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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Dec 23. 2022

5,000원의 기억

5,000원의 기억


지금은 예편하셨지만, 군인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참 자주 다녔다. 그중에 양천구 목동이 두 번째로 오래 살았던 지역이었다. 나의 대부분의 초중고 학창 시절을 이곳에서 다 보냈다. 대학생 때엔 학교생활이 너무 즐거워서(?) 집에 자주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지만...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 열받는 게 뭐냐면, 20년 전 목동에서 살고 있던 집을 부모님께서 아직도 소유하고 계셨더라면 지금은 어마 무시한 값어치를 하고 있을 텐데 말이지. 당시 부동산에 관심이 전혀 없던 부모님께선 이사한답시고 집을 팔아버리셨다. 그렇다고 나라고 부동산 흐름을 잘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얘기를 하면 주변에서 모두가 하나같이 혀를 끈다. 쯧쯧쯧...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정말 말리고 싶은데, 생각할수록 짜증이...


뭐 암튼, 이 얘기를 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고.


이사를 앞둔 지 한 1년 전, 나는 이제 막 대학생이 되었다. 인파가 드물 때 외출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해가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서곤 했다. 오목교 지하철역에 가기 위해서는 집에서 도보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어야 했다.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정류장. 대부분의 동네 버스가 역까지 가긴 했지만 내가 그날 탑승한 버스는 100-1.


버스요금이 700원 하던 시절.


집을 나서기 전, 차비와 당일 식사비를 양쪽 호주머니에 챙겼다. 아직까지는 버스에는 교통카드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이라 현금을 챙기는 건 필수였다. 왼쪽에는 천 원짜리 두장, 오른쪽에는 오천 원짜리 한 장. 잠이 덜 깼는지 버스에 타자마자 나는 자신 있게 오른쪽 호주머니에서 오천 원 지폐를 꺼내서 투입구에 넣었다. 당연 천 원짜리를 넣었다 생각한 나는 300원의 거스름돈을 기다리며 운전기사 아저씨와 아이컨택트를 하려던 찰나,


5,000원짜리를 넣으면 어떻게 해 학생!!!


안 그래도 잔돈 부족한데 4,700원을 거슬러주면 잔돈 없을 때 책임질 거냐며 화를 내셨다. 자신은 잔돈을 줄 수 없으니 정거장마다 손님이 타면 그 돈을 대신 받으라고 하시고는 다음 정류장을 향해 출발하셨다. 이른 아침이라 버스 안에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고 계속되는 다음 정류장에는 손님 하나 없었다.


이제 두 정거장이면 오목교.


학생 어디서 내려!


마침 신호에 걸려 버스는 멈췄다. 화가 잔뜩 나신 아저씨에 의해 투입구에는 백 원짜리와 오백 원짜리가 소리를 내며 모이기 시작했다. 기분 탓이었는지 동전이 떨어지며 하나둘씩 쌓여가는 소리가 아저씨의 현재 속마음을 대변하듯 욕처럼 들렸다.


잔돈 안 받아가? 곧 내린다며!


운전기사 아저씨에 의하면 오백 원짜리는 비상시를 대비해서 아꺄둬야 했기에 달랑 두 개만 주셨고, 덕분에 양쪽 호주머니에는 백 원짜리 37개가 가득했다.


호주머니 속 동전의 무게 때문에 내 마음과도 같게 느꼈는지 몸과 마음은 무거웠고, 저는 죄인입니다... 소리를 내듯 걸음걸이마다 양쪽 호주머니에서는 그날따라 서글픈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른쪽에서 한번, 왼쪽에서 한번.


나는 여전히 잠에 취해 있었고, 양손에는 동전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오천 원 지폐 한 장이 머릿속에서 떠올랐고, 문득 그날의 기억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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