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번째: 독일행 준비

사랑하는 아내에게 |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추억하며

by Gigantes Yang

18. 독일행 준비... 그리고 독일 입시_전반부


나는 잘츠부르크에서의 삶에 적응을 못한 관계로 - 사실 지휘가 너무 하고 싶기도 했고, 사람들에게 너무 실망을 했었기 때문에 - 유학 초기의 도시였던 라이프치히로 다시 돌아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아내와의 만남을 시작하던 잘츠부르크에서는 이미 독일의 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이때만 해도 작곡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나의 모든 관심은 지휘에만 있었다. 하지만 잘츠부르크에서는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없을 거라는 나의 생각이 정리가 되면서 방학을 이용해 독일의 입학시험을 준비하고자 했었다. 독일로 다시 갈 수만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었던 결단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독일의 입학시험을 위해서 입학일정을 미리 알아본 뒤에는 시험 일정에 맞춰서 입학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이미 학교에 대한 정이 떨어졌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잘츠부르크만 떠나면 뭐든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독일의 지휘과에 시험 등록을 하기에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무작정 작곡과 입시를 보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에는 잘츠부르크를 떠나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있던 상태였다.


일정상 작곡과 시험을 볼 수 있었던 학교는 몇 군데가 없었다. 바이마르, 라이프치히, 바이마르, 프라이부르크, 그리고 혹시 몰라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프라이부르크는 일정상 가장 나중에 입학시험 있었지만 한 번도 가질 못했다. 인연이 아닌 듯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학교는 라이프치히와 바이마르였다. 사실 라이프치히의 음대에는 지원하기가 두려웠다. 지휘과와 작곡과 입학시험에 모두 낙방을 한 경험이 있었던 학교였다. 걱정을 뒤로한 채 작곡과에 입학 원서를 보내 놓고 가장 먼저 입학시험 초대장을 받았었던 바이마르의 음악대학 작곡과에 입시를 보러 기차에 올라탔다.


20190428_125237.jpg 독일, 바이마르 중앙역 | Weimar Hauptbahnhof [2019년 4월 연주차 방문... 나에겐 큰 실망과 기쁨의 동네]


바이마르에서는 너무나도 어이없게 시험이 떨어졌다. 우선 시험 일주일 전부터 시험장소가 바뀌었다는 편지를 몇 차례 받았었다. 마지막으로 받은 주소로 학교에 1시간 전에 도착했지만 시험 관련 안내문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시험 강의실 조차도 비어있었다.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나는 학교 측에 전화를 했다. 장소가 또 바뀌었는데 못 받았냐는 거다. 나는 구관에 있었고, 시험장소는 신관이라는 안내를 받자마자 뛰어갔다. 초행길이었기에 약 30분의 시간이 걸려서 시험장소에 겨우 도착할 수가 있었다. 이미 나의 면접 인터뷰는 지나간 상황이었다. 면접관 중 한 분께서는 내가 늦었으니 기회가 없다고 했었지만, 자초지종을 설명드리니 바로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해 주셨다. 면접관으로는 교수님 3분이 앞에 앉아계셨었다. 잘츠부르크 때에도 느꼈었지만 역시나 내 작품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셨다.


교수님들께서는 나에게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그룹 스터디와 활동을 많이 해야 하는데 나의 작품에서는 어떤 음악을 추구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고서 바이마르 학교를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질문을 받게 되었다. 내가 추구하는 작곡가가 누구냐고 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현대음악을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생각나는 음악가를 얘기했다. 바로 카를 오르프 | Carl Orff. 나의 대답을 들었던 교수님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온갖 실망과 어이가 없다는 교수님들의 표정은 나에게 정확하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에는 올 수 없겠다고. 음악적으로 학교의 방향과 맞지 않기 때문에 학교 입학은 허가할 수 없다며 불합격 통보를 그 자리에서 하더라. 더 이상의 질문은 의미가 없다며 정리를 하려고 하길래 학교에만 합격시켜 주면 내가 어떻게 적응하고 나의 음악관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지 보여 드리겠다고 했다. 간절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입학시험이라는 것을 만만하게 보지 말라더라. 누구는 그렇게 들어오고 싶어 하는 나름 명성이 있던 학교 입학시험에서, 붙여만 주면 보여주겠다는 말을 어떻게 하냐고 하더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속상함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만 가득한 채 라이프치히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너무 울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빈손으로 잘츠부르크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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