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흐름을 '잘 들으세요'

소리를 잘 들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며

by Gigantes Yang

음악의 흐름을 '잘 들으세요'


일신홀01.jpg 일신홀[2021년 2월, 리허설을 위해 방문]

피아노 선생님으로부터 가장 처음 들은 '잘 들으세요'의 의미는 악보를 보고 똑바로 치라는 뜻이었다. 악보에 적힌 대로 틀리지 않고 올바른 화성과 멜로디를 치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악보 위에 적힌 것이 곧 법이었고, 그것을 어겼을 때에는 '잘 못 듣고'. '잘 듣지 않는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필자가 생각하는 '잘 듣는다'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눈앞에 놓인 악보의 음악을 나 자신이 이해하고 치고 있는가 인 것 같다. 기존의 연주된 녹음 혹은 영상을 통해서 공부를 하게 되면 물론 빠르게 그 곡의 흐름이나 표현에 있어서의 시간을 줄일 수 있겠지만, 과연 이러한 방법만이 길일까 생각을 많이 했었다. 대부분 접하게 되는 곡들은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곡들이다. 피아노 연습은 필자에게 있어서 이미 연주된 녹음본(혹은 영상)의 학습이 선행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영상 속의 연주자는 이미 그 곡을 이해를 하고, 몸으로 소화가 된 상태의 연주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가 곡에 대한 공부가 되어 있기 전에 그 연주를 통해서 학습을 우선적으로 한다면 작품 해석에 혼동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필자에게 '잘 듣는다'는 것은, 얼마만큼 이 작품에 대한 이해가 잘 되어 있는가, 즉 얼마만큼 이 곡에 대한 음악적 분석이 되어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멜로디의 프레이징은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하나의 호흡이고 숨을 쉬어야 할지, 같은 다이내믹이라 하더라도 상황에 따른 표현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내가 현재 치고 있는 화성의 구성(Structure)은 어떻게 되는지, 외성과 내성 소리의 균형은 어떻게 해야 다음의 화성과 얼마만큼 어울릴지 등을 충분히 학습을 하며 분석을 해본다. 연습 혹은 과제를 위한 작품이 내 손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처음부터 악보를 쳐보지는 않는다. 물론 초견으로 음표가 하나하나 들어올 정도의 작품이라면 음색을 느끼고자 천천히 쳐보기도 하겠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하는 것은 음악 외적인 것(작곡가, 작품의 시대적 혹은 상황적 배경 등)과 악보에서 보이는 것들(템포, 악상기호, 가장 세분화된 리듬은 무엇인지... 등등)... 이러한 사항들을 최대한 확인부터 한다. 내가 만약 이 작품의 지휘자라면 어떻게 지휘를 하고 싶을까 피아노 앞에서 상상도 가끔씩 해본다. 세분화된 리듬을 확인하는 이유는, 예를 들어 느린 템포의 곡에서 가장 작은 리듬이 32분 음표였을 때, 온음표를 그냥 템포에 맞춰서 연주하지 않고 온음표가 울리는 동안 머리로 32 음표만큼의 값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연주할 수 있는가를 부분적으로 연습해 봄으로써 음악의 흐름을 좀 더 깊이 있기 이해하기 위함이다.


물론 위에 언급한 작업들이 불필요할 경우도 있겠지만, 영상이나 녹음으로 접하게 되는 경우는 최대한 미루고 또 미루려고 한다. 그래야만 이 작품의 연주의 주체가 나 자신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이 작품의 첫 단추를 잘 채울 수 있다는 생각, 더 나아가서 이미 완성된 것을 먼저 접하기보다는 나로 인해서 완성되어 가는 것을 직접 느껴봐야 작품을 연주할 때 '잘 들을 수 있다'라고 생각된다.


또한 '잘 듣기' 위한 방법으로 스스로 연주한(혹은 연습한) 것을 녹음(혹은 녹화) 해본다. 그래야 내가 연주하고 있는 소리가 맞는지(연주법, 다이내믹 등등), 그리고 내가 연주할 때 자세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등을 확인하면서 교정이 가능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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