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건

역사나 음악사나 거기서 거기

by Gigantes Yang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건


예전보다 세상은 살만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2022년 1월 구 서울역사를 지나가면서


오랜만에 서울역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한분 한분 사연을 알 수도 없고, 아는 척을 감히 할 수도 없겠지만(그들도 과연 알아주길 원할지는 모르겠다), 누군가 버리고 간 박스와 종이, 좀 더 여유가 되는 사람은 텐트와 침낭으로 나름의 단지를 이루고 산다. 삼삼오오 모여서 나누는 소주 한 병과 김치 반찬. 이들은 왜 이곳을 종착지 삼아서 자리를 잡았을까. 무엇으로 하여금 이들은 이곳에서 남은 생을 보내고자 마음을 먹었을까. 20년 전 이곳 구 서울역사를 지날 때에도 생활을 하던 이곳 사람들.


나는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살아가느라 정신없지만, 박스로 지어진 작은 집 속에 누워서 눈을 감은 이들을 바라보다 보면 버틴다기 보단 아무런 고민 없이 그냥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아닐 것이다. 이들을 동정할 생각은 아니다. 내가 뭐라고.


촌을 이루고 사는 이곳 주민들 옆에는 요즘 한창 화두가 되고 있는 백신 비리에 대한 시위가 한창이다. 지나가는 시민들 한 명이라도 놓칠세라 절대 백신 맞지 말라며 자신들이 만든 전단지를 나눠준다. 종이를 받지 않으면 지나가질 못하게 한다. 이 길을 지나갔어야만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받기는 했다.


역사 history는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는 자들을 위한 기록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시대를 대표하던 이들은 이름과 업적이 명확하게 기록이 되어있는 반면에 그 외에 같은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두리뭉실하다. 리는 기록되어 있는 대로 이해하고 믿을 수밖에 없다. 역사가 그렇다는데 아니라고 할 증거가 딱히 없지 않나.


서양음악사 책을 펼쳐보면 대략적으로 중세시대부터 음악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직 신 god을 위한, 신에 의한 음악이 추구되던 시기였다. 감히 인간이라는 존재는 음악 안에서 신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없었다. 하지만 시대를 지나오면서 신이라는 존재에 실망도 하고 의존도도 낮아지고, 점차적으로 신이 아닌 인간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기 시작하면서 음악 또한 인간을 위한 음악이 새롭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박(혹은 강박)에 올 수 없었고 불협화 취급을 받던 인간의 하찮은 예술적 표현이 악보 위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게 된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신에게 지배를 받던 음악은 신에게 벗어나면서 왕족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었고 또 다른 음악적 계층과 차별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신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되던 시대는 이제 돈과 권력을 진 사람들에 의한 시대로 변화되었다.


악보가 보급되고 출판되기 시작하면서 음악가들은 자신의 이름을 더 쉽게 알릴 수 있게 되었고 출판업이 성장하게 되었지만, 악보라는 것 자체가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었다. 이전부터 악보(종이)는 부의 상징이었던 만큼, 일반 사람들을 위한 음악에서 시작된 게 아니란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교육의 기회가 없었지만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던 학생들을 위해 음악학교를 설립한 슈만과 멘델스존의 선행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람들은 결국에 더 좋은 퀄리티의 음악을 찾게 되었고 또 다른 경쟁을 낳게 되었다.


예전에 동독의 독일학교 입시에서 심사를 보던 한 독일 교수는 나에 대한 평을 이렇게 말했다.

표현을 하자면,


"비슷한 실력에 더 어린 학생이 시험을 본다면 자네를 뽑지 않겠네."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나름의 수상경력과 연주실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인정할 만큼 대단한 것은 없다. 국제적이거나 국내에서 인정되는 큰 대회 혹은 공연인지에 따라서 나의 실적은 점수로 환산된다. 큰 국제대회에서 아직까지는 1등이란 걸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장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지 아직은 실감이 나질 않는다. 큰 인정은 못 받아도 나름 열심히 활동해 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더 차갑게 반응을 하고 있었다.


고전시대만 해도 작곡가는 의뢰자의 취향에 맞게 작품을 만들어가는 기술자 | Technician의 역할만 하면 그만이었지만, 낭만시대로 들어서면서 작곡가 스스로가 예술가 | Artist로 거듭나면서 자신을 진정한 음악가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애호가 | Fandom가 생겨나게 되었고 작곡가는 더 뛰어난 실력과 경력을 밑바탕으로 인맥을 키워나가야 했고,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퀄리티가 더 좋은 작품을 선호하며 찾게 되었다. 나 또한 같은 음악이라 하더라도 퀄리티가 더 좋은 연주단체를 찾게 된다.


귀국 후 대학교 강사를 지원하며 한창 면접을 보러 다닐 때 면접관들이 나에게 하던 말들 중에 이런 얘기를 했었다.


"강사 경력이 전혀 없으세요?"


채용을 하고는 싶었지만 경력이 아쉬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지원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질문이었다. 전국의 모든 대학교에서 강사 경력자만 뽑는다면 경력이 없는 갖 졸업한 졸업생들은 어디에서 경력을 쌓냐고 면접관들을 향하여 반문을 했다. 난처해하던 질문자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예외도 분명히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원서류에서 그 누구도 뭐라 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 이상의 서류를 제출했을 경우 - 이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생각되지만 - 혹은 지인을 통한 채용이 아닐까 싶다. 수면 위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강사 지원을 몇 번 해보면서 경험하게 된 건, 내정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대부분 수긍을 하겠지만 이런 얘기를 함으로써 나의 얘기에 반대하는 의견들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확실한 건 무엇이 옳고 그름을 얘기하고자 지금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니란 걸 알았으면 한다.


지금까지 거론한 얘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서양음악사의 클래식 음악(편하게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 낭만, 현대를 통틀어서)에는 보장된 실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력이라고 하면 탁월함 | distinction 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음악성 | musicality과 스타성 | star-qualty 혹은 독창성 | creativity, 콩쿠르와 같은 대회를 통해 입증된 실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맥 | personal connections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외에는 당연히 경제력(부와 권력, 정치) | financial and political means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중에서도 가능성에 대한 순위가 있겠지만 이 중 하나라도 해당이 안 된다면 정말 쉽지 않은 예술가의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듯이 사람들의 관심사도 변하게 되어있고, 관객들의 관심사도 계속해서 성장한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음악가가 살기 편한 세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예술가는 신에 의해 지배를 받는 시대를 거쳐서 왕족이 지배를 하는 시대로, 이후에는 의뢰자에 의한, 관객에 의한 시대에서 늘 살아남아야 했고, 지금도 끊임없이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대를 채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는 음악을 해야 더 많이 불려 다니고 이름이 더 알려질 수 있고 한 번이라도 더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고는 하지만 어디 개개인의 음악적 취향과 입맛을 맞추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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