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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Dec 29. 2022

자면서 책 읽어주는 남자

굳이?

자면서 책 읽어주는 남자


물론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평소에 책을 잘 읽지 않는다.

묵은지를 즐겨 먹듯 책을 사놓고 며칠 혹은 몇 달을 그냥 방치해 두다가 읽는 경우도 있고

한 챕터를 읽고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다 싶으면 책꽂이에 영원히 보관하는 경우도 있고

결말이 궁금해서 도저히 참지 못할 땐 마지막 부분을 스스로에게 먼저 스포일을 하고서 읽기도 한다.


오늘도 책장에는 다 끝내지 못했거나, 사두고서 아직도 묵혀두고 있는 새 책들로 가득하다.

언젠가는 읽겠지... 하면서 또 새로운 책을 사러 갈 때면, 아내는 집에 있는 책부터 끝내시죠... 라며 구박을 준다. 


읽지도 않을걸 의미 없이 사지는 않는다. 


[비엔나의 어느 도서관: 책도 읽을 겸 방문했지만 책은 무슨, 사진 찍으며 놀다 왔다]


사서 바로 읽지 않는다는 거지 읽기는 한다. 첫 페이지를 시작하는데 까지 시간이 걸릴 뿐이다. 어려서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도 절판되지 않는 이상 사두는 편이다. 유독 로알드 달 | Roald Dahl 작가의 책을 좋아했다. 어려서도 책을 너무 읽지 않았기에 걱정을 많이 하셨던 부모님께서 이 작가의 책을 붙잡고 있는 어린 나를 보시고 마음을 놓으셨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즐겨 읽었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지금도 작가의 책 몇 권이 나의 책상 책꽂이에 꽂혀있다. 책을 보며 옛 생각도 하고, 책을 굳이 펼쳐보지 않아도 책 속 상상의 세계로 가끔씩 빠져들기도 한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나에게 크고 작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책들을 모아두는 취미가 생겼다.


어느 책이나 읽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감이 유지되기란 쉽지가 않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잘 나가던 내용을 왜 이렇게 풀어가지... 하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가장 속상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유독 자면서 즐겨 읽는 책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즐겨 읽는 책이 '있다고' 한다. 나도 몰랐다.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거의 매일 읽는다고 한다. 책을 읽고자 하는 갈망이라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다. 책의 제목인지, 책의 내용인지는 나도 모른다. 왜냐면 나는 자고 있으니깐.


'북'


'북북... 북'


잠든 아내를 밤에 깨우는 소리다. 가끔은 조용히 말할 때도 있고, 가끔은 탄성이 터져 나올 때가 있다고 한다. 평상시에 책을 즐겨 읽으면 말도 안 한다고. 왜 잠만 들면 책을 읽기 시작하냐고 한다. 

많은 종류들 중에 왜 굳이 영어 책이냐며 놀린다. '북 (영어로 Book)'.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책이란 의미를 가진 북 | Book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닌, 방귀를 말한다. 잠들어 있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읽기 시작한다.

잠들기 전에 굳이 책을 읽어주지 않아도 충분히 잘 잘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읽는다.

상대방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누가 책을 못 읽게 했냐며, 밤에만 읽지 말고 낮에도 제발 읽으라며

환경오염 좀 그만 시키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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