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에게 |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추억하며
15. J_후반부... 그리고 마무리
난 바로 그를 차단했다. 연락이 와도, 길에서 마주쳐도 피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났었지만 그의 끊임없는 연락에 한 번은 만나서 해결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나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던 숙소로 와서 단둘이 얘기하고 싶다길래 난 공공장소에서 만나자고 했다.
학교 학생 라운지에서 그를 만나게 되었다. J가 들어와 내 앞에 앉았다. 주변에는 많은 한국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자리를 옮기자길래 싫으니 얘기하라고 했다. 나한테 왜 그랬냐고 물어봤다. 옆에서 듣던 말던 쏘아댔다.
내가 좋아서 그랬다더라. 놀랍지도 않은 대답이었다. 난 최대한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직도 내가 그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난 J의 성향을 문제 삼고 싶지 않았다. 난 관심 없는 이성에게 거절하듯이 우린 절대 이어질 수 없다고 했다. J는 그런 나에게 포기가 안되면 어떻게 하냐고 했다. 포기하게 만드는 건 간단했다. 어떠한 가능성도 보이지 않게 하면 됐었다. 그렇게 까지 상처를 줘야겠냐며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고 다른 데 가서 대화하자고 하더라. 미안하지만 현 시간 부로 우린 더 이상 만나서는 안 되겠다며 울고 있는 J를 뒤로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이후로 J와 개인적으로 만날 일은 없었다. 다만, 나에 대한 소문은 더 악화되었다. 동성애자라는 소문에 내가 J에게 먼저 이성적으로 접근을 시도해서 주변 교인들 험담을 했다고. 내 마음대로 안되니깐 J를 험담했다고. 심지어 내가 이단이라고 멀리하라더라. J는 내가 혹시라도 본인의 본모습을 떠벌리고 다닐까 봐 겁이 났는지 나에 대한 있지도 않는 소문을 퍼뜨리면서 본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혼자라고 생각했던 나는, 굳이 사실이 아닌 소문은 언젠가는 모두에게 제대로 밝혀질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정리를 하고 이 모든 상황을 무시했다.
기억은 정확하게 나지 않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교인들과 학교 동문들이 하나둘씩 나에게 다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가 하던 말은, 본인들도 J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고 모두가 다 피해자라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잘 안 하더라. 소문이 사실이 아니면 그만 아니냐며, 그동안 내 안에 쌓였던 상처는 무시하더라. 나도 냉정하게 받아들였다. 사람을 쉽게 믿을 수 없었기에. 사과한 건 고맙지만 난 그들의 진심을 믿지 않는다고. 정착 소문의 피해자에게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도 안 하고 그 말이 사실인 마냥 행동했다는 건 언젠가 또 그럴 있다고 반박했다. 나를 속였던 J보다는 상황을 급하게 정리하고서 본인들의 이미지만을 위해서 찾아왔던 동문들에 대한 - 한때는 그래도 친하다고 생각했던 - 배신감이 컸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때부터 사람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던 것 같다. 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내 안의 자아가 더 강한 철갑으로 둘러싸였던 것 같다.
미안하다며 다가온 동문이 또 있었다. 똑같은 말로 내 의사를 표현했다. 모두가 다 이기적으로 보였다. 본인들은 소문을 퍼뜨린 장본인이 아니라더라. 모두의 입에서는 같은 말이 나왔다. 놀라웠다. 그래도 미안했는지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내가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용서라는 게 쉽게 되는 게 아니란 걸 알만한 사람들이. 거듭되는 초청에 결국 며칠 뒤 종점에 위치한 기숙사로 찾아가게 되었다.
기숙사에서 나의 아내와 처음으로 가까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