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이어지는 독일 입시

사랑하는 아내에게 |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추억하며

by Gigantes Yang

19. 이어지는 독일 입시_후반부


20190429_055311.jpg 독일, 라이프치히 중앙역 | Leipzig Hauptbahnhof [2019년 4월 재방문, 중앙역 좌측]


하루 뒤면 라이프치히의 음대 작곡과 입학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초대장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예전 같았으면 지원서 접수에서 이미 떨어져서 불합격 통지서와 함께 서류가 집으로 돌아오던가 했어야 했는데. 초대장도 없었고, 진행이 어떻게 되나 궁금했었다. 시험 전날 무작정 학교 입학처에 찾아가서 나의 지원 상태를 물어봤다. 입학처의 담당원의 얘기는 정말 황당했었다.


"너 시험 등록이 되어있고 내일 시험일정이 잡혀 있는데 연락 못 받았니?"


"아니요"


"그럼 시험 안 보겠네? 취소할까?"

당연 시험 보겠다고 했다. 일정과 장소를 받은 나는 빨리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준비한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이미 시험 전날 저녁 8시를 넘고 있었다. 이 학교에서는 4가지를 준비해 가야 했었다. 개인 작품 분석 발표, 현대 작곡가 작품 분석, 청음, 현대음악 피아노 작품 연주.


개인 작품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혼성합창을 위한 "만세 | Man Sae", 독립운동가들의 당시 상황을 표현한 곡이었다. 현대음악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하는 지인을 통해서 음대 도서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을 골랐다. 현대음악의 거장 중 거장이었던 죄르지 리게티 | György Ligeti 작곡가의 아방튀르 | Aventures. 당시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음악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없이 부끄럽다. 음원이 없었기 때문에 악보에만 의존해서 분석을 준비했다. 피아노 작품은 악보를 펼쳐놓고 쳐도 됐었기에 당일날 가서 치면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고, 청음도 어떻게 출제가 되는지 몰랐기에 그냥 가서 보면 되겠지 했다. 저녁 10시부터 시작된 분석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다음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던 음대로 향했다.


이날 시험에는 나를 포함해서 3명이 시험을 보러 왔다. 1차 시험으로 우리는 다 같이 한 방으로 들어가서 1시간 동안 작곡을 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제시되었던 10가지 주제 예시 중에 하나를 골라서 음악적으로 발전을 시키는 과제였지만, 그때의 나는 긴장을 너무 했었는지 10가지의 모든 예시에 10마디 정도 되는 길이의 풀이를 적었다. 내가 봐도 황당한 행동이었다.


2차 시험으로는 각각 한 명씩 방으로 불려 가 청음과 간단한 피아노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무난하게 통과했다.


마지막 면접시험은 거의 저녁이 다 되어서야 볼 수 있었다. 물론 순서도 내가 마지막이었다.

역시나 시험장소 안에는 3명의 교수님들께서 앉아계셨다.


개인 작품 분석이 시작되었다. 나는 선생님들께서 볼 수 있도록 악보 복사본을 드리고 발표를 시작했다. 독일어가 어색했던 것이었을까, 다들 아무 말도 없이 듣기만 하셨다. 별다른 얘기 없이 바로 현대음악 작품 분석으로 넘어갔다. 전날 벼락치기로 준비했기에 많이 부족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독일 사람들 답게 입이 무거웠다. 잘 들었으니 나의 합격 불합격을 논하고자 하니 잠시 바깥에 나가서 기다리라더라.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의 합격 불합격이 그리도 큰 일이었는지 약 30분 뒤에 나를 다시 불러 앉혔다. 합격이라더라. 뭐지?


나에게 합격통보를 해주신 교수님께서 축하한다며 악수를 권하셨다. 이어서 합격 이유를 알려주셨다.


"당신이 합격한 이유는, 말을 또박또박 천천히 해서 좋았어요"


많은 동양인들, 외국인들이 회화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급한 마음에 앞뒤 생각 안 하고 문법 다 틀려가면서 말을 하려고 하는 게 너무 싫고 불쾌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에는 말은 천천히 하지만, 정확한 의사 전달을 하고자 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는 것이었다. 뭐 감사한 이야기였지만, 작품 덕을 보지는 않았다. 말을 천천히 해서 음대에 붙어본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었을까 싶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어지는 베를린과 프라이부르크에는 시험을 보러 가지 못했다. 바이마르와 라이프치히에서 너무 많은 힘을 소모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베를린의 음대에는 예전에도 이론시험만 보고서 무단으로 다음 시험에 가지 않았던 이력이 있었다. 이번에도 똑같은 짓을 되풀이했다. 이번에는 불합격 통지서와 함께 경고장이 날아왔다. 무단으로 시험에 두 번이나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주일 뒤의 비엔나 국립음대의 시험도 포기를 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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