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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Apr 01. 2023

차곡차곡 쌓여가는 기억

차곡차곡 쌓여가는 기억


누구나 최고로 좋은 기억과 안 좋은 기억 하나씩은 있을 거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하는, 꺼내고 싶지도 않은 최악의 기억이 있을 거다.


평상시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다가도 트리거가 될만한 그 무언가에 영향을 받으면 바로 반응이 오기도 할 것이다. 


나에겐 그런 특정 장소가 있다.

지역자체에는 아무런 악감정 없는 이곳. 어릴 때 시골에 갈 때 자주 방문했던 동서울터미널 근처. 물론 터미널은 강변역에 위치해 있지만, 이곳은 나에게 많은 기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그런 장소다.


정말 어쩔 수 없는 방문이 아니고서는 굳이 이곳을 거쳐가지도 않는다. 누군가 조종하고 있나 의심이 들정도로 순간 감정이입이 되어버린다. 그 정도로 힘든 기억이다. 지하철을 타고 생각 없이 지나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몰라도 지하철역 바깥세상과 나의 피부가 맞닿는 순간부터 나의 기억이 만든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마치 평상시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다른 세상이 공존하고 있는 것처럼. 영화 신세계 (2013, 박훈정 감독)의 메인 테마곡에서 나오는 피아노 반주와 같은 소리가 들릴 때도 있고, 베토벤 | Ludwig van Beethoven의 교향곡 7번 2악장이 흘러나올 때도 있다. 매번 다르지만, 이곳을 방문한 나를 위한 bgm 속에서 나는 걷기 시작한다. 마친 한 편의 누아르 영화 속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주인공이 아닌 지나가는 행인 1, 혹은 행인 2처럼. 


일 년에 어쩌다 한번 갈까 말까 하는 이곳. 그날도 지하철역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지나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다 보니 익숙한 누군가가 지나쳤다.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그 사람. 나는 단번에 알아봤지만 상대방은 나를 못 알아보는 듯했다. 사실 이제는 서로 왕래가 없기에 살면서 마주칠 일도 없긴 하다. 올해로 한 15년 정도 되어가는 듯싶다. 오랜만에 햇수를 세어봤다. 어쩌면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할 수도.


[2023년 3월, 커피 한잔하기 좋은 장소라 생각되었지만 글을 쓰면서 바뀌어버린 마음]


두려움의 존재는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이제는 모르겠다.


조그마한 가게를 차린 것 같다. 가게 안쪽에서 창문을 닦는 모습이 보였다. 근처 다른 가게 앞에서 청소에 정신이 없어 보이던 모습을 잠시 쳐다봤다. 인사를 해야 할까 고민도 했지만 한걸음을 떼기도 전에 트리거가 발동되었다.


중요한 약속이 있는데. 잠시 정신적 휴식이 필요했다. 카페로 들어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며 가슴을 조아오는 기분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이가 답은 아닌 것 같다. 몸에난 상처는 연고를 바름으로써 흉이 지기 전에 치료를 해야 흉이 지지 않지만 이미 오래전에 생긴 흉터는 그때를 놓친 게 아닌가 싶다. 새 살로 더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런 것 같다.


크고 작든 남에게 잘못을 하면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어있다고 믿는다. 어떠한 형태로든. 그렇다고 최악을 바라진 않는다. 똑같아질 필요는 없으니깐.


네가 좀 더 큰 사람이니깐 이해하렴.


주변 어른들이 당신도 다 겪으며 자라왔다며 쉽게 하는 말들.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 말일까 생각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 아무리 강하게 태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살면서 한 번쯤은 위로다운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인데.


나라고 안 겪어봤겠니. 다 그렇게 살아.


상대방한테 할 수 있는 얼마나 무책임한 말일까 싶다. 비슷한 경험들은 다 하고 산다. 사실이다. 그래도 누군가에겐 처음이란 게 있다. 받아들일 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게 처음부터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 생각된다.


언젠가는 마음 편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겠지. 글을 쓰며 머릿속을 정리하면 할수록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될 기억들이 하나둘씩 자리 잡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나를 괴롭히진 않는다. 어릴 때 강요받던 큰 사람 되기가 지금은 더 이상 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그 사이에 너무 많은 사람경험을 다양하게 해서 그런가.


어려서는 강한 척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순수했던 그 아이는 더 이상 없다.


견뎌내고 이겨내다 보니 감정적으로 쉽게 무너지지 않게 되었다. 견뎌내다 보니 안팎으로 견고해졌고, 이겨내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좀 더 이기적으로 바뀌었다. 나쁘게는 아니고 나를 좀 더 지키기 위해서랄까. 떨림은 없다. 불안함도 없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사람이름은 잘 기억 못 하는 편이다. 다만, 한번 본 얼굴은 거의 평생 잊지 않는다. 나에게 일어났던 좋은 기억과 반대되는 기억 모두 기억한다. 생생하게 기억한다. 좋든 싫든 넘쳐나는 추억보따리를 늘 달고 산다. 가끔은 꿈속에서 조차도 어떤 특정한 날의 기억 속에 서있는 나를 바라보고 따라다니며 관찰하는 관찰자 입장에 서있기도 한다. 스스로에게 내레이션도 깔아준다. 오래된 기억일수록 약간의 msg가 첨가되기도 하지만 그날의 오고 간 대화나 상황은 대략적으로 기억한다. 이래서 기억력이 좋은 게 싫을 때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은 여전히 마냥 기분 좋게 쉽게 향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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