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gantes Yang Jan 15. 2023

세월이 가면 어디로

세월이 가면 어디로


거의 20년째 음악을 하고 있다.

작곡을 주 전공으로 하고 있지만 노래는 정말 못 부른다.

그 증거로 대학교 때 시창청음 선생님께서 나의 시창을 듣고 하신 말씀이,


미안해.


선생님께서는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노래를 시키다가 사과를 해보기도 처음이라 했고, 그 뒤로 학기가 끝날 때까지 나에게 노래를 웬만해서는 시키지 않으셨다. 말 미안해서가 아니라 웃겨서였다. 부르는 나도 웃겼는데 선생님께서는 오죽했겠냐 싶다.


나름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귀로 들을 때나 해당될 뿐, 노래는 정말 못한다. 음치는 아니다.

...아니겠지?


거기서 끝이 아니다. 가사도 멋대로 개작한다. 일부러 그러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원곡을 항상 2% 부족하게 기억한다. 하도 가사를 조금씩 이상하게 부르다 보니 자꾸만 샛길로 빠지니, 옆에서 듣던 아내는 이제는 원곡이 뭐였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한다.


이제는 나도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대충 부른다. 개작을 넘어서 가사를 내 맘대로 넣어서 부른다. 물론 내가 이러고 사는지 아는 사람은 아내뿐이다. 도대체 왜 그러냐며 뭐라 하던 아내도 이제는 포기한 듯 즐기다 못해 따라 부른다. 틀린 걸 알면서도 은근 중독성이 있다고 한다.  


정말로 좋아하는 곡은 원곡의 가사를 부르려고도 하지만, 역시나 완벽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선율만 대충 부르면 분명 맞는데, 가사를 넣어 부르면 가사와 선율이 같이 끝나질 않는다.


세월이 가면 어~디로 흘러가~는~지~


뭔가 이상하다.


다시 선율만 불러본다.

분명 맞는데.

가사도 맞는 거 같은데.


세월~이 가~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아닌 거 같으면서도 맞는 거 같다.

합의점을 찾아 그냥 부른다.


아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가면 어디~로 흘러가는~지~잖아!


아 그렇네?


세월이 가면~ 어디~로


흘. 러. 가. 면!!!! 방금 불러줬잖아!!!


틀린 걸 알면서도 나 왜 세월이 (흘러 생략) 가면 더 맘에 들지?

아저씨라 그런가.


오늘도 웃는다.




*원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 - 이문세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의 만둣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