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맘때쯤 생각나는 피아노 선생님

by Gigantes Yang

어떤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베토벤과 모차르트

'베토벤 | Ludwig van Beethoven, 모차르트 | Wolfgang Amadeus Mozart' 하면 전공자, 비전공자 할거 없이 우리는 이들을 위대한 음악가로 기억한다. 출생지가 어딘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더라도 그들의 대표적 작품은 다들 알고 있다. 작품명을 몰라도 안다. 베토벤은 운명 교향곡 | Symphony No.5 , 모차르트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속에 끓어오르고 | Der Hö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 (오페라 마술피리). 제목은 모른다 하더라도 작품의 첫 부분만 들어봐도 누구나 다 아는 곡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느 시대에 활동했는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잘 모른다. 의외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베토벤이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알고 있다. 거의 평생을 비엔나에서 활동했고 비엔나 국립묘지에 그의 묘지가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베토벤은 어디까지나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한 독일인이다. 모차르트 또한 잘츠부르크 출신이지만 대부분의 인생을 비엔나에서 보냈기 때문에 비엔나 출신으로 알고 있기도 한다. 참고로 잘츠부르크는 기원전 고대 로마인들에 의해 여러 정착지가 하나로 합쳐진 도시로, 1803년에 오스트리아의 일부가 된 유서 깊은 도시이다. 영화 불멸의 연인이나 카핑 베토벤, 아마데우스를 접하면 위에 언급된 두 음악가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 100% 사실만을 전달해 주지는 않는다. 이들의 음악, 삶을 음악적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 분석한 음악학자들 또한 여러 시각으로 갈리기 때문에 한두 명의 시야에 의한 해석으로는 이들의 음악세계와 삶을 연결해서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음악을 분석할 때 반드시 시대적 배경도 연결 지어서 분석을 해야 할 것이다.


베토벤의 '운명'이라는 제목을 가진 교향곡 5번은 베토벤이 '운명'이라는 제목을 지은 것은 아니라고도 한다. 이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저작권이나 출판업계 체제가 제대로 자리 잡고 있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상업 목적으로 임의로 제목을 지어서 음악이 출판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필자는 베토벤과 모차르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가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음악만큼은 공부할 가치가 굉장하다는 것을 안다. 수많은 음악가들 중에 누군가는 존경받아온 사람이었고, 괴짜였고, 망명 음악가였으며, 정치적인 음악가의 삶을 살아간 음악가도 있다. 그들의 음악 인생에 있어서 옳고 그름을 내가 판단할 수는 없다. 음악만큼은 모든 나라가 공유하는 유일한 언어이기 때문에 경계선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음악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눈과 귀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정서적으로나 특별히 문제가 될만한 이유가 있는 음악은 피하는 게 좋겠지만, 음악을 음악적 가치로써만 생각하고 받아들였을 때, 음악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 때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 주변의 특정 인물을 떠올릴 때 그 사람의 업적보다는 그 사람의 행실이나 나 자신이 기억하는 그 사람의 모습을 주관적으로 묘사하는 정도이다. 베토벤을 떠올리면 기억날만한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작곡가, 운명 교향곡, 말년에는 귀가 들리지 않았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가 1770년 독일 본 | Bonn에서 태어나 1827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 Vienna에서 사망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음악 전공자들 중에서도 모르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이 있다. 어떤 사연으로 독일에서 태어나 비엔나로 건너가 음악인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 아는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베토벤은 괴팍하고 무식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슬픈 사연이 많은 안타까운 인생을 살다 간 사람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일신홀 [공연이 많이 취소되는 요즘]


나의 피아노 선생님

필자에게는 잊지 못할 피아노 선생님 한분이 계신다. 독일에서 유학을 막 시작할 때 즈음 감사한 기회로 뵙게 되었다.


당시 입시를 준비할 때 선생님을 찾아뵙고 레슨을 받게 되었다. 독일의 어느 음악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계시던 선생님께서는 지금껏 받아보지 못한 레슨을 해주셨다. 지금도 필자 또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당시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대하시던 마음을 떠올리곤 한다.


선생님께서는 레슨이 시작되기 20~30분 전부터 레슨실에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학생이 피아노 앞에 앉게 되면 레슨 전에 제일 먼저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셨다. 배우러 오는 학생의 종교와 인종을 떠나서 가장 먼저 학생들을 위한 축복을 잊지 않으셨다. 배우러 오던 학생들은 선생님의 기도에 맞춰 자연스럽게 눈을 감게 되었고 함께 기도가 시작되었다.


학생이 다뤄야 할 작품에 대한 배경 설명을 반드시 해주셨다. 어떻게 작품이 탄생되었는지, 당시 작곡가의 상황이나 시대적 배경은 어땠는지를 꼭 알려주셨다. 필요하면 음악분석도 해주셨다. 악보에 나온 대로만 무작정 외우고 기계적으로 치지 않게 함이었고, 악보 너머로 보이는 작품세계에 좀 더 다가가길 원하셨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학생이 먼저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셨고, 당신은 늘 학생들을 기다리셨다.


작품의 음악 해석에 깊이가 있었다. 악보에 적혀있는 악상기호가 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셨다. 음악뿐만 아니라 학생 한 명 한 명의 삶에 도움을 많이 주셨다. 입시 준비는 물론 이었지만, 일상생활에도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떻게 아셨는지 기억하시고 먼저 연락을 주셨다.


같은 한인교회의 집사님이셨던 선생님께서는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오랫동안 많이 아프셨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돌아가셨다는 비보에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선생님과 함께했던 피아노 레슨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필자가 기억하는 교회 예배시간에 들었던 선생님의 마지막 연주를 기억하며 [찬송가: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글을 정리하며

필자도 어느덧 졸업을 하고 교육자의 위치에 서있게 되었다. 선생님께 받은 가르침을 잊지 않으며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무엇인지 늘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학생들에게는 자신들의 눈앞에 서있는 교육자에 의해 세상에 대한 시야가 만들어진다. 강의에 들어오는 모든 학생들의 마음과 완전히 함께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교육자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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