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며칠 전 귀신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방송을 보다가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어려서 나는 겁이 굉장히 많은 아이였다.
무서운 것에 관한 내용이라면 뭐가 되었건 무서웠다.
공포 그 자체였다.
홍콩할매귀신
빨간 마스크
M
등등...
무서운 이야기를 들어도, 글로 읽어도 무서움에 관한 상상력은 어마 무시했고
무서운 영상을 접하게 되면 며칠을 잠도 못 잤다.
어른들 사이에 숨어서 숨죽이며 접한
[전설의 고향]을 보게 된 그날은 잠은 다 잔 거나 다름없었다.
다들 잠들었을 저녁에 어둠 속의 잠들어 있는 가족의 얼굴을 보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런 날은 혼자서 화장실도 못 갔다. 어둠 속의 사진은 왜 움직이는지...
그날따라 화장실을 왜 그리 가고 싶어 졌는지... 의문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정말 잊을 수 없는 1주일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그리고 왜 시작되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여름이었다.
잠들 시간이 되었고, 방에는 혼자였다.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10분이 지났을까...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왠지 모를 겁에 질린 나는 열린 문쪽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잠시 뒤에 한 여인이 걸어 들어왔다. 고개는 숙인 채.
분명 어머니는 아니었다.
창백한 얼굴에 바닥을 주시하고 있던 빨간 눈동자.
무릎까지 내려오는 머리.
사람의 형상을 한 그 존재는 내 다리가 위치한 침대 편으로 걸어가더니
침대 밑으로 사라졌다.
참고로, 그때의 내 침대는 다리가 1미터가 조금 안 되는 길이의 모양이었다.
덕분에 침대 아래에는 굉장히 넓은 공간이 있었다.
아래로 사라진 형상이 어디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였다. 소리를 지르던지, 방 바깥으로 뛰어가던지.
몸은 경직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목소리도 나올 리가 없었다.
이불을 머리 위까지 올리고서 온 몸을 미라처럼 이불로 감쌌다.
한참 동안 조용히 있었다. 한치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용기를 내서 이불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나의 움직임을 알아차렸는지 사라졌던 그 형상은 내 발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눈이 마주쳤다. 올라오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재빨리 이불로 얼굴을 다시 가렸다.
가려진 내 얼굴 위로 그 형상의 얼굴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침에 해가 뜰 때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뜨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단순히 무서운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악몽에 시달린 거라며
어려서는 다 그렇다고 하셨다.
이틀째 밤이 되었다. 전날과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문이 열리고, 같은 여인의 형상이 들어오고. 침에 밑으로 사라졌다가 올라오고.
이불속에 숨어서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밤을 새웠다.
셋째 밤, 같은 시간에 또 시작되었다.
여전히 그 형상은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고,
이번에는 용기를 더 내서 어머니를 불렀다.
"어... 엄마..."
목소리가 나올 리가 없었다.
엄청 더운 여름이었는데 희한하게도 내 입에서는 입김이 났었다.
월요일부터 시작된 이 현상은 금요일 밤이 되어서 굉장히 심해졌다.
이전까지는 이불로 가려진 내 얼굴 위에서 해가 뜰 때까지 아무 소리도 없이 응시만 하던 그 형상이
금요일이 되어서는 다른 패턴을 보였다.
시작은 같았다. 문이 열리고. 잠시 뒤에 들어오고. 침대 밑으로 사라지고. 내 위로 기어 올라오고.
다른 날과 똑같은 패턴을 보이던 그 형상은 마음이 바뀌었는지 내 다리 위에서 올라오다가 사라졌다.
나는 이때 무조건 방 바깥으로 뛰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침대 아래의 공간을 사이에 두고서 방바닥으로 다리를 내릴 수가 없었다.
다리를 내리는 순간 어둠 속으로 나를 끌어당길 것만 같았다.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열려있던 방문 바깥이 안전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목소리도 안 나오고, 경직되어 움직이지 않던 몸 때문에 포기를 하고서 다시 이불로 얼굴을 가리려던 그때에
그 형상은 갑자기 내 위에 나타나더니 내 얼굴을 양손으로 꽉 잡았다. 눈도 감지 못하게 했다.
웃더라. 소리도 없이.
난 그 자세로 토요일 아침까지 눈을 뜬 채로 날이 밝아질 때까지 밤을 새웠다.
일주일째 한숨도 못 자고 눈에는 다크서클이 심해졌다.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셨는지 어머니께서는 나를 병원에 데려다주셨다.
그 병원이 정신과 병원이었는지, 일반 병원이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의사와 얘기 도중에 알 수 없는 구역질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일주일 동안 먹은 게 거의 없었는데도 변기 안에 끝없이 토해냈다.
그러고서 밤새 나를 괴롭히던 그 증상은 사라졌다.
이유도 모른 채 시작되었던 나의 악몽 같던 일주일의 시간은 막을 내렸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직도 그 원인을 모르겠고 앞으로도 알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이후로 나는 겁이 없어졌다. '겁대가리'를 상실해버렸다.
공포를 잘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 드는 생각이지만
어린 시절 내가 겪었던 1주일이 가위에 눌렸던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