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을 떠나야 하는 새벽 기차 안에서는 마음을 진정시킬 무언가가 필요하다. 잠이 한참이나 덜 깬 상태에서 새벽 첫차를 타야 한다면 분명 어딘가 멀리 가야 한다는 소리겠지. 핸디에 저장된 음악, 거울 속의 거울 | Spiegel im Spiegel. 장거리 여정에 자주 듣는 음악. 현대음악이지만 굉장히 조성적이고 단순함과 기본적인 음악적 소재로 절제되어 아침의 피곤함을 달래준다. 정적이고 잔잔함 속에서 나에게 편안함을 찾게 해 주는 몇 안 되는 아침의 음악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음악이 흐르는 아침에 눈을 감고 있다 보면 나의 영혼은 그 음악의 물결 어디엔가 행복이 가득한 채 떠돌고 있을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은 음악세계의 차원으로 유체이탈하여 넘어가있던 나를 다시금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 음악 속 미지의 세계로 빠져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클래식일 필요는 없다. 클래식은 나의 경우일 뿐. 목적지까지 10분이어도 좋고 2~3시간 거리가 되어도 크게 상관은 없다. 나만을 위한 음악 하나면 된다. 잔잔한 음악이어도 좋고 다소 시끄러운 음악이어도 좋다. 목적지까지 나를 편하게 해 준다면 그걸로 된 거다.
말소리가 없는(가사가 없는) 음악이면 더 좋다.
어차피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에 종일 지긋지긋하게 듣게 되는 게 말소리다. 직장에서나 특정 모임에서, 혹은 길거리에서나 내 귀를 괴롭힌다. 원하는 대화가 아니면 내 귀를 끊임없이 피곤하게 만든다. 지금 내 앞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상대방이 꼭 싫어서도 아니다. 잠들어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의 두 귀는 그렇게 하루종일 누군가의 소리를 담아내느라 피곤에 지쳐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지로 향하는 그 길만큼은 대화가 없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평온함. 그게 필요하다. 잠시라도 좋을 잔잔함. 그만큼 음악은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힘이 있다. 하루종일 버틸 힘을 준다.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부터 하루의 일과가 진정으로 시작된다.
나의 하루 일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는 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허용한다. 어차피 내릴 곳은 정해져 있다. 정거장 방송 따위는 들을 필요가 없단 소리다. 그 잠깐을 놓치면 안 된다. 아직 5 정거장 남았다. 잠깐동안 음악세계로 나를 맡길 시간은 충분한 듯하다.
오늘도 덕분에 힘을 낸다.
1. 스트라빈스키 | Igor Stravinsky: 불새 | Fire Bird
전곡을 듣는 것을 권하지만 마지막 부분의 Final Hymn 흘러나오는 호른의 매력적인 멜로디가 음악의 끝으로 어떻게 안내하는지 확인해 봐도 좋다. 폭발적인 에너지로 이끌어 가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면 강추. 길어봤자 3~4분이다.
2008년 루체른 페스티벌 | Lucerne Festival
지휘 클라우디오 아바도 | Claudio Abbado
연주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 Lucerne Festival Orchestra
*유튜브를 통해 마지막 부분을 찾고자 한다면 대략적으로 17:56~7 (영상 전체길이 21:29) 지점이 될 듯.
2. 말러 | Gustav Mahler: 교향곡 6번 3악장 | Symphony 6, 3rd Movement
말러를 접해보지 않았다면 다소 어려운 곡이 될 수도 있는 말러의 6번 작품. 개인적으로 말러의 작품 중 가장 선호하는 교향곡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중에서도 3악장이 말러 교향곡의 느린 악장 중 가장 아름다운 곡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의 교향곡 4번의 3악장이나 교향곡 5번의 4악장을 선호하며 가장 아름다운 악장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맞다. 교향곡 4번의 3악장과 교향곡 5번의 4악장은 처음부터 이미 선율과 화성에 매혹된다. 첫 시작부터 음악에 미친 듯이 빠져든 상태에서 기승전결이 있다. 경험자라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6번의 3악장은 처음 부분에서 들려주는 선율과 음악적 상황은 단순히 맛보기에 불과하다. 자꾸만 궁금증을 유발하며 자연스럽게 기승전결을 유도한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음악이 시작된 이상 끝을 보게끔 만든다. 왜 그런지 이해하려면 우선 교향곡 6번의 3악장을 먼저 들어보고 그다음에 1악장부터 순서대로 들어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지도. 참고로 말러의 교향곡 6번 교향곡은 장거리 용으로 자주 듣는다.
누구의 지휘던 크게 상관없이 다 훌륭하다. 그중에서 꼽으라면 게오르그 솔티 | Sir Georg Solti, 클라우디오 아바도 | Cluadio Abbado, 리카르도 샤이 | Riccardo Chailly 정도가 되겠다. 정명훈 지휘자의 해석도 나름 매력이 있다.
3. 쇤베르크 | Arnold Schönberg: 현과 하프를 위한 '녹턴' | Notturno for Strings and Harp
무조음악 | atonal music 혹은 음렬주의 | serialism 하면 떠오르는 작곡가는 대부분 쇤베르크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성음악 | tonal music 어법에도 훌륭한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그중 꽤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녹턴'. 쇤베르크 자신은 문자 그대로 조성적 중심이 없는 무조음악이 아니라, 좁은 의미의 조성(기능화성적 조성)을 거부했을 뿐이지, 넓은 의미의 조성 그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 음악을 들어보면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