 차를 반납하는 날이라 차를 몰고 텐진역 돈키호테와 빅카메라에서 서로 필요한 술과 가족들을 위한 선물을 사고 짐을 나스카 강 옆 '리버사이드 INN 하카타'에 멤버 3명과 함께 던져 놓듯 하고 나를 포함한 3명은 차량을 반납하러 갔다. 차량은 반납 전 휘발유를 가득 채워 반납해야 하는데 대충 연료게이지가 마지막 선을 넘기만 하면 되는 듯했다. 그거 계산하는 게 더 힘들어 그냥 FULL을 선택하고 반납을 하면서 추가된 고속도로 요금 1만 원을 정산하고 차량반납을 마쳤다. 보험을 FULL로 들어서 차량 상태를 따로 체크하지는 않았다. 렌터카 업체에서 하카타역까지 우리를 태워줬고,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약속한 장소로 이동했다. 일본인 100%인 선술집에서 후쿠오카의 대표음식인 모츠나베(곱창전골)를 시키고 생맥주를 마시며 4일 차 여행에 대해 담소를 나누었다. 음식이 나오는 속도가 우리를 따라잡지 못해서 약간의 혼란은 있었지만, 담소와 담배를 태우며 마지막 저녁식사를 마무리했다. 다들 피곤한지 말수가 줄어들고 있었고, 숙소에 들어와 짐을 정리하고 2차를 가려했으나 3명은 2차를 거부했다. 이렇게 마지막 밤을 보낼 수 없다고 판단한 나와 친구 그리고 선배는 간단하게 강변 포장마차에서 한 잔 하고 오기로 하고 나왔으나 음주가 어찌 계획대로 되겠나? 가성비 떨어지는 포장마차는 분위기 파악만 하고 간단히 마시고 숙소 강건너에 위치한 구이집으로 향했다. 결국 간단히 마시기로 한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맥주 각 8잔을 마시고야 술자리가 끝났다. 감사하게도 선배가 10만 원 찬조하고 나머지 9만 원은 회비로 집행을 했다. 우린 이 정도 이해해 줄 수 있는 모임 아닌가?
나스카 강변 포장마차는 2년 전에 비해 많이 쇠퇴한 듯하였다. 1인 1 안주를 시켜야 되기 때문에 가성비도 떨어지고 가격도 비싸서 이제는 찾을 일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맛보는 돼지혀 구이로 이번 마지막 술자리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사람이 3명으로 줄어드니 대화의 깊이도 깊어지고 이것이 아마 술을 과음하게 만든 원인이라 생각한다. 숙소에 도착해서 마지막 짐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중간에 코골이로 깨기도 했지만, 마지막 밤을 잘 보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