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째: 다시 잘츠부르크

사랑하는 아내에게 |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추억하며

by Gigantes Yang

20. 다시 잘츠부르크... 그리고 이사 준비


짧고 굵었던 입시의 일정을 전부 소화하기에는 버거웠었는지 비엔나의 입시는 접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곳만 유일하게 지휘과를 준비해서 시험을 보려고 했었다. 어떻게 보면 지휘에 대한 나의 집착이었을 지도.


라이프치히의 음악대학 합격소식과 함께 잘츠부르크로 돌아갔다. 이제 어떻게 정리를 하고 오스트리아를 떠나는지가 큰 과제로 남아있었다. 그래도 너무나도 좋은 학교를 마냥 그만두고서 떠나는 것도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 일단은 휴학 처리를 했다. 학교 측에서 받아들여지는 휴학의 사유가 몇 가지 있었는데, 더 이상 생활할 돈이 없었거나, 군입대, 수술, 조국이 전쟁 중이거나, 여자의 경우에는 출산이었다. 생활할 돈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지만 증빙서류를 제출할 길이 없었다. 군대는 이미 오래전에 다녀왔으니 패스. 나라가 전쟁도 아니었고. 마지막의 사유는 아예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이전에 군 제대 이후에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를 겪게 되면서 수술한 이력이 기억났다. 어쩔 수 없이 당시 한국에 있었던 형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수술 후에 받았던 진료용 시디를 찾아서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이용해서 재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무사히 휴학을 신청할 수 있었다. 단, 1년만 가능했기 때문에 연장을 하려면 추가 서류가 필요했었다. 일단 1년 신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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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일 년 뒤에 무릎 재수술을 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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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ADJUSTEDNONRAW_thumb_1b9f.jpg 독일, 라이프치히의 연방 행정 최고법원 | Bundesverwaltungsgericht [2010년 11월 재방문, 눈이 내리던 날 법원 앞에서]


나는 독일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내에게 이 얘기를 하는 것뿐이었다. 아내의 원래 계획으로는 잘츠부르크에서 어학을 좀 더 하다가 언니의 졸업에 맞춰서 귀국하는 것이었지만, 잘츠부르크에서 지내는 동안 마음의 변화가 있었는지 베를린으로 가서 학업을 이어나가고 싶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니의 귀국을 몇 주 앞두고서 우리는 오랫동안 얘기를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떻게든 독일로 같이 가고 싶었던 나는 라이프치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얘기를 해주었다.


나의 느낌이었지만, 우선 상의도 없이 혼자 라이프치히행을 이미 결심했던 것에서 서운해했던 것 같았다. 나야 이미 라이프치히에서 살다가 왔던 거라 새로운 곳이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그녀는 라이프치히로 가면 아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것을 걱정했었던 것 같다. 내가 다녔었던 어학원의 등록 가격을 듣고서는 원래 목표였던 베를린으로 가겠다고 했었다.


언니의 귀국 후에 나는 아내를 잘츠부르크에 혼자 두고서 독일로 먼저 떠나게 되었다. 잘츠부르크 중앙역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녀는 나에게 편지와 초콜릿을 주면서 곧 만나자며 최대한 밝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줬다.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바라봤던 것 같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아내의 편지를 읽으며 잠시 동안 혼자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나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아내의 베를린 이사를 돕기 위해 아내를 만나러 잘츠부르크로 다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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