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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Jun 23. 2023

잊고 살았던 웃픈 기억

잊고 살았던 웃픈 기억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물론 아내는 적당히 넣으라고 했지만) 김치찌개를 끓여 먹다가 미국에 거주할 때 자주 방문했던 한식당이 갑자기 생각났다. 


때는 초등학교 3학년. 미국에서 2년째 거주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엔 동네에 한인타운이 크게 자리 잡고 있을 때가 아니어서 한국 식당에 가려면 집에서 최소한 1시간은 차를 타고 갔어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한국 식당은 가족이 한 달에 최소한 한번 이상 방문하는 나름 맛집이었다.


김치찌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고 생각되지만 나는 한 가지 메뉴에 꽂히면 다른 메뉴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성격에 매번 같은 메뉴를 시켜 먹곤 했다. 메뉴판에 빼곡히 적혀있는 음식들을 일일이 볼 필요도 없이 그날도 어김없이 바로 김치찌개를 골랐다. 식당에 가면 항상 공깃밥에 김치찌개가 단지 좋았을 뿐이기에 다른 음식들도 먹어보라고 하는 가족들의 이해 못 하겠다는 말투는 항상 무시하곤 했다.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국밥 한 그릇 시켜 먹다 보면 옛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자주 있다]


김치찌개가 그렇게 좋냐며 아버지나 형이나 할 거 없이 내 앞에 놓인 작은 뚝배기에 숟가락을 넣곤 했다. 그럴 때마다 짜증을 많이 냈던 것 같다. 당시엔 내 음식에 누가 손을 댄다는 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어릴 땐 누군가와 나눠먹기를 죽어도 싫어했다며 가족들은 여전히 놀리길 좋아한다.


미국에서 거주할 당시 내 기억 속의 그 한국식당은 우리 가족의 단골 맛집이었다. 하두 자주 가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식당 주인도, 직원들도 우리가 오면 친숙하게 대해주셨다. 가끔은 서비스도 주셨다. 워낙에 잘 먹기도 했지만 나와 형이 잘 먹는 게 신기했는지 공깃밥도 추가로 그냥 제공될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온 가족이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각자의 음식이 순서대로 나오고 있었고, 나는 순서를 기다리며 김치찌개가 나오기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식사. 평소 같으면 이미 나왔을 음식이었지만 여느 때 없이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지나가는 홀 직원을 불러서 아이의 음식이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셨다. 주문을 받은 직원의 실수로 주문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을 전한 홀 직원은 빨리 주문을 넣겠다고 했다. 


뭐 잠깐 기다리면 되겠지 싶었다. 그래도 나오지 않는 김치찌개. 그리고 식어가던 공깃밥. 


이번엔 아버지께서 홀 직원을 불러서 주문한 음식이 왜 아직도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불쾌함을 표하셨다. 또다시 확인해 보니 여전히 주문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처음 우리의 주문을 받았던 직원을 불렀다. 한 번은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두 번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 식당에 인파가 몰릴 시간도 아니고, 여러 번 방문하면서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식구들의 식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나는 기다림에 지친 나머지 식욕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 


한번 화가 나면 진정한 사과를 받을 때까지 끝내지 않으셨던 아버지께서는 결국 식당주인을 불렀고, 식당주인은 김치찌개 값을 받지 않고 지금이라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아버지께서는 또 주문이 안 들어가면 어떻게 하겠냐 했더니 그러면 오늘 우리 가족의 식사값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냥 아이의 주문은 취소하고 김치찌개를 제외한 식사 값만 지불하고 나가겠다고 했다. 어머니께서는 그래도 먹고 나가자고 이번엔 제대로 나오지 않겠냐며 아버지를 설득시켰고, 식당주인과 직원은 정중히 거듭 사과를 하며 돌아갔다. 


그리고 나온 된장찌개.


그날 식당에서 폭발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갑자기 생각나서 이 이야기를 하다가 아내 앞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물론 식당 측의 연이은 실수가 애초부터 잘못된 거지만,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린 김치찌개는 된장찌개로 둔갑되어 나타났고,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도가니탕 한 그릇 먹어도 떠오르는 어렸을 적 추억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여전히 된장찌개보다는 김치찌개를 좋아했지만, 생각해 보면 된장찌개든 김치찌개든 맛만 있으면 된 거 아닌가 싶기도. 물론 주문이 잘못 들어가면 속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주문이 잘못 들어가도 크게 불만을 갖지는 않는 편이다. 살면서 식당에서 그런 경험을 몇 번이나 하겠나 싶다.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가고 싶었기에, 맨밥에 된장찌개를 억지로 넣었던 웃지 못할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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