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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ak Oct 26. 2021

헷갈림, 엇갈림

일상의 단비 혹은 소나기

사람은 기억하는 동물이다. 동물들의 평균 기억 시간이 20초이고, 가장 오랫동안 기억하는 개의 경우가 2분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반면, 사람의 기억은 수개월을 거쳐 수 십 년간 이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기억하는 것이 많지 않아 기억들을 디테일하게 기억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신의 딸, 아들들이 천재가 아닌가 기대하곤 하지만, 아이들도 기억이 많아지면, 의미 없는 기억같이 반복되지 않은 기억부터 사라지곤 한다. 어른의 기억은 삶의 중요하거나 특별했던 순간을 제외하고는 점점 기억이 사라지게 되고, 나아가 어느 순간에는 건망증의 이름으로 최근에 했던, 아니 방금 했던 기억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런 문제들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 오류의 수정을 통해 큰 문제없이 인생은 이어진다. 

 헷갈림은 주변의 시스템에 의해 지속적으로 수정되기 때문에 헷갈림이 큰 사건으로 일어날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로또에 당첨되는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나듯이,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까 하는 이상한 일도 다가오기 마련이다. 나에겐 헷갈림의 연속으로 일어나려야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있어 다시 그 기억을 떠올려 본다. 

 


왜 모든 것이 몰래카메라 같이 여겨질 때가 있다. 물론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몰래카메라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 파악할 수 있지만 말이다. 성남과 대구로 원거리 연애를 하던 시기에 내 인생 헷갈림의 가장 큰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성남에서 점심을 먹고 대구로 와서 친구를 만날 약속을 하고 버스를 타고 내려올 계획을 세웠다. 점심을 먹느라 시간이 늦어 버스시간이 코앞에 다가왔고 택시에서 내려 뛰어 버스정류장에서 표를 끊었다. 대구를 가는 곳과 부산을 가는 버스는 바로 옆 플랫폼이었는데 표를 받는 아저씨에게 표를 보여주고 확인 후 버스를 탔다. 버스 출발시간이 다 되어가 버스는 만석이었다. 나는 동대구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승차권에 적힌 번호를 확인했다. 확인이 필요 없었던 것이 자리도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빈자리는 내 승차권의 좌석번호와 일치했고 버스는 미끄러지듯 정류장을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한 잔 하고 버스로 돌아왔다. 여기서 버스의 목적지가 적힌 푯말을 보지 않은 것이 마지막 기회를 차 버린 행동이었다. 버스는 원래대로라면 서대구 IC에서 내려 서대구 고속터미널을 들러 동대구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금호 JC를 그대로 통과하여 북대구 IC로 달려갔다. 나는 그냥 차가 막혀 기사님이 다른 루트를 선택한 것이라 생각했다. 북대구 IC로 빠져야 되는데 버스는 계속해서 직진을 하며 북대구 IC 진출의 마지막 구간을 그냥 지나쳤다. 다급한 마음에 기사님께 동대구 IC로 나가시려고 하시나 여쭈니! "이 버스는 부산 가는 겁니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헷갈려 탄 버스 때문에 일단 친구들과 약속은 시공간적으로 엇갈려 갈 수 없게 되었다. 

 표는 제대로 발권했지만, 표 받는 아저씨가 그냥 원래 하듯이 표만 찍고 행선지를 확인 안 했고, 나는 버스도 확인 안 하고 그냥 탔고, 하필이면 내 번호의 좌석만이 비어있었고, 휴게소에서도 버스의 목적지가 적힌 것을 확인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엄청난 확률을 뚫고 현실에서 이루어져 나는 그냥 부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휴게소에 내려 돌아오는 것이 나았을 수 도 있었을 텐데, 그땐 정신이 없었다. 내가 미웠을 뿐.

 부산 종합버스터미널에 내렸는데, 버스가 한 시간 뒤에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으로 향했지만, 토요일 부산을 관광하고 일요일 상향행 기차를 타려는 사람으로 인해 표가 모두 매진이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버스터미널로 왔지만, 대구행 막차가 방금 떠난 상황이었다. 결국 태어나서 처음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3명의 손님을 채워 대구에 도착하니 밤 10시였다. 대구에서 원래 친구들과의 약속이 5시였는데... 이 일은 순간의 헷갈림이 엄청난 에피소드를 만들어낸 인생에서 손꼽히는 대표적인 경험이었다. 헷갈림이 아무 일 없이 인식되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었다. 



 나의 헷갈림이 아니라, 가족의 헷갈림으로 일상이 엇갈린 에피소드가 최근에 일어났다. 주말을 이용하여 술자리를 가지는 나는 미안함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뭐든지 열심히 하고 술자리에 나가는 편이다. 토요일은 둘 다 오전/오후로 나눠 출근을 하여 하루가 정신없이 사라져 버리고 일요일이 되었고, 어디 가까운 곳으로 바람이라도 쐬러 가고자 했으나, 친구들과의 놀이에 빠진 아들들은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그래서 좀 무리해서 일을 하기로 했는데, 먼저, 전기스쿠터를 타고 엄마 집에 반찬을 가져다 드리고, 이어서 세차를 안 해 꼬질꼬질한 와이프의 차를 셀프 세차하고 술자리를 나가기로 했다. 엄마 집에 갔다 와 배터리를 충전하고 와이프 차를 몰고 셀프세차장으로 향했다. 자리가 없어 기다리다 10분 뒤 자리를 차지하고 열심히 세차를 했다. 온통 긁힌 자동차의 범퍼와 찌든 때를 세차게 쏟아지는 물로 씻어 내고 물기를 닦아내니 약속시간 40분 전이었다. 집에 가서 세차한 차를 당당히 세워두고 걸어서 약속 장소로 이동하면 정시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연락이 왔다. '치킨 포장 좀 찾아오고 약속 나가면 안 돼?'냐고. 시간이 촉박하지만 스쿠터를 타고 치킨을 찾아서 가져다주고 집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면 약속에 늦지 않았을 것 같아 짜증을 숨기고 흔쾌히 승낙을 하고 스쿠터 배터리를 장착하고 친킨 2마리를 찾으러 달렸다. 

 치킨 집에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니 아직 포장된 치킨이 없어 결재를 먼저 하기 위해 일하는 분께, "포장 2마리 결재 먼저 좀 부탁드립니다. "라고 하니 주문 내역을 확인하곤 포장 주문이 들어온 게 없다고 다시 확인해 본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느낌이 싸했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 주문한 곳의 지점을 확인하라고 했다. 다시 확인해본 종업원은 포장 주문 들어온 것은 없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었고, 이어 걸려온 전화에서는 3km 떨어진 다른 지점에 주문을 했다는 것이다. 속에서 화가 부글거렸지만, 꾸욱 눌러 참고 마치 배달 라이더가 된 양 엑셀을 당겼다. 배달 라이더들이 내 뒤쪽으로 하나둘씩 멀어질 만큼 빠른 속도로...

  두 번째 치킨집에 도착하니 포장된 치킨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스쿠터를 타고 쏜살같이 달려 집에 치킨을 던져주는 둥 하고 자전거를 타고 약속시간으로 갔으나 20분이 늦은 후였다. 내가 아닌 다른 이에 의한 헷갈림으로 배달 라이더를 제치는 라이딩 실력을 뽐내게 되었다. 물론 이일로 와이프와 내 삶이 엇갈리진 않겠지만, 헷갈림이 삶의 한 순간에서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사건이었다. 


이제 나이가 듦에 따라 기억의 능력이 쇠퇴하고 있음을 느낀다. 외장하드나 USB처럼 꽉 찬 기억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기억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좋을지 아닐지도 헷갈린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노력과 준비를 하지 않으면 이런 헷갈림은 더욱 자주 나타날 것이다. 다시 한번 확인하는 생활습관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고, 메모하는 습관을 갖는 것도 좋은 거 같다. 헷갈림 때문에 엇갈림이 발생하여 마음 아픈 일이 없기를 바란다. 단비 같은 웃어넘길만한 일들에서 그쳐야지 소나기로 피해를 볼 만한 일로 커지는 일이 없기를 기원하며 헷갈리지 말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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