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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May 06. 2023

추억 가득한 떡볶이

질리지 않는 음식

추억 가득한 떡볶이


어려서부터 떡볶이를 참 좋아했다.

적어도(내가 기억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처음으로 분식집에서 떡볶이라는 것을 처음 접해봤다. 사실 공식적으로 분식집에서 뭔가를 먹어본 게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6학년이면 양천구 목동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학용품 구입과 같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부모님께 용돈을 받을 일이 거의 없던 때라 현금을 들고 다닐 일이 없었다. 내가 살고 있던 지역에는 오늘날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김밥천국과 같은 분식집이 있지는 않았다. 아니면 내가 못 찾았을 수도.


당시에는 길거리 분식집이 흔했고, 떡볶이, 순대, 튀김, 어묵이 주된 메뉴였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떡볶이라는 존재가 있는 것도 나중에 알았기 때문에 갈 일이 거의 없었다. 당시에는 100% 가정식이라고 생각했지, 집 밖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일이다.


내가 처음 맛본 떡볶이는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가정식 떡볶이였다. 사실 볶음에 가까웠다. 그리고 정말 건강식 형태였다. 간 고기와 각종 야채를 기름에 볶은 후 얇게 썰은 떡이 듬뿍 들어간 형태. 그때까지만 해도 전국의 모든 떡볶이 맛의 기준은 어머니의 떡볶이였다. 어머니께서 해주신 떡볶이가 절대 맛이 없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건강하고 행복한 맛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친구들의 무리에 끼어 난생처음 먹어본 집 밖의 떡볶이는 정말 놀라웠다. 이건 절대 가정식이 아니었다. 음식에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렇게 나의 미각을 자극하는 것이었을까.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떡볶이와는 또 다른 세계였다. 어느 버전이 더 맛있었다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세계관이 다름에는 분명했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맛있는 떡볶이]


오늘날에는 거의 볼 수 없겠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문방구가 흔했다. 어느 동네나 가면 있던 조그마한 문방구는  사라지거나 줄어들었고, 지금은 다양한 학용품점이 생겼다. 기억을 해보자면 우리 동네의 문방구는 작은 단칸방 형태에 매우 협소한 곳이었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내가 다녔던 문방구는 어르신께서 운영을 하고 계셨다. 희한하게도 그곳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팔았었다. 각종 불량식품(학생들한테 만큼은 건강식품)도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떡꼬치와 정체를 알 수 없던 피카추 튀김, 그리고 핫도그. 아! 신호등 사탕과 아폴로 사탕을 빼놓을 수는 없지.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고 분말을 채운 빨대를 담배를 피우듯(어린놈이 담배를 피워봤어야 알지) 맛있게 하나씩 빨아먹던 그때가 생각난다. 놀라운 건 온라인에서 여전히 구입이 가능하더라.


조금 더 큰 문방구를 가면 더 다양한 음식들을 팔았다. 굳이 분식집에 가지 않아도 떡볶이와 어묵은 늘 있었다. 학교 앞의 문방구는 그야말로 초등학생들의 성지였다. 점심때 몰래 담을 넘어서 사 먹던 분식은 그야말로 추억 중의 추억이었고 집에서 가져온 점심도시락으로 배가 차지 않던 나의 배를 더욱더 든든하게 해 주었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접해본 튀김과 순대. 이전의 나는 도대체 뭘 먹으며 살아왔단 말인가. 군대에서 처음으로 배운 순대국밥을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진심으로 궁금 헤서 그러는데, 나 정말 뭘 먹고살았니? 그 맛있는걸? 전날의 과음을 해장하고자 찾았던 순대국밥집에서의 한 숟갈을 하자마자 바로 소주 한 병을 시켜마시면 치맥보다 더 황홀했던 조화의 기억.


지금의 떡볶이는 많은 변화를 거쳐서 다양한 형태로 접할 수가 있다. 고가 음식의 상징 중 하나가 되어버린 떡볶이지만 고등학교시절에만 해도 떡볶이 천 원어치와 튀김 천 원어치면 배가 터질 듯이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3년간의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버틸 수 있었다. 요즘은 얼마어치 주세요,를 잘하지 않는다. 메뉴판에 가격이 그냥 나와있다. 눈치 보며 굳이 3인분 같은 2인분을 요청할 필요가 없던 나의 어린 시절에는 주문한 양보다 늘 한 그릇 넘치게 받았었다. 정량을 팔기 위해 무게를 달지 않던 시절. 주인집 아주머니께서 그릇 위에 1인분의 떡의 개수를 헤아리지 않던 시절. 


내 기준에서는 적어도 떡볶이는 더 이상 값싼 음식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부담이 될 정도로는 아니어도 어디 그것뿐이겠냐만은, 안성탕면이 150~200원 하던 그때의 그 시절은 다시 올까. 물가에 따른 제품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끊임없이 오르는 반면, 과자봉지 속의 공기는 충격방지 때문인지 더 빵빵해지고 내용물의 양은 줄어들었다. 가격이 오르면 내용물은 적어져야 하는 원리인가.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예전에 비해 먹는 양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분명 예전과는 달라진 떡볶이의 양과 맛.


엽기떡볶이부터 국물 떡볶이, 궁중 떡볶이, 짜장 떡볶이, 크림 떡볶이, 치즈 떡볶이, 간장 떡볶이, 라볶이... 그 밖에도 정말 다양하게 많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클래식한 떡볶이가 가장 입맛에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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