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입대를 하기 전만 해도 내게는 추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린 시절 객기였을까, 땅이 꽁꽁 얼어붙은 날씨에도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체육시간에 뛰어놀 정도였으니 말이다.
감기몸살에 걸려도 춥게 다녔다.
남들은 춥다고 내의에, 겨울용 양말에, 목도리를 목에 칭칭 감고 두꺼운 옷을 겹겹으로 하고서, 그 위에 따뜻한 잠바를 입고 나서도 춥다고 난리였을 때 외투를 벗고 나면 나를 감싸고 있던 건 반팔티 하나가 전부였다. 도대체 왜 그러고 다녔는지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군대에 있어보니 내가 그동안 겪은 추위는 춥다는 축에 들지도 못했다는 걸 한방에 깨달았다.
때는 바로 혹. 한. 기.
사람들이 유격을 두 번 할래, 혹한기를 두 번 할래 하면 나는 차라리 유격을 두 번 하고 말겠다고 하겠다. 당시 짬이 안됐을 때에는 조교들의 호루라기 소리(삑 삐 빅, 삑 비빅 삐 빅)만 들어도 며칠이나 악몽에 시달렸지만 , 지금 생각해보면 추위만큼 괴로운 것도 없단 생각이다. 꼭 혹한기 시즌이 다가오면 정말 말도 안 되게 추워졌다. 너무 오래되어 낡아버린 라디에이터는 틀기만 하면 곳곳에서 파손이 나서 물이 줄줄 새곤 했다. 도대체 왜 하필 한겨울에 눈이 매섭게 내리던 산속에서 왜 텐트를 치고 그 좁디좁은 공간 안에서 추위와 맞서며 벌벌 떨면서 지내야만 했을까 아직도 완전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당시 우리끼리는 우리의 주 적은 추위다 할 정도였고, 손발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고 습관처럼 내뱉으며 토요일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부대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보통 혹한기와 같은 큰 훈련은 월요일에 시작해서 토요일 부대 복귀 행군으로 마무리가 되는 긴 훈련이었다).
[내리기 한 시간 전만 해도 눈이 내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이걸로 끝났으면 처음부터 말도 안 꺼냈다.
29살이 되었을 때였다. 1월 연초부터 감기 몸살에 걸렸다. 추워 죽겠는데 몸살까지. 그것도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서러울 대로 서러운 시기였다. 몸살은 약 3개월간 지속됐고, 누가 수도꼭지를 잠그는 걸 까먹었는지 싶을 정도로 자나 깨나 코에선 24시간 내내 콧물이 흘러내렸다. 기침은 멈출 생각을 안 했고, 자면서도 재채기는 필수였다.
내 나름 극한의 추위를 겪어보고 심하게 아파보니깐 이젠 조금만 춥다 싶으면 무조건 두껍게, 따뜻하게 몸을 보호한다.
다시는 추위로 인한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
얼마 전까지는 견딜만했는데 눈이 한바탕 왕창 내리고 나서 설마 또 쌓이겠어했지만, 새벽에 나가보니 땅은 빙판보다 더할 정도로 미끄러웠고 차도 밤새 얼어붙었는지 차 문이 열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눈싸움을 좋아했던 아이는 더 이상 없다. 눈사람을 만들기 좋아했던 아이도 없다. 눈만 내리기 시작하면 눈을 치우러 나가던 군인 아저씨는 오래전에 제대하고 없지만, 이제는 추위가 무서워 오늘도 깔깔이를 껴입으며 벌벌 떠는 배 나온 아저씨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