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고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1799년부터 1804년까지 남아메리카를 여행했으며, 나중에 자신이 본 것을 『신대륙의 적도 지역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훔볼트가 여행에 나서기 9년 전인 1790년 봄, 스물일곱 살의 프랑스인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는 자신의 침실을 여행하고, 나중에 그것을 『나의 침실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코로나가 2019년 말 발생하여 전 세계로 퍼져 바이러스에 허덕이던 2020년을 보내고 잠잠해질 것 같은 2021년을 기대했지만,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수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행의 수요는 국내로 눈을 돌려 제주도가 겨울 비수기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고, 해외 입국자의 자가격리 2주로 인해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는 시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과거 여행 경험을 떠올리며 글을 쓰거나, 동영상을 편집하면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여행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행이라는 것은 떠남에 초점을 주게 된다. 내가 살던 집을 떠나고, 지역을 떠나고, 인간관계를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 생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행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예전에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다시 한번 읽었다. 대학 시절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었을 때 느낌과 비슷하다. 대학교 때도 무식하게 사랑의 기술을 'The Technic of Love'로 인식했으나, 테크닉이 아니고 Art였다. 여행의 기술도 마찬가지다. 일상적인 여행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여행을 제안하는 형식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어쨌든, 이 책에서 코로나 시대 가장 흥미를 끈 것은 위에 적어 놓은 '나의 침실 여행'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의 존재였다. 신항로 개척 시기 모두가 새로운 미지의 대륙으로 말과 군대, 성직자와 과학자를 동행하고 탐험을 떠날 때, 내부로의 여행을 떠나는 프랑스인이 쓴 책. 코로나 시기에 적극적으로 도전해 보아야 할 여행의 기술이 아닌가 한다. 물론 그의 침실 여행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의 침실 야간 탐험』이라는 후속작까지 선보였다. 우리나라에도 『내 방 여행하는 법』, 『한밤 중, 내 방 여행하는 법』이라는 번역서로 출판이 되어 있다. 물론 난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내 방 여행하는 법』, 『한밤 중, 내 방 여행하는 법』의 책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코로나 시대 자가격리가 되어 본의 아니게 집과 방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일상의 집과 방이 아닌 10여 년 전 결혼과 함께 분가하면서 나온 본가에서 방으로의 여행을 시작하였다.
10년 만에 돌아온 집, 명절이나 일 때문에 하루정도 잠을 청하고 떠남을 반복했지만, 이렇게 2주라는 시간을 연속으로 지낸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듯 한 경험이었다. 첫날과 이튿날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나가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따라서, 집으로의 여행은 셋째 날부터 시작되었다. 대도시 중심부 인근, 낙후된 주택지구에 위치한 오래된 24평의 빌라, 방은 3개에 좁은 거실과 좁은 베란다가 내가 여행할 곳이었다. 10년 전과 달리 집의 물건들은 엄마의 물건들로 대체되어가고 있었지만, 내가 주로 지내던 방은 아직 나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날 만큼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거실과 베란다
거실은 냉장고와 싱크대가 있고, 내가 사드린 1인 식탁 옆에는 잘 쓰시지도 않는 전자레인지가 놓여있다. 최근에 거실과 싱크대만 리모델링하여 방문과 베란다로 향하는 새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통일감을 주고 있다. TV는 형이 사준 32인치 LCD TV로 바뀌었고, 구피를 키우던 어항은 겨울에 외할머니를 뵈러 갔다 온 1주일 만에 모두 죽고 물옥잠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무릎이 좋지 않아 따뜻한 열선이 있는 소파는 아직 거기에 놓여 있다. 베란다는 집을 짓던 25년 전 그 새시로 녹이 슬어 문을 여닫기가 다소 힘이 든다. 베란다는 온통 다양한 식물들과 양파 그리고 세탁기가 놓여 발 디딜 틈 조차 없다. 거실은 엄마의 생활공간이다. 나와 같이 지낼 때도 거실은 엄마의 몫이었다. 거실로의 여행에서 내가 추억할 것은 벽 모퉁이에 있는, 내 월급을 털어 사드린 스탠드형 에어컨이 전부이다.
안방
거실에서 주로 생활하는 엄마는 자가 격리당한 아들을 위해 기꺼이 안방을 내어 주셨다. 기꺼이라고 할 것은 또 아닌 게 안방은 원래 비어있듯이 한 공간이다. 내가 살 때는 배낭여행을 갔다 오면서 차곡차곡 모아둔 양주가 찬장 속에 놓여있었고, 이불과 옷이 정돈된 가구, 그리고 잡다한 것을 놓아두던 작은 테이블이 전부인 곳이다. 여기에 이불을 깔고 밥상을 가져다 놓고 2주 동안 원격수업과 생활을 병행했다. 차곡차곡 모아둔 양주는 결혼식 전날 술 마시고 있는 친구들 무리를 돌아다니며 술값 내주고 돌아다니다 집에 밤 11시에 도착하니 친척들이 다 마셔 화가 치밀 뻔했으나 날이 날인만큼 내가 참았던 기억도 난다.
작은방 1
예전엔 내 책상이 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조립식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냉장고는 이종사촌 누나가 사준 것이고, 김치냉장고는 내가, 조립식 테이블은 어느 날 형수가 와서 설치하고 물건을 정리하고 갔다고 한다. 이곳은 나의 집 여행에서 각종 술과 안주를 만들 재료를 공급하는 중요한 병참기지였다. 과거의 추억이 스며있다기보다는 자가격리의 추억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그런 곳이었다.
작은방 2
출입문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 2. 이방은 내가 결혼 전에 가끔 잠을 자던 방이고, 현재는 나의 추억이 아직 남아 버티고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아직 내가 예전에 입던 옷가지들이 발견되고, 내가 썼던 일기가 보존되어 있고, 내 사진첩이 있는 곳이다. 결혼 전엔 이방에서 담배도 피우고, 실연의 아픔도 달래고, 친구 녀석들과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화투도 치던 장소라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이다. 결혼 전날 외사촌과 이종사촌과 술을 마시다 잠들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방에서 몰래 흐느껴 울었다. 이 방은 좀 더 계획을 세워 여행할 만큼 여행할 거리가 많은 방이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예전 옷을 입어보며 추억에 잠기고, 옛 사진을 찾아보며 웃음 짓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2주 동안 24평을 모두 여행하지 못했다. 나의 게으름과 상황에서 오는 답답함으로 2주의 시간을 여행처럼 즐기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봄 자가격리를 끝내고 여름이 한창이던 어느 때, 내가 아닌 아들들이 자가 격리되어 본의 아니게 자율 격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식사를 차리고 설거지를 하면서 집으로의 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지나갔다. 코로나19는 미국 드리마 '워킹 데드'처럼 세상을 바꾸고 나아가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다. 부정적인 것이 많아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감을 보이는 사람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변화의 폭이 크고 빠를 뿐 세상은 언제나 변화하고 있었다. 우리도 부정보다는 긍정의 마음을 가지고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 마치 남들이 해외로 여행을 떠날 때, 집안을 여행하며 내면을 탐구한 어느 작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