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수혈이 필요했다. 커피가 필요할 때 우리 부부가 가끔씩 하는 말이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드라이브 스루 drive-through를 이용하기로 했다. 마침 근처에 장모님 댁이 근처에 있어서 총 3잔을 주문하기로 했다.
장모님께서는 무슨 커피를 비싼 돈을 내면서까지 사 마시냐며 됐다고 하시더니 당신이 원하는 음료를 정확히 알고 계셨다.
"그럼~, 난 바닐라 라떼. 따뜻한 걸로."
한참을 웃다가 운전석에 앉아있던 내가 주문을 진행했다.
"바닐라 라떼 따뜻한 거 톨 사이즈로 한잔하고요,
아이스 라떼 따뜻한 거 디카페인으로 톨 사이즈 한잔,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 한잔이요."
아주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아메리카노는 아이스를 말씀하시는 거죠 손님?"
주문을 받던 종업원의 당황하는 듯한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듯했다. 어떻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면서 따뜻한 거라고 말할 수 있냐며 어이없다는 듯이 아내가 나에게 뭐라 했다.
사연에서만 들어보던 실수를 내가 하고야 말았다. 사실 이런 실수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내가 카푸치노를 부탁하면 라떼를, 라떼를 부탁하면 카푸치노를 주문하곤 했다. 주문을 하는 순간이면 딴생각을 하는지 자꾸만 엉뚱한 주문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심지어 사이다를 부탁하면 콜라를 시켰다.
나로 인한 잘못된 주문으로 가끔은, 아주 가끔은 좋은 결과를 - 거의 드물지만 - 가져다 주기도 한다. 한 번은 처형에게 받은 커피 쿠폰으로 주문을 할 일이 있었다. 바닐라크림 콜드 브루 라떼 쿠폰으로 아이스 라떼를 시킬 생각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 나는 아무런 말없이 쿠폰만 들이밀었다.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그대로 주문을 끝내고 아내가 앉아있던 자리로 향했다. 아내와 잠시 대화를 하던 중 주문번호가 불린 나는 픽업 pick-up으로 향했다. 음료를 집어 들은 나는 나의 실수를 바로 알아차렸다. 긴장된 마음으로 음료를 들고 아내에게 갔다.
"괜찮아, 잘했어."
평상시엔 안 그러면서 주문만 하러 가면 왜 이리 긴장을 하냐고 하더라. 어렸을 적부터 유독 주문에 약한 나였다.
아무튼 주문한 음료는 가져왔고, 이제 새로울 것도 없다는 듯 아내는 나를 안심시켰다. 다음부턴 본인이 주문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실수로 받아온 바닐라크림 콜드 브루 라떼 뭐지? 뭔데 이렇게 맛있지? 나의 실수로 인하여 아내는 그다음 방문에도 동일한 음료를 시켰다. 아내의 취향 저격.
가끔은 실수를 저질러도 예상 밖의 결과를 만들어낼 때가 간혹 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하지만 우리 부부의 메뉴를 머릿속에서 몇 번을 읊고 또 읊어도 자꾸만 헷갈린다.
여전히 내가 주문할 때면 아내가 늘 옆에서 유심히 듣고 있는다. 오늘도 긴장 속에서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