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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올하르방 Jan 24. 2024

나의 기록을 기록하다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 렘브란트 <모자와 목걸이 두 개를 걸친 자화상>

Self-portrait wearing a hat and two Chains, Harmensz. van Rijn Rembrandt c.1642 <Thyssen Bornemisza>


가끔 나는 나의 가치를 초라하게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허무한 일상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기 어려운 순간들, 그럴 때면 보이지 않게 작게 쌓인 성취와 그 시간들을 자주 간과하곤 하지만 나만의 기록을 통해 그런 감정들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하나의 작품을 통해 깨달은 적이 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삶은 갈래길을 만나며 여러 이야기를 품게 된다. 이렇게 쌓인 여러 순간을 기록한다는 것은 마치 내 안의 작은 백과사전을 채우는 듯한 작업이다. 나의 기록을 기록하는 순간, 나만의 세계를 품고 살아가는 여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기록은 나의 삶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자 나만의 소중한 소유물이기도 하다. 일기를 쓰고, 사진을 찍으며,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메모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은 곧 나만의 기억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 나의 기록은 나만의 자산이자 무형의 유산이 되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나만의 이야기들이 적힌 페이지를 펼칠 때마다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너는 어떻게 왔으며 ", “또 너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거니?” 그렇게 질문하며 되돌아보면 어떤 순간에 나는 얼마나 강하게 웃었고, 얼마나 크게 울었는지, 또 내가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실수를 범했는지, 나를 만들어간 순간의 흔적들을 보며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나침반의 역할로서 나에게 용기를 준다. 


그래서 오늘은 자신의 성공과 실패, 삶의 풍파, 그리고 노년까지 자신의 모든 순간의 기록들을 붓으로 그려내며 그림을 보는 이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화가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의 '모자와 목걸이 두 개를 걸친 자화상'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The Anatomy Lesson of Dr Nicolaes Tulp, Rembrandt c.1632 <Mauritshuis, The Hague>


과거 미술이 왕족, 귀족 또는 부유한 계층을 위한 특정 계층에 국한된 17세기 유럽에서, 네덜란드는 독특한 예외로 보통 사람들을 위한 미술가 토대가 쌓이게 된다. 정치와 경제적인 성장이 밑거름이 되며 미술과 과학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이 시기를 네덜란드의 황금시대'Golden Age'라고 부른다. 


네덜란드는 15세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유도시국가들의 해상무역을 통해 경제적인 번영과 문화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는 단순히 왕이나 귀족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시민계급에게까지 환원되기 시작하면서 다른 유럽의 국가들에 비해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는 풍토로 형성되었고 개방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수많은 사람들이 네덜란드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미술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교회와 궁정, 귀족의 후원에만 의존하던 미술 시장이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보급되면서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작품이 많이 거래되는 최대의 시장으로 성장하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시민들이 실제 구매자로 등장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삶이 기록된 작품을 많이 선호하게 되었고, 그렇게 자신들의 삶 속 환경을 보여주는 정물화, 풍자가 보이는 자연이 담긴 풍경화, 그리고 자신의 순간을 기록한 초상화들이 인기를 누리며 다양한 화풍이 발전하게 되는데 그 빛나는 황금빛 시대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그 빛나는 순간을 기록한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시간을 현재에도 공유할 수 있다. 그렇게 빛나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렘브란트 판 레인, 그가 최고로 불리던 37세에 그려진 작품이 '모자와 목걸이 두 개를 걸친 자화상'이다.




자화상이란(Self-Portrait)


인물을 담아내는 초상화는 ‘Portray’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발견하다’ (Protrahere)에서 유래하며 앞에 ‘자신’을 뜻하는 ‘Self’를 붙여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그림이라는 뜻에서 자화상 (Self-portrait)이라고 불린다. 이 처럼 자화상은 화가가 자신을 모델로 그리는 초상화라는 뜻인데 흔히 모델을 모집하기 힘든 가난한 화가들이 자신 스스로를 모델 삼게 되며 시작되었다는 유래와 냇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한 나르시스의 나르시시즘 같은 자기애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하지만 어원적인 정의를 보면 ‘나라는 존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해답을 찾기 위한 화가들의 풀이과정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에 더 신빙성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자화상의 본원적인 의미에 가장 가까이 도달했던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에서 자화상은 마치 문학의 자서전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자서전은 자신의 삶을 주관적으로 기술하기에 일방적인 전달 수단이 되어 타인의 시각이 부재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기에 자신을 미화하거나 이상화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이런 현상은 자화상에도 나타나는데, 자신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이는 본연의 모습이 아닌 자신이 추구하고 바라는, 아름다운 이미지의 나를 만들어 묘사하는 경우가 이와 같은 경우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자화상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욕망을 표출하지만 이와 반대로 렘브란트는 자신의 초라한 순간을 감추고 아름다움 순간을 더욱 과장해서 보여주기보다 자신의 모든 희로애락의 순간을 표현하며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로서의 자화상을 그렸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화상임에도 불구하고 지극이 일반적인 외적 아름다움이 아닌 우리와 다른 시간 속에 살았던 그 순간 렘브란트가 가진 내면의 심리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The Night Watch, Rembrandt c.1642 <Rijksmuseum in Amsterdam, Netherlands>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월리엄 터너'는 렘브란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렘브란트만큼 자신의 능력과 약점을 잘 아는 화가는 없었다. 그리하여 짙은 어둠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었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찬란한 빛을 통해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에 너무 앞서 나아간 나머지 심연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며 동시에 서양 미술사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렘브란트는 월리엄 터너의 말처럼 의도적으로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를 만들어 표현하는 ‘키아로스쿠로’(명암법)와 화면의 극적인 구성을 통해 일상의 순간들을 담아내며 젊은 시절 큰 부와 명성을 쌓았지만 달콤한 영화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1642년 아내와 아이들이 세상을 떠나며 이별하게 되고 같은 해에 제작된 현재 렘브란트 최고의 명작이라고 불리고 있는 ‘프란스 배닝 코크 대위와 빌럼 판 라위텐뷔르흐의 민병대’<야경, The Nightwatch>흔히 '야간순찰'이라 불리는 단체 초상화가 너무나 진보적인 스타일로 그려지면서 의뢰처였던 암스테르담 사수협회에서 인수를 거부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자신의 장기인 명암기법의 특성상 누군가는 조명을 받아 화려한 주인공으로 표현되지만, 같은 돈을 지불한 다른 나머지 인물들은 어두운 그늘 밑에서 배경처럼 묘사되어 대부분의 의뢰인들이 불만족)

이 사건 이 후로 그는 서서히 인생의 내리막 길을 걷게 된다고 기록하지만 사실 화가로서의 능력은 이후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계속 성장하며 최고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나친 사치, 그리고 시대적으로는 튤립파동이라는 거품경제현상이 발생하게 되면서 당시 네덜란드 경제에 큰 영향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지역적 심리변화가 생기며 금욕과 절제라는 키워드가 중시되면서 사치품으로 여겨지는 미술시장에서의 미술품 거래량이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거기에 앞서 언급한 단체 초상화 사건으로 의뢰인의 의견을 묵과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그린다는 소문까지 더 해지게 되며 렘브란트는 생활고에 허덕이며 삶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러 상황 속에서 마지막 삶의 순간까지 지독하게 외롭고 빈곤한 시간을 보내다, 이름도 없는 공동묘지에 묻히며 위대한 화가는 쓸쓸히 세상을 떠난다.


굴곡진 삶을 살았지만 그는 평생 전후무후한 명작들을 남기는데 특히 동시대 다른 화가들과 달리 일생에 걸쳐 80여 점 이상의 자화상을 남긴 걸로 유명하며 이 자화상들은 예술가들의 특별한 삶 속에 남겨진 특별한 모습이 아닌 왠지 우리와 다르지 않을 듯한 그의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긴 작품들이기에 오히려 더욱 큰 감동을 준다. 거기에 더해 렘브란트의 인간적인 면모와 예술적인 편력을 더듬어보는 이정표로서 그 어느 자화상보다 화가 자신의 내면의 깊이를 느낄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Self-portrait with dishevelled hair, Rembrandt c. 1629 <Rijksmuseum in Amsterdam, Netherlands>


헝클어진 머리의 자화상.


렘브란트는 시기별로 각각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자화상 제작에 임했다. 초기에 그려진 자화상들은 얼굴의 표정과 생김새의 특징을 연구하는 데 주력하는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이 시기 그는 주제의 맥락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키아로스쿠로와(명암법)과 자신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두었다. 그래서 <헝클어진 머리의 자화상, 1628>에서 화가의 얼굴은 어둠 속에 파묻혀있으며 배경을 비추는 빛은 그의 목뒤와 오른쪽 뺨 일부를 스쳐지날 뿐이며 입고 있는 옷 역시 하얀색이라는 정도만 알 수 있는데, 주된 목적이 시각적으로 보이는 자신의 얼굴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닌 여러 표정의 얼굴에 빛이 닿으면 어떤 변화와 효과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두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연구의 목적 속에서 젊은 시절 렘브란트가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림에 쏟아진 한 줄기 빛으로 새까맣게 칠해진 어두고 투박한 초기의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듯하다.



Self-portrait wearing a hat and two Chains, Harmensz. van Rijn Rembrandt c.1642 <Thyssen bornemisza>


모자와 두 개의 목걸이를 걸친 자화상. 


마드리드의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에 소장 중인 37세의 자화상 <모자와 두 개의 목걸이를 걸친 자화상, 1643>을 살펴보면 당시 초상화가로서 부와 명성을 모두 누리던 시기였기에 16세기 귀족들의 재킷이나 큰 모자, 그리고 금으로 세공된 목걸이까지 외형적인 모습을 통해 예술가로서 성공가도의 끝자락에 도착해 있는 자신의 여건과 자부심이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시작된 여러 시련들로 인해 계속되는 환경변화 속에서 정신적인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이때부터 외부로 향했던 시선이 내부의 시선으로 옮겨지며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담담한 그의 표정에서 느낄 수 있다. 


자세히 보면 화가의 모습은 아주 다양한 음영으로 색조를 조절하는 부드러운 빛에 의해 입체적으로 규정되고 있다. 20대에 키아로스쿠로와 심리 상태에 대한 연구의 목적에 많은 비중을 두었던 자화상들은 짙은 어둠과 밝은 빛을 통해 보이는 피사체의 모습을 통해 그림을 완성했다면 어느 정도 완숙함의 경지에 이른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극명한 대비가 아닌 적절한 빛과 어둠을 통한 고급스럽지만 사실적인 묘사에 집중하며 착용한 액세서리의 형태나 위치, 또는 몸의 자세를 바꿔가며 여러 방향성을 연구하면서 고전에 잠식되지 않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된 자화상들이라고 볼 수 있다.


렘브란트는 "사람들이 예로부터 어떻게 해 왔지?"하고 물으면서 전통과 관습을 좇아 창작 활동을 하지 않았다. 인간은 이렇게 물을 때 이미 죽어 버린 궤도에 빠져 들뿐이다라며 렘브란트는 항상 처음으로 돌아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림을 그리되 자기 안에서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 그렸다. 티치아노와 라파엘로를 존경했지만 무작정 그들의 스타일을 쫓아가는 게 아닌 그들이 가진 이상을 좇아 자신도 그들과 같이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고 하는데 왠지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들과 겨루어 보고 싶어 하는 렘브란트의 마음이 이 시절 자화상들에서 고스란히 보이는 듯하다.



Self-Portrait as Zeuxis Laughing, Rembrandt c.1662 <Wallraf–Richartz Museum  Kölner, Germany>


웃는 모습의 자화상


렘브란트 말년의 예술은 보다 심화된 인간의 통찰력과 어둠에 가려있는 듯 보이는 깊숙한 인간영혼에 대한 경건한 귀의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위엄을 잃지 않고 있으며, 지혜로움이 가득한 눈 속에서 많은 인생의 교훈을 알려 주고 있는 듯한데, 그로 인해 관람하는 이들은 사색의 시간을 선물 받는다. 

젊은 시절 그려진 작품 속 빛은 대상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극적인 효과를 강조해 주었다면 말년의 회화에는 어둠에 가려 있는 듯 보이는 인간 내면의 작지만 경건한 빛을 보여주고 있는다. 렘브란트가 세상을 떠나기 4년 전 그린 <웃는 자화상, 1665>를 보면 삶의 모든 순간을 체험하고 난 뒤의 체념이 깃든 모습으로 어둠 속에서 웃고 있는 노파의 모습이 보인다. 수차례 수정을 거친 듯 매우 두텁게 그려진 이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노파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면 입술은 웃지만 눈가엔 웃음이 보이지 않는다. 왠지 자신에게 부여된 시간의 끝자락에서 자신이 걸어온 삶의 기록을 되짚어 보며 다 잃어버리고 체념한 지금에서야 화가로서 자신의 진정한 가치와 방향성을 찾았지만 더 이상 자신에게는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게 렘브란트의 웃음이 아닐까.




렘브란트는 단순히 시대의 흐름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그의 예술은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진실되게 담아낸다. 그가 남긴 자화상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 우리에게 생생한 감정을 전달하는 이유는, 역사적인 기록을 뛰어넘어 인간성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창구로 작용하기에 단순한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 것을 넘어, 내 삶에서 특별한 순간들의 기록이 현재의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 데에 대한 큰 영감을 주며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도 가끔 지쳐 스스로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빠지는 그 순간, 렘브란트가 삶의 끝자락에서 평생의 기록들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진정한 가치와 방향성을 찾게 된 것처럼 내가 남긴 오늘의 기록이 언젠가 그날의 지친 나에게 용기를 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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