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라이프치히

사랑하는 아내에게 |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추억하며

by Gigantes Yang

5. 라이프치히로 이사


라이프치히는 나에게 제2의 삶을 가져다준 첫 번째 동네라고 하고 싶다. 음악 말고 정말 많은 경험을 한 동네이다. 5월이면 교회에 있는 기숙사가 완성될 것이라고 얘기를 들었기에 찾아갔지만 문조차 달려있지 않는 곳에서 잘 수는 없었는지 목사님 댁으로 일단 지내기로 했다. 얼마 안 되는 방 크기에 남자 5명이서 잤던 걸로 기억난다. 지금은 전혀 연락이 안 되는 집사님 한분, 나머지는 나를 포함하여 입시생들. 목사님 작은딸이 본인 방을 주고서 본인은 언니 방에서 다른 자매들과 같이 방을 나눠 쓰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었겠다 싶다. 너무나도 감사했지.


IMG_6919.JPG 라이프치히 중앙역 [2008년 5월 저녁, 도착... 그리고 목사님 댁으로 찾아가던 중]


지난 2월에 방문하면서 알아둔 어학원에 다시금 연락을 했다. 생각보다 비쌌지만 제대로인 학원 같아서 등록을 하게 되었다. 수업 배정을 받기 전에 실력 검증을 위하여 시험을 보았지만, 회화가 거의 안되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기초반으로 다시 배정을 받게 되었다. 내 유학생활 동안 가장 열심히 어학공부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학원 외에는 입시 준비를 하려고 했다. 5명이서 같이 쓰는 방에서 무얼 할 수 있었겠나 싶다. 목사님 자녀들이 쓰던 자그마한 피아노로 연습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사님 댁에서 지내던 입시생들 중에 그 피아노를 필요로 하는 학생은 나를 포함하여 5명 정도였던 것 같다. 독일 대학교는 우선적으로 어학이 중요했기에, 또한 입시까지 아직 시간이 있었기에 서두르지 말고 어학부터 제대로 하자고 생각하며 걱정을 안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며칠 지나고서 교회 건축일을 돕기 시작했다. 입시생이 웬 공사판에서 시간을 허비하나 싶겠지만, 내가 다닐 교회에 조금이라도 보템이 되면 얼마나 의미가 있겠나 싶었고. 하나님께서도 내가 살 터전은 내가 만들어 가길 원하셨나 보다 싶어서 정말 열심히 임했다.


가장 먼저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한 곳은 건물의 3층(한국으로는 4층)이었다. 온 유럽에서 지원을 나오면 그곳에서 먹고 자고 했었다. 어느 날 점심 휴식을 하다가 친구의 가방이 통째로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다행스럽게도 건물 입구 근처 계단에서 발견했지만 생활비로 가져온 비상금만 없어지고 노트북은 그대로 있었다. 키보드가 한국말로 되어 있어서 놓고 가지 않았을까 우린 생각했었다. 상황이 심각한 걸 알고서 건문에 자물쇠가 달렸다. 나와 그 친구는 그곳에 남아서 건물을 지키기로 했다. 쌀쌀하기는 했어도 겨울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문도, 창문도 달려있지 않은 곳을 우리는 살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정말 중요할 시기에 어이없는 행동이었겠지만, 왠지 모르게 하나님께서 그러길 원하시는 것 같았다.


당시 핸드폰이 없던 나는 아침 7시면 교회건물로 출근하던 공사장 분들의 발소리에 알아서 눈을 떠야만 했다. 당시 뜨거운 물은 공급이 안되었기에 씻기에는 아직 차갑기만 했지만, 어떻게 씻지도 않고 학원을 가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아침에는 교회의 찬물, 밤에는 기회가 되면 목사님 댁에서의 따뜻한 물. 고생도 물론 되었지만 마냥 좋았다.


어느 날 목사님께서 누군가 나를 찾는다며 전화를 건네주셨다. 지금도 가끔 연락하고 있는 형님이었다. 한국에 빨리 전화해 보란다. 난 또 무슨 일이 난 줄 알고 서둘러 한국에 연락을 했다. 어머니께서 걱정이 되셨나 보다. 생각해 보니 라이프치히로 이사 온 뒤로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고 살았었다. 핸드폰 조차도 없었으니. 자식이 연락이 안 된다며 수소문을 해서 연락을 하셨던 것 같다. 핸드폰부터 장만하라며.


그 교회의 3층에 있는 가구는 내가 다 조립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뿌듯했다. 현재 기숙사에서 기증을 받은 건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나름 쓸만했다.


건축 봉사를 하는 건 늘 즐겁지만은 않았다. 어학원에서의 스트레스도 점점 쌓여만 갔다. 수업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힘이 들기 시작했다. 유학 나온 지 벌써 반년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입시 준비는커녕 피아노를 만져볼 시간조차도 없었다. 이게 정말 맞나 싶었다. 숙소(교회건물)에서도 휴식을 제대로 취할 수가 없었다. 지원을 나오던 분들의 밤새 떠드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이 모든 게 터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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