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igantes Yang
Nov 14. 2022
위암 검진대상
얼마 전에 헌혈을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총 6번의 헌혈을 했다더라.
확인을 해보니 2005년 군대에서 강제(?)로 한 헌혈이 마지막이라고 하더라. 2022년이 된 오늘날까지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꼴이다. 글을 쓰면서 한번 더 했으니 이번으로 총 8번의 헌혈을 한 셈이다.
30대로 진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별 탈 없이 잘 지내왔던 것 같다.
아, 29살이 되던 해에 약 석 달간 몸살로 시달렸었다. 자나 깨나 재채기와 기침은 멈출 생각도 안 했고, 콧물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나왔고, 자고 일어나면 모든 침구류는 콧물로 인해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아팠을 당시에 유럽에서 유학 중이었고, 유럽인들은 한국에서 처럼 감기에 걸렸다고 병원을 찾거나 약을 처방하는 일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아무리 독한 약을 사 먹어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이러다가 죽나 싶었다. 3개월 동안 옆에서 간병해준 아내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그 뒤로는 크게 아프진 않았던 걸로 기억된다. 그때 이후로 몸에서 그 어떠한 바이러스에도 견딜만한 항체라도 만들어냈는지, 적어도 한 번은 걸린다던 코로나에도 끄떡없었다. 현재까지도.
양치질을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지만, 단 한 번도 썩은 이가 발견된 적은 없었다. 일 년에 어쩌다 한 번씩 스케일링을 하러 갈 때면 의사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늘 동일하다.
이 정도면 이가 적어도 한두 개는 썩어있어야 하는데 굉장히 건강하네요?
자랑도 아니지만, 치과를 갈 때마다 부끄럽다.
나이가 들어서라고 하고 싶지는 않고, 그냥 게을러져서인지 몸이 이전 같지는 않다. 암만 배에 힘을 줘도 들어가지 않는 세대에 돌입해서인가, 확실한 건 몸이 예전 같지는 않다.
20대까지만 해도 운동을 제법 달고 살았다. 음악 전공생이 무슨 운동이나 하냐 하겠지만, 조깅이나 헬스, 농구, 줄넘기로 몸의 체력은, 약간의 과장을 한다면, 임꺽정이나 헤라클레스도 상대조차 안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의 내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내는 믿질 않는다. 그나마 나를 처음으로 만났던 잘츠부르크에서의 남편은 어디 갔냐며, 절대 같은 사람 일리가 없다고 한다.
이제는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고, 나이로만 따지면 아직은 젊지만 나름의 쉽지 않았던 세월에 지쳐서 그런지 운동에 대한 열정이 많이 없어졌다. 양쪽 다리를 삐어서 디딜 때마다 아파 죽겠어도 농구를 하러 나갔던 10~20대의 나는 이젠 없다.
이제는 40대에 들어섰다고 위암 검진대상이라는 편지도 받아보게 되었다. 친가 댁에는 남자들이 모두 안경을 쓴다는 것 빼고는 병으로 아파서 돌아가신 분들이 없지만, 외가댁은 할아버지부터 큰삼촌, 작은 삼촌이 모두 암으로 돌아가셨다. 심지어 이모부까지. 난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나에게도 가족력이 있다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그래서 매일같이 걸으러라도 나가라고 내 따름에는 고마운 잔소리를 한다. 물론 몇 번 나가다가 의지가 부족해서 못 나가기 일쑤이지만.
건강은 자랑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건강은 젊었을 때 챙기지 않으면 나이 들어서 어느 순간 몸에 이상신호를 줌으로써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건강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아무리 잘 챙겨도 아픈 사람이 생겨나는 거 보면, 살아있을 때 굳이 걱정하지 않고 그냥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올 거면 올 것이고 피해 가면 피해 갈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먹는걸 신경 안 쓸 수는 없다. 다만, 살면서 안 그래도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것들을 우리가 신경 쓰며 스트레스를 받고 살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정말 끝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는 내려놓기로 했다.
잘 먹고 잘 자자. 이것 만큼은 24시간 365일 중에 유일하게 양보 못하겠다.
아프면 제일 먼저 식욕이 없어진다고 했지만, 식사 때나 전후로 어마 무시한 식욕을 가지고 있는 거 보면 아직은 괜찮지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글을 쓰고 딱 일주일 후에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건강은 결코 자랑하는 게 아니란 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