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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Feb 16. 2023

1의 반이 왜 1/2이었을까

이해력이 조금 부족했던 어린 시절

1의 반이 왜 1/2이었을까


초등학교 때 4학년 때까지는 산수에 대한 개념이 덧셈과 뺄셈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 말인즉슨 곱셈과 나눗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소리다.


어디 그것뿐일까.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접한 겉넓이 공식, 부피를 계산한다는 건 나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 번은 당시 내 짝꿍이었던 친구가 내가 가장 기초적인 문제들을 풀지 못한다고 자기네 반이 특이한 학생이 있다며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어디 모자란 친구 아니냐",라고 하셨다고 했다.


산수책에 나온 온갖 도형들. 삼각형, 사각형, 사다리꼴, 원형, 원뿔모양, 원기둥 등. 교과서에 그려진 그림들과 설명에 나온 길이는 다른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값을 구하라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기에, 나는 매번 빈종이를 꺼내서 설명에 나온 대로 실제 길이의 그림을 그리고 혹시라도 선생님께서 문제풀이를 시킬까 봐 수업이 빨리 끝나길 기다리며 수업 내내 고개를 숙이며 시간을 재고 있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릴 때면 내 몸과 마음은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변명을 해보자면, 5학년 1학기때까지 미국에서 살았었다. 그때까지 배운 산수라고는 3자리 숫자 정도 범위의 덧셈과 뺄셈, 가장 기본적인 곱셈과 나눗셈. 그리고 로마숫자 읽기였다. 귀국 후 4학년으로 복학한 나는(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미국이 한 학년 빨랐다. 나이 때문이었을까) 반배정을 받자마자 하필 그날 산수시험 중간평가가 있던 날이었다. 한글이 어색했던 나는 생전 처음 받아보는 시험지에 한번 당황하고, 알 수 없는 25개의 문제들을 보면서 두 번 당황했다. 결과는 100점 만점에 4점. 그것도 찍어서 맞았던 걸로 기억한다. 단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넓이 구하기, 부피 계산하기를 이해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문제는 이게 아니었다. 

집중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아이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생각을 하느라 집중을 못했다. 책을 읽으려고 펼치면 단어 하나에 꽂혀서 내용과는 다른 세계 속에 빠지기 일쑤였다. 모두가 암기과목이 쉽다고 했었지만, 나에게는 수학 못지않게 어려운 과목이었다. 고등학교 때 상황이 좋아지기 전까지는 몇 년도에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연결하는 건 도대체 왜 해야 하는지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사건이 일어난 것만 알면 됐지 왜 연도별로 정리를 해야 하는지 불만만 가득했고, 또다시 다른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태어났더라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나라면 저렇게 했을 텐데... 등. 온갖 잡생각으로 가득했다. 초등학교시절의 수업시간은 나에게 괴로웠지만 그 순간을 피하고 싶어 했던 마음이 간절했는지, 나의 몸은 교실 안에 있었지만 마음과 정신은 다른 세상에 있었고, 벗어났던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산수를 못하면 무시를 당한다는 어머님께서는 집에서 나에게 기본적인 사항을 가르쳐 주시곤 하셨다. 다만 내가 집중을 못했을 뿐. 또다시 다른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엔 1의 반이 왜 1/2인지 이해를 못 했다. 아니, 어려서부터 배우는 게 느렸고 어린아이게 3년이라는 시간이 길었던지 한국어까지 어눌해서 반 | half1/2 | 2분의 1이 같은 의미인지 모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었겠다 싶지만, 답이 눈앞에 있는데도 그 간단한 걸 이해하는 데까지 반년이 걸렸다. 이해를 못 하는 아이에게 어머니께서는 냉장고에서 사과하나를 꺼내오셨다. 한 개였다. 그걸 반으로 쪼개셨다. 두 개로 갈라진 하나를 가리키면서 이제 이 하나는 전체의 몇 개냐고 물어보셨다. 뭐지?... 난제에 부딪혔다. 맛있는 사과향이 나던 사과 한 개는 반으로 쪼개지면서 금방이라도 꿀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 안에 보이던 사과씨까지 계산에 넣어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한참을 고민한 나는 당당하게 두 개라고 답했다. 당연했다. 한 개였던 사과가 둘로 쪼개졌으니 당연히 나에게는 두 개였다. 


이번엔 귤을 꺼내오셨다. 한 개였던 귤을 껍질채 반으로 나누셨다. 어머니께서는 다시 하나의 반쪽을 가리키면서 이거는 전체의 몇 개냐고 하셨다. 뭐지?... 또다시 고민에 빠지고야 말았다. 사과때와는 또 다른 레벨의 어려움이 닥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귤껍질 속의 알갱이 개수를 까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 수가 있는 거지?'


깊은 고민에 잠겼다. 산수를 잘하면 귤을 까보지도 않고 껍질 속 알갱이 개수를 알 수가 있는 건가 싶었다. 사과를 반으로 쪼갰을 때와 귤을 반으로 갈랐을 때를 번갈아 비교하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답은 바로 눈앞에 있었지만 나는 반쪽짜리 귤을 들고 껍질을 까며 알갱이 숫자를 헤아리고 있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

그런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시던 어머니께서는 한 개였던 걸 반으로 나누면 반이 되지 왜 두 개가 되고 귤껍질은 왜 까고 있냐며 답답해하셨다. 나는 그 반개가 1/2을 의미하는지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다른 예시를 들었어도 아마 맞추지 못했을 거다. 나에게는 사과를 둘로 쪼갰으니 둘이서 먹을 수 있었던 거고, 귤을 나누면 몇 조각이 되었건 여러 사람이 조금씩은 맛볼 수 있겠다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눈앞의 답을 선택하는 대신 나눠먹을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고 하셨다. 

어렸을 땐 내가 정말 어디가 모자라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 나의 잘못을 두고서 꾸중을 하시던 어린 시절에도, 그 상황에서조차도 나는 내 주변 사물과 눈이 마주치며 혼자만의 재미있는 상상 속에 빠지곤 했다. 눈앞에 보이는 책은 몇 권인지, 제목의 글자 속 'o' (이응)의 개수는 몇 개인지, 짝수면 행복이 더해졌다. 점심엔 뭘 해주실까, 나가서 놀이터에서 놀게 해 주실까, 내일 학교 점심도시락 반찬으로 무엇을 챙겨주실지 여쭤볼까...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 거실의 텔레비전소리에서 나오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웃음이 터지다가 더 혼이 난적도 있었다. 


다른 세상과 소통하던 그 어릴 적 아이는 이제 없는가 싶지만, 아직도 단어 하나에, 어떤 상황 속에서 다른 세계 속으로 빠져드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굉장히 즐겨보는 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예술을 하고 있나 보다.


자기 이름과 부모형제 이름만 한자로 쓸 줄 알면 되고 돈계산 할 때나 은행에 갈 때 덧셈 뺄셈만 틀리지 않으면 사는데 지장 없다는 중학교 시절 수학선생님의 말씀이 문득 생각나는 하루였다.


1의 반이 1/2라고 한다면 나머지 반은 어디로 가는 걸까.

1의 반은 두 개의 1/2중 어느 것에 해당될까.


누구라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쓸데없다고 하겠지만, 뻔한 정답에서 뒷이야기 | behind story가 있지는 않을지 상상하고 또 옛 생각에 잠시 잠기며 오늘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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