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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Jan 02. 2023

할머니의 만둣국

그립구나

할머니의 만둣국


나에게 맛집이란 크게 다음의 두 가지에 해당된다.


음식이 맛있는가.

음식으로 인해 어렸을 적 그리워하던 맛이 생각났을 때다.


정말 이건 사람이 도저히 못 먹을 정도의 최악이 아니고서는 식당의 음식은 웬만하면 평균은 가기 마련이다. 물론 내 기준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짜장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어보면 당연히 비교를 하게 된다.


고객으로서 당연한 기대이겠지만, 맛은 없더라도 서빙이라도 친절하면 기분은 나쁘지 않다. 단순한 플레이팅 조차도, 이건 내가 집에서 막 차려먹어도 이것보다는 잘하겠다 싶을 정도만 아니면 받아들이고 먹는 편이다. 음식맛만 있으면 그만이라, 식당 안에서 많은 걸 기대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얼마 전에 가까운 친구와 방문한 남부터미널 근처의 만둣국 음식점이 있다. 정말 평범해 보이는 맑은 육수, 그리고 만두. 그 위에 고기 고명이 전부였다. 운이 좋게도 점심시간 치고는 자리가 있어서 바로 앉아서 주문을 하고 먹을 수 있었다.


눈이 번쩍 떠질 정도의 맛은 아니었지만 놀랄 정도로 너무 그리운 맛이었다. 어떻게 처음 방문한 음식점에서 이렇게 익숙한 맛이 날 수가 있었을까 매 숟가락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정말 티 안 나게 짧은 순간이었지만 울컥하게 만드는 맛이었다.


외할머니께서는 만두를 참 잘 빚으셨다. 그뿐이랴, 손주가 만들어 달라고 하는 건 다 해주셨다. 제육볶음이 먹고 싶은 어린 손주에게 5천 원을 쥐어주시면서 "가서 고기 좀 사 오니라",라고 하셨다. 초등학교 시절 5천 원이면 삼겹살을 배불리 먹을 수 있던 때가 있었다.


누가 봐도 대충 썰고, 대충 눈대중으로 간하고, 손에 집히는 대로 재료를 마구 넣는 것 같아도 결과물은 그야말로 맛은 제일(第一)이었다. 그중에 할머니께서 자주 해주시던 만둣국. 얼마 전에 방문했던 식당은 황해도식 만둣국이라고 소개가 되어있었지만, 외할머니는 마산분이셨다. 우연의 일치로 음식맛에서 그리움이 묻어났던 것 같다. 아무리 어렸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 맛을 잊고 살 수 있었단 말인가.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나와 형을 자주 돌보셨다. 한 번은 그런 일도 있었다. 아기였던 나를 어머니 대신에 씻겨주실 때였다. 나의 팔을 잡아보시더니 "인마는 씨름을 시켜야 한다",라고 하셨단다. 제2의 이만기가 될 놈이라고 하셨다(외할머니에 의하면  씨름선수 이만기 선생님은 당시엔 경상도의 영웅이었다고 한다). 먹는 것도 심상치 않았고, 덩치도 웬만한 아기는 넘어선 아이를 보고 하신 말씀이셨다. 시간이 지나 음악대학으로 진학한 손주를 보실 때면 아직도 씨름할 생각이 없냐며 아쉬워하셨다.


[남부터미널역 근처에 위치한 음식점에서 먹은 봉산만둣국. 개인차가 있겠지만 오징어순대 맛도 일품이다]


그렇게 접한 만둣국집은 나에게 그동안 잊고 살았던 그리운 맛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 주었고, 오래전에 소천하신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던 하루를 보내게 해 주었다.


진정한 맛집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런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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