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첫 정착지는 뒤셀도르프

사랑하는 아내에게 |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추억하며

by Gigantes Yang

4. 첫 정착지는 뒤셀도르프, 독일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나의 첫 정착지 뒤셀도르프에 도착했다. 한국 어학원에서 연결되어 어학원과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독일어 어학원 원장이 터키 사람이었다. 강사 선생님들도 전부 원어민이 아닌 외국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땐 다 상관없었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면 절대 등록 안 하겠지만.


허름한 건물로 들어와 맨 꼭대기 제일 구석진 방을 배정받았다. 내 숙소였다. 너무 좋았다. 발코니 뒤로는 24시간 기차가 지나다녔다. 유학 전에 받았던 정보로는 배게와 이불이 있을 거라 했지만, 없네? 도착 후 어머니와의 첫 통화에서 물어보셨던 사항이 이불과 배게. 당연 혼이 났다.


짐을 풀던 중에 어머니께서 꼭 읽어보라고 했던 책을 꺼내 들었다. 어느 미국의 목사님께서 쓰신 책. 아직까지 다 읽지 못했다. 워낙 책을 잘 읽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그 사이에 껴있던 어머니의 편지 때문이다. 어머니의 걱정과 응원이 적혀 있었다. 편지를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숙소에서 보내던 첫날밤에도 밤새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 편지만 펼쳐보면 눈물이 나서 그 책을 더 멀리했던 것 같다.


술 취한 사람들과 마약쟁이들이 북적이던 건물에서 5달을 지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고생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쓸데없이 3개월 체류비자를 받아왔었다. 비 자청에 가서 새로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독일어가 돼야 말이지. 한국에 있을 때 지휘로 너무나도 많은 도움을 주셨던 은인께 연락을 드렸다. 단번에 나에게 지인 한 분의 연락처를 주셨다. 그분의 도움으로 보험가입이며 비자 준비며 다 할 수 있었다. 당시 그 동네 비 자청은 알파벳에 따라 방이 배정되었었다. 가장 흔한 K로 시작되는 이름은 제일 운이 없기로 유명한 방이었다. 난 다행스럽게도 Y. 영어를 써도 되겠냐는 한마디에 비자청에서 구박을 받았지만, 그래도 1년짜리 무사히 받고서 뒤셀도르프의 생활은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교회.jpg 라이프치히 한인교회 [2011년 7월, 교회 앞에서... 다시 1층에는 한인마트가 있었다.]


2월이 되었다.

유학 준비 시절 연락을 미리 드렸던 라이프치히에 계신 목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목사님, 사모님, 두 자제분들... 모두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따뜻했던 식사와 숙소. 5월에 라이프치히로 이사를 약속드리며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

2018년 11월 29일 목요일, 당시 현재 -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하고서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지금 잘츠부르크로 향하는 기차 안에 있다. 여행도 출장도 아니다.

거의 10년간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보이지도 않는 미래에 투자하겠다며 뛰어들었었지만 지칠 대로 지쳐 있다. 내가 박사학위를 위하여 또다시 공부를 하려고 잘츠부르크로 향하고 있다. 10년 전의 나는 지금의 모습을 상상도 못 했었다. 오로지 음악만 하고 있을 줄 알았던 나의 10년 뒤 모습은 예상 밖이었다. 오랜만의 겨울이라 그런지 춥다.

...


라이프치히로 이사를 가기까지 몇 달이 더 필요했다. 뒤셀도르프에서의 삶이 아직 남아있었다. 매일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에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러댔다. 처음에는 문을 열어주었지만 옆집에 사는 마약쟁이 인걸 알고서 그다음 날부터는 없는 척했다. 나가질 않으니 집 문을 열려고 하네? 처음으로 무서웠다. 그래도 한국에 있는 집을 떠올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내가 어떻게 그 집을 나왔는데. 곧 이사를 갈 테니깐 조금만 참자고.


집을 빼려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을 들었다. 집 계약 해지를 하려면 3달 전에 미리 해야 했던걸 난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집 계약 시 설명을 해주었겠지만 내가 그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독일어 구텐탁 외에는 할 줄 아는 말이 없었는데 무슨 수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않는 조건으로 그 집에서 나는 나올 수 있었다.


5월이 되어 라이프치히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드디어 뒤셀도르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온갖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도 북적이던 중앙역. 몇 년이 지나서야 나중에 한번 그 동네를 다시 찾아갔지만 정말 거짓말처럼 너무나도 좋게 변화해 있었다. 내가 얼마나 이 험악한 동네에서 고생했는지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더 이상 증명할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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