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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Nov 12. 2022

이미 늦었음을 깨닫는 순간

식은땀

이미 늦었음을 깨닫는 순간


요즘 들어 제일 무서울 때가 있다.

바로 수업에 지각하는 것.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없었지만.


방학 내내 수업이 없다가 개강을 하고 나니

거의 매일같이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지방에 수업이 있는 날에는 첫차를 타러 수원역으로 향한다. 게다가 수업이 이틀 연속으로 있는 날에는 학교 근처에서 하루를 묵어야 한다. 거의 매일같이 하게 되는 로테이션이다.


어제도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니 이미 늦은 저녁.

아내가 사둔 피자를 저녁 삼아 정신없이 흡입. 내가 특히 좋아하는 슈퍼딜럭스. 멈출 수 없는 맛. 배도 찼겠다 다음날 또다시 지방에 가야 했기에 대충 소화를 시키고 일찍 잠을 청하고자 누웠다.


요즘 밤낮이 바뀐 탓에 잠을 잘 못 잔다. 몸은 피곤 지만 잠은 안 오는 상태. 어쩔 수 없이 어두운 방 안에서 유브를 켜게 된다. 아내가 깰까 봐 소리는 최대한 작게 한다. 다양한 먹방 콘텐츠부터 영화 리뷰, 다큐, 예능 할 거 없이 이것저것 돌려보다 보면 시간이 아주 잘 가고 어느덧 나의 정신은 어둠 속에 더욱더 또렷해진다.


밤에 잠을 못 자는 건 나에겐 흔한 일이라 어차피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어려서는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지금은 숙달된 조교답게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전날 아무리 늦게까지 깨어있었다 하더라도 최근까지 약속시간에나 수업에 늦은 적은 없었다.

 

알람 소리에 오늘도 눈을 뜬다.


시간은 새벽 4시 34분. 일어나야 하는 시간을 몇 분 단위의 시간 차이를 두고 2~3개 정도 맞춰둔다. 아무리 익숙해졌다 하더라도 아침잠이 많은, 그것도 깊이 자는 성향이라 아직도 나 자신을 믿진 않는다.


첫 번째 알람이 울린다. 어차피 두 번의 알람이 남았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람을 끄고 잠시 눈을 감는다. 결코 다시 잠든 건 아니다. 그렇게 믿고 다음 알람을 기다린다.


두 번째 알람이 울린다. 직 한 번의 기회는 더 있다. 이미 두 번째 알람을 듣고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직은 늦지 않았음을 알고 안도한 채 누워있는 상태라면 위험하다. 하지만 위험을 감지한다는 것은 아침잠에 깊이 취해있을 때엔 절대 알지 못한다.


세 번째 알람이 울린다. 이미 세 번째로 알람이 울린다는 것은 일어날 마음이 없다는 것. 사실 세 번째 알람 소리 따위는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몸도 아는 거지. 이놈이 어차피 일어날 마음이 없졌다는 것을.


이제는 양심상 일어나 볼까 싶어 시간을 확인한다.

내가 타야 하는 열차시간 10분 전이다.

이미 늦었음을 깨닫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초.

집에서 최소한 50분 전에는 출발해야 하는 거리.

아무리 번개같이 옷을 입는다 해도 절대로 성공 못한다.


고민에 빠진다.


첫째, 휴강을 하고 그냥 맘 편히 다시 잔다.

둘째, 바로 다음에 출발하는 열차를 탄다.


고민할 거 뭐 있나.

늦어도 가는 거지.


수업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휴강보다 처리하기 더 힘든 게 보강이다.


[새벽의 열차 안에는 인적이 드물다. 지방에 강의가 있을 때 자주 애용하는 카페객차]


예약해뒀던 표를 급하게 바꾼다.

10분 남았던 시간이 1시간으로 늘어났다.

대충이라도 씻고 출발할 여유가 생겼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스릴.

그 어떤 작전보다 빨랐던 두뇌회전.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긴장은 풀리고, 눈은 무거워진다]

후기.


내려야 하는 정류장 바로 전정 거장에서 깜빡 잠이 들었고 결국에는 내리지 못한 채 종점까지 타고 갔다.

한번 꼬이니 계속 꼬이 어느 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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