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에는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이 있었다. 전쟁을 피해 산을 넘어 터를 잡으셨던 가문에서 태어난 나의 할아버지가 이 마을의 1세대였다.
아버지께선 당신이 어렸을 적만 해도 그 시절에 마당쇠라고 하는 하인을 거느리며 이 마을의 큰집으로 불렸다. 오랫동안 포천향교의 전교셨던 할아버지께서는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도우며 사셨다. 다른 사람을 늘 먼저 생각하시고 더불어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늘 손주들에게 알려주셨다. 오랫동안 마을의 자랑거리셨고 마을의 자존심이셨다.
명절 아침마다 할아버지께서는 새벽 6시면 손주들을 전부 다 깨우셨다. 숨을 조금이라도 들이쉬면 코가 얼어붙던 날씨에도 할아버지께서는 매일 아침 조깅을 하셨다. 우리는 아침에 같이 뛰지 않으면 아침밥이 없을 거라는 할아버지의 반 협박(?)에 할아버지의 등을 쫓아 열심히 뛰었었다.
초등학생에게는 천 원 한 장을, 중고등학생에게는 오천 원 한 장을, 그리고 대학생에게는 만원 한 장을 주시며 명절 때마다 돈의 중요성을 우리들에게 일깨워주셨다. 너무 어리면 돈의 가치를 모를때기 때문에 용돈이 생략되었고, 대학을 졸업한 손주에게는 용돈 받을 나이가 지났기 때문에 새배를 함으로써 돈이 아닌 어른에 대한 공경을 가르치셨다. 교육인 다운 가르침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명절 때면 집집마다 세배하러 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모두가 다 같은 성씨였기에 누가 누군지, 항렬이 어떻게 되는지 암만 설명을 들어도 기억할 리가 없었다. 단지 어른들이 주시던 용돈에 신났던 우리는 돈을 모아서 마을 입구에 있던 유일한 구판장에 가서 군것질 거리를 잔뜩 사 와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이곳에는 물건이 자주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웬만한 과자의 유통기한이 일주일 미만이었고 아몬드 초콜릿은 심지어 항상 날짜가 지나있었다.
담배연기와 술냄새가 가득했던 구판장 방에는 어르신들께서 항상 화투를 치고 계셨다. 우리가 누구 손주인지 이미 다 알고 계셨던 주인 어르신께서는 늘 할아버지의 안부를 물으셨다. 할아버지를 포함한 할아버지 윗세대 집안 어른들의 도움을 받지 않은 마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지금은 예전의 구판장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작은 시골 슈퍼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마을의 어느 집 앞에도 가로등 하나 없던 좁은 거리를 지나기 위해서 우리는 손전등을 꼭 손에 들고 다녔어야 했다. 건전지는 항상 불량이었는지 후레시를 켠 지 10분도 안돼서 바로 방전되었고, 우리는 서로 놀라게 하려고 어둠 속에서 소리를 지르고 도망가며 놀았었다.
흙과 자갈이 가득했던 마을 길, 곳곳에는 개울가가 있어서인지 물 흐르는 소리가 밤낮으로 끊임없었고, 개구리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 밤마다 같은 허공을 향해 짖어대는 동네 강아지들, 지하수를 매일같이 끌어올리던 펌프 소리. 명절 때마다 구판장 앞에서 열리던 마을 윷놀이 대회. 이제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낯설어진 마을.
예전의 어르신들은 거의 모두 돌아가셨고 그들의 자식들은 모두 출가했다. 타 지역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살기 시작한 산속 마을.할아버지의 집은 당시에 동네에서 유일하게 크고 넓은 대청이 있던 ㄷ자의 형태에 큰 대문이 있던 집이었다. 손주들이 와서 지내는 동안 좀 더 편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 마을에서 유일한 형태였던 2층 집을 지으셨다. 2~30년 전만 해도 꽤나 최신식의 형태라 동네의 부러움과 자랑의 상징이었지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는 거의 빈집이나 마찬가지여서 마을에서 가장 낡은 집이 되어버렸다. 곧 정리될 집이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마을의 다른 집에서 거주를 하신다. 가족의 흔적이 곧 사라질 거라는 생각 때문인지 명절 때 이 집을 멀리서 지나가면서 바라볼 때마다 옛 생각에 왠지 모를 섭섭함이 몰려온다.
손주들을 반갑게맞이하시던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이제는 아버지께서 나를 반기신다. 점점 백발이 되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에 할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비친다.
평생을 마을에 남아 살아가시는 몇 안 되는 고향분들께서는 할아버지를 회상하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마을의 유일한 자랑이라고 한다. 마을에 함께 살아가며 동네를 지키던 마을 어르신들, 주민들이 거의 없어진 지금을 많이 아쉬워하신다.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마을의 잔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씩 낯설어진다. 누군가는 살고 있어야 마을이 살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게 사람이 사는 이치이지만, 왠지 모를 서운함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