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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ak Jun 18. 2021

준비 없이떠난 해외여행

여행에 대하여

 1989년 1월 1일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시작되면서 대학생들의 해외여행이 서서히 늘어났고 1990년대 후반까지, 정확히 얘기하면 IMF 전까지 배낭여행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하지만, 나는 치열한 아르바이트 생활로 배낭여행은 꿈도 못꾸고,  IMF와 동시에 군대에 입대하여 그 우울한 시기를 군대라는 우울한 환경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래서 내 군대생활이 더 우울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돈이 없어 장교로 입대해서 IMF의 직격탄을 피하고 전역을 했으니 어쩌면 군대가 어려운 환경을 피해가게한 고마운 도피처이기도 하다.  군대생활도 어쩌면 여행이다. 처음 가보는 곳에 처음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처음 접해보는 수직적 구조의 계급사회는 가장 폐쇄적이고 바라지 않는 여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려움이 있는 곳에서 전우애가 싹튼다고 군대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마음을 주고받고 진심을 알게 되면 오랜 친구로 남게 된다. 


첫 해외여행의 시작

나의 첫 해외여행의 동반자도 군대에서 만난 후배였다. 2002년 월드컵이 마무리되어가고 서해교전이 터진 날 전역을 하여 그 해 2학기에 3개월 동안 기간제 교사 생활을 하고 11월 말 다시 백수가 되었다. 중국에 있는 군대 후배와 연락이 되어 12월 8일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치르고 다음날 배를 타고 중국으로 입국했다. 물론 1차에 붙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맘 편하게 떠날 수 있었다.

 해외여행은 이렇게 나에게는 현실 도피의 성격이 강하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일을 나가시는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백수생활로 하루하루 친구를 만나 술로 보내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배낭 하나 사고 입고 있던 옷가지 여러 벌을 챙겨 군대전역 때 신고 나온 전투화를 신고 떠난 것이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국내여행도 수학여행과 대학교 때 답사가 전부인 나에게 해외여행은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해 주었다. 인터넷도 잘 들어오지 않는 낙후된 도시에서 휴대폰은 그저 시간만 알려주는 시계와 같았다. 아르바이트로 인력시장을 새벽에 나가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처럼, 여행지의 정보를 하루하루 얻어가며 여행을 했다. 다른 나라지만, 다 사람 사는 곳이라 비슷비슷한 게 많다고 느끼는 요즘이지만, 첫 해외여행은 모든 것이 낯설고 그로 인해 조금의 두려움, 그리고 행동의 위축을 가져왔다. 후배가 머무르고 있는 월세로 얻은 후배 여자친구 집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베이징을 중심으로 일주일을 여행했다. 만리장성, 천안문 광장, 자금성, 호도협, 명 13 릉과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왕징까지 새로운 나날과 새로운 문화, 사람들을 접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중국여행 후 동남아 일주로 여행이 이어졌지만, 나의 첫 해외여행지는 중국으로 남게 되었다.

처음은 오래 기억된다.

 호도협에서 말을 타다 터무니없는 가격에 싸움도 하고(메인 사진), 개인별 화로에 음식을 먹는 샤부샤부 집에서 붕어 샤부샤부도 먹어보고, 고추와 각종 향신료에 빠진 물고기(쉐이주위:水煮鱼)를 시켜놓고 손도 안 대고 나온 적도 있고, 무제한 맥주로 칭다오 맥주를 맘대로 마시고, 마오쩌둥 미라도 보고, 여하튼 처음 해외에 발을 딛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시간이 오래 지나고도 몸속에 녹아 흐르는 듯하다. 처음은 오래 기억된다. 첫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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