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아직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 우리가 만난 날을 추억하며

by Gigantes Yang

17. 아직은 서로 알아가는 단계


처음 만남 이후로 나는 그녀에게 문자를 자주 보냈다.

제일 많이 보냈던 단어는 sweety... 닭살 돋는 멘트라며 뭐라 했다.


며칠이 지나고 그녀와 학교 앞 미라벨 정원에서 만나서 얘기를 하게 되었다. 지난밤의 대화에 대해서였다.

내 마음이 일시적인 것이었다면 없던 일로 하겠냐고 묻더라. 난 그럴 수 없다고 했던 것 같다. 왜냐면 없던 일로 해버리면 그녀와 바로 끝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일단 서로 알아가기로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우리 둘이서 정원에서 얘기하고 있는 모습을 언니 포함 몇몇 한인 학생들이 학교 테라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더라. 둘이 사귀냐며....


언니가 당시 많이 힘들어하던 시기라, 언니 앞에서는 조심하자며 나에게 부탁했다.


어느새 방학 시즌이 되었다.

방학을 맞아 아내와 언니는 기숙사에서 나왔어야 했다(당시 오스트리아의 많은 기숙사는 방학 때 여름캠프, 호텔 등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방학 동안에는 방을 빼줘야 했었다). 이사를 간다며 도와달랬다. 기숙사에서 약 20분 떨어져 있는 수녀원이었다. 남자는 출입 금지였지만, 나는 그곳에서 거의 매일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니도 잘 몰랐을 것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게 되면 놀랄 수도 있겠지.


이사를 도와달라던 언니는 동생과 나를 버려둔 채 학교에 수업이 있다며 도망(?)을 갔다. 그녀와 단둘이 있겠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여자 둘이서 무슨 짐이 그리 많던지. 허리가 나가는 줄 알았지만, 당연 행복했다.


수녀원.jpg 잘츠부르크, 수녀원 [2017년 4월 재방문, 자매는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이제는 수녀원이 아닌 개인 사유지가 되었다]


이사를 마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잘츠부르크 외곽으로 나가서(공항 근처였던 것 같다) 초밥뷔페 집으로 갔다. 언니가 나 고생했다며 꼭 먹여서 보내라 했다. 난 나름 열심히 먹고 있는데, 왜 이렇게 안 먹냐며 내 앞에 초밥을 쌓아놓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잘 안 들어갔다.


어느새 밤이 되어 그녀를 수녀원으로 데려다줬다. 보내기 싫었다. 수녀원으로 가는 길은 낮이나 밤이나 365일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수녀원 바로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한동안 얘기를 하다가 수녀원으로 들어가던 언니를 보았다. 아직도 그 거리에는 가로등이 없기 때문에 언니를 우릴 보지 못했다.


나는 그녀와 더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었기에 그녀의 방에서 밤새 얘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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