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gantes Yang Jan 03. 2022

번아웃

번아웃


2021년 연말의 필자의 상태.

하지만 용케도 글 쓸 기력은 있


2019년 12월에 귀국 후 열심히 달왔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오랜 유학생활을 끝으로 고향으로 돌아오자마자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한동안 일도 없었고, 몇 개 그나마 계획했던 작품 연주도 취소되는 바람에 한동안 힘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금방 끝날 것만 같았던 이 상황도 어느새 시간이 흘러 2022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에 들어오면 뭐든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했던 내 생각과는 다르게 한동안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날 알아봐 주겠지... 누군가는 내 음악을 찾아주겠지... 했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욕심일 뿐이었다. 헛된 바람일 뿐. 당장에는.


상황 탓만 할 순 없었다. 아무 곳에서도 불러주지 않는다면 내가 찾아가는 방법뿐이었다. 일이 없었던 2020년 1월,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간들을 보낼 새도 없이 곡만 썼다. 작품이 완성되고 여기저기 보내다 보면 하나 정도는 연주되겠지... 하는 심정에 무작정 작품을 써 내려갔다.


협회 가입부터 했다. 신인에게는 작품 연주를 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회 가입비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것조차 낼 돈이 당장에는 사실상 부족했다. 생활비에서 조금 보태서 가입한 협회 덕에 작품 연주를 할 수 있었다. 감사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작곡가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귀국을 하고 나서는 신작을 새로 쓴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작품을 구상할 시간이 촉박할 정도로 먹고살기에 바쁘다. 그래서 대부분은 예전에 썼던 작품을 재연하거나 개작초연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작품을 쓰는 것 외에는 당장에 수입이 없었던 나는 무작정 새로 곡을 썼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재연 곡보다는 신작이 연주되었을 때 받는 작품료가 그나마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020년 1월부터 지금까지 완성한 작품은 거의 20곡. 일 년이 365인데 고작 20곡이냐 하겠지만, 한 달에 한 작품을, 그것도 작품성이 있는 작품을 제대로 완성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작업이다. 물론 음악제에나 공모전에 출품을 한다고 해서 항상 채택돼서 연주가 이뤄지는 건 아니다.


2019년 12월, 귀국 이후부터 연주되거나 공모전에 입상한 작품은 약 20번.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작이었다.


2020년 9월부터는 상황이 조금은 달랐다. 감사한 기회로 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늘어난 강의 시간은 현재 매일 학교에 나가고 있다. 강사라는 직업 자체가 불안정한 직업이라 완전히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수입이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늘어난 수업만큼 작품에 몰두할 시간은 점차 줄어들었다. 매일 수업 준비에,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 출제. 비대면 수업을 원하는 학생들 위해 매일같이 학습자료와 ppt자료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있다. 나이를 한두해 먹다 보니 출품할 기회도, 공모전에 참가할 기회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나이 제한이라는 규정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작곡에 더 매달린다.


귀국 이후에 거의 처음 정신을 차리게 된 건 요즘인 것 같다. 많이 부족했고 아직도 헤처 나갈 일들이 많지만,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해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연말일 뿐이었는데, 힘겨웠다. 뭔가 해야 할 일은 많은 것 같은데 손에 잡히질 않다. 작품을 써볼까 책상에 앉으면 유튜브 영상만 보고 있다. 수업 준비를 해볼까 하면 영화를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있기만 한다. 그러고서 최대한 다음날로 미루고, 마감 바로 직전에 부리나케 고. 반복되는 무기력함.


이 글을 쓰고 있었을 때만 해도 한 달 반이면 2021년이 끝나는 시기에 있었다. 그러고 2022년이 시작되겠지 싶었는데 벌써 2022년 1월. 새해가 되면 이 모든 나의 현 증상도 재충전되겠지. 그렇게 믿으며 새해를 기다렸다. 새로운 공모전과 음악제가 국내 국외 할 거 없이 새로운 작품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힘닿는 데까지 도전해 보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빨리 다시 정신 차리고 일어서야 한다.


누구를 위한 무대인가 [2021년 연말 공연을 앞두고서]

번아웃.

연말이면 찾아오는 녀석.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늘 껴든다.

결국에는 내가 견뎌내야 하는 부분이다.


혼자 일어서기는

처음 경험을 해도

다시 경험을 해도

늘 도전이 필요하다.

일어나면 어디론가 행선지를 정해야 하기 때문에

더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앉았다 일어서기만 반복하게 된다.


2022년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롭세 일어서기를 시작할 때

나는 어느 행선지를 향해가고 싶을지

지금 앉아있을 때 충분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려고 한다.


그렇게 2021년 연말에 나를 무겁게 만들었던 

번아웃이라는 존재를

이렇게 이겨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둘기 무리가 보이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