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의한 바람도 있고 자연에 의한 바람도 있지만 오늘은 자연에 의한 바람(風)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바람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다. 잔잔한 종류부터 집을 날려버릴 정도의 태풍 수준의 형태까지. 어디 강세(셈여림, 다이내믹)만 다양한가, 앞에 붙는 형용사나 아티큘레이션도 다양하다. 한글의 매력 중에 하나가 색깔 하나만을 가지고도 색을 표현하는 단어는 무수히 많다. 노란색을 예로만 들어도 무슨 노랑, 무슨무슨 노랑... 끝도 없다.
온도의 종류도 다양하다. 뜨겁고 따뜻함에서 차갑다 못해 살결을 도려낼듯한 칼바람까지. 어느 지역, 어느 나라에서 사느냐에 따라 느끼는 체감의 정도는 상대적이겠지만.
심지어 기분에 따라서도 달라지게 된다.
친구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비(물, 水), 모래(흙, 土), 먼지 등.
방향도 다양하다. 운이 좋으면 한쪽 방향으로 맞이하는 바람이 대부분이겠지만, 심할 경우에는 좌우 상하 대각선 앞뒤로 매섭게 귀찮게 한다. 그날은 머리에 굳이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속 편하다.
바람의 종류, 강세, 온도, 친구, 방향의 조합만 봐도 어마 무시한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다.
그 어떠한 조합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건 인트로와 피날레.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안 그래도 더운데 더운 바람까지 불기 시작하면 그만큼 불쾌한 것도 없고,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피하려고 우산을 꽉 부여잡고 가고 있는데 난데없이 아래에서 위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우산을 들고나간 나 자신이 더없이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추워도 마찬가지. 손발이 꽁꽁 얼 정도의 추위에 그 어떠한 잔잔한 바람조차도 노땡큐다. 입에서 욕 나오는 건 나만의 경우가 아닐 것이다.
[부산으로 향하던 달리는 무궁화호 기차 안에서]
그래도 생각지도 못하게 고마울 때가 있다.
약속시간에 늦었을 때나, 가파른 언덕길을 힘들게 오를 때 내 등 뒤로 불어오는 강한 바람. 바람을 타고 걸을 땐 우사인 볼트도 부럽지 않다. 뒤에서 누군가가 지치고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나의 등을 살포시 감싸 앉고 앞으로 밀어줄 때의 기분은 그야말로 왠지 모를 기쁨이 터져 나온다. 물론 간혹 가다가 정도가 지나칠 땐 목적지를 벗어나거나 속도에 못 이겨 넘어질뻔한 경우도 있다.
바람(風)은 나에게 그래도 조금은 더 고마운 존재다.
어디에서 시작돼서 다가오는지 모를 존재.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던 나쁘게 하던 시크하게 건들고 사라지는 존재. 그들에겐 과정만 있을 뿐. 내가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건 말건, 그들로 인해 어떤 상태이건 그건 오로지 나의 몫일뿐이다.
그래도 고맙다.
적어도 열 번 중에 한 번은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건 분명하다.
언젠가 한번 그 1에 해당되는 날이었던지, 부산 앞바다의 바다 냄새를 동반한 짜고 나에게는 살짝은 비릿하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며 기분 좋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