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시작한 이후 2019년 처음으로 내 이름을 공식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시간은 정말 길고도 험했다. 무대 공연의 프로그램에 내 이름 석자가 보이기 이전의 약 20년 동안 음악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다고 느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정말 하기 싫었다. 음악은 괴로움 그 자체였다. 음악은 절대 가까이 두면 안되는 존재였다. 취미가 전공이 되고 직업이 되는 순간 인생은 즐거움과 괴로움의 저울질을 끊임없이 해댔다.
2019년 4월 27일 그리고 2019년 8월 31일.
누구에게나 삶의 전환점이란 게 꼭 한 번쯤은 반드시 기회처럼 주어진다고 했던가.
끝이 어디인지 도무지 보이지 않던 광활한 암흑 속 지옥의 늪과 같이 의미 없게 느껴졌던, 나 자신을 구렁텅이에 스스로 몰아넣었던 20년을 처음으로 음악가로서 살아갈 기회의 동아줄로 나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전문 음악인으로 불리기에 아직도 한참 부족하고 앞으로도 갈길이 멀었지만, 위의 두 기록은 나에게 콩쿠르에서 첫 대상을 안겨준 날이었고 그토록 원했던 무대 위에서의 지휘를 할 수 있었던 날이다. 단순히 일회성으로 끝날 것만 같았던 그날들의 경험은 계속해서 나에게 좋은 기회들을 가져다주는 탄탄한 연결구 역할을 해주었다. 20년 만의 첫 공식 상과 지휘자로써 첫 무대. 그것도 유럽에서. 물론 이후로 지휘를 할 기회는 아직까지는 없었지만. 그게 어딘가 싶다.
이제 고생이 끝났으니 즐거운 행복의 길만 남았구나 찰떡같이 믿었지만 2019년 12월에 갑작스러운 귀국을 결정하게 되면서 한국에서 시작된 재정착 삶은 생각 이상으로 고되었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지 불과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전 세계가 힘들어했지만, 그게 고된 삶의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연주의 기회는 줄어들었고,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부푼 기대와는 다르게 지원하는 곳마다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힘든 순간에도 매사에 좋게 생각하려고 하는 의지가 꺾이지 않았던 덕분인지 기회는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한 학기 정도의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기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나하고 인연이 없는 것들은 아무리 붙잡아도 어떻게든 스쳐 지나가기 마련이라 애써 힘을 빼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기회라도 엿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 무작정 곡을 쓰기 시작했다. 대작을 써야겠다는 욕심보다는 당장에 쓸 수 있는 곡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작품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의 한두 달에 한번 이상은 내 작품이 연주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연주된 작품들을 두 번 다시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원인을 몰랐다. 혼란 속에서 되찾은 음악에 대한 나의 정체성을 재정비하고 싶은 마음에 음악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그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시작된 작업은 두서없이 진행되었고, 하나둘씩 쌓여가는 작품을 다시 보니 나 자신을 그리고자 했던 나 자신의 자화상이 아닌, 누구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흐릿해 보이는 어떤 특정 인물의 초상화와 같은 모습을 억지로 껴맞추듯 표현하려고 했다는 생각에 또 한 번 좌절을 하게 되었다.
이 정도가 나의 예술적 표현의 한계인가... 하고 받아들이며 억지로 껴맞춰 완성된 작품은 잊힐만하면 연주가 이루어지는 식이었다.
그리고 2022년, 최근에 감사한 기회로 미디어아트 작가와 작업할 기회가 있었다. 2021년에 작가와 처음 인연을 맺고서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올해에 작가로부터 아주 반가운 연락을 받게 되었다.
올해 중반기에 맞춰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새로운 실감 콘텐츠가 선보이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를 본인이 맡게 되었다고 한다. 약 2분 30초가량 길이의 영상에 들어갈 음악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자세하게는 영상의 흐름에 맞춰 전자음악과 전통음악이 접목된 음악이면 좋겠다고 했다.
[이동하는 초상화 일부: 저작권으로 인하여 영상은 올리지 못합니다]
이동하는 초상화의 제목을 가진 작가의 이번 작품은 조선 후기의 가 윤둔서가 1710년에 그린 학자 심득경(1673-1710)의 초상화를 중심으로 짧은 영상이 제작되었다. 그동안의 나 자신의 작품에서 스스로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색한 모습을 하고 있는 듯 비쳤던 타인의 초상화라는 기분에 많이 무너져 있었는데, 이번 작업을 통해서 내가 하고 있는 음악이 마냥 틀리지는 않았구나 싶었다.
20대 때에는 뭣도 모르면서 무작성 유명해지고 최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현재 위치, 나의 부족한 음악성은 생각도 안 하고서, 몇 년 하다 보면 저절로 내 이름 석자는 쉽게 알릴 수 있을 거라 믿었었다. 같은 연배의 음악가들이 하나둘씩 입상을 하는 걸 보면서 속앓이도 해봤다. 왜 난 안되고 쟨 됐지?라는 생각이 처음에는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분야 상관없이 공모전 지원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도 있겠다. 공모전이란 지원자의 운에 따르진 않는다. 어디까지나 지원자의 표현력도 중요하지만 공모전의 분위기나 심사위원들의 취향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난 내 음악에 완전한 자신감이 여전히 있지는 않지만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은 나름 즐기는 편이다. 한 분야에서 인정받는 삶도 나름 의미 있는 인생이겠지만 그로 인해 현재 놓치고 있는 게 더 많아질 것만 같다. 그래서 요즘은 매일같이 곡에 매달리지 않고 쓰고 싶을 때 악보를 펼치려고 한다.
3분이 채 안 되는 영상이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정해진 시간은 없고 해당 요일에 반복적으로 재생된다는 정보만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