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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May 19. 2024

아 쫌!

제발...

아 쫌!


작년 말에 딸이 태어나고서부터 작은 거 하나에도 더 예민해진 것 같다. 

특히 위생적인 부분에서 신경을 안쓸 수가 없다.

글을 읽다 보면 참 유난이다 싶을 수도 있겠다.

이런 글을 벌써 횟수로 3번째 쓰는 것 같다.


날씨가 무척 더워진 요즘 바깥으로 외출이 아이에게는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집 근처 몰에 자주 가는 편이다. 남녀노소 할거 없이 많은 사람들로 즐비한 몰에는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다들 더위를 피해서 건물 안의 활동을 즐긴다. 

젊은 부부에서부터 어르신들, 반려동물, 그리고 아이들.


우리 딸도 유모차 안에서 얌전이 앉아서 바깥세상을 열심히 구경한다. 

엄마 한번, 아빠 한번 번갈아 가면서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고

여기저기 알록달록한 건물 안을 유심히 관찰하느라 정신없어하던 딸의 모습에

엄마 아빠도 딸의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며 덩달아 즐거워한다.


아빠가 밀어주는 유모차 안이 아늑했는지 어느덧 잠이 든 아이.

그 틈을 타서 엄마 아빠는 푸트코트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러 간다.

아이가 잠들어 있을 때 엄마 아빠도 잠시나마 휴식을 취한다.

엄마 아빠가 천천히 즐길 시간적 여유를 주는 효녀 딸.

이쁘게 잠들어 있는다.


몰에 돌아다니다 보면 화장실을 들릴 때가 있다. 

엄마와 아빠는 번갈아 가면서 화장실에 다녀온다.


아빠는 간단한 볼일을 보고 늘 그래왔듯 손을 씻는다.

그러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지나치는 걸 보게 된다.


소변기에 서서 왼손으로 핸드폰의 유튜브를 보면서 볼일을 보는 사람.

볼일을 마친 이는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옮긴다. 아마도 오른손잡이인 듯싶다.

손을 한번 바지에 닦더니 나간다.


문이 굳게 닫힌 한 화장실 한편에서는 푸드덕푸드덕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한참 동안 이어진 굉음과 함께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린다.

양쪽 손을 코에 가져다 댄 사람은 호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전화기를 받고는,


응, 지금 나가~


굉장히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한 그는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내 옆에서 볼일을 보던 초등학생으로 보이던 아이도 마찬가지.

볼일을 마친 아이는 양쪽 바지에 손을 쓱 닦더니 화장실 밖으로 달려 나간다.


이 모든 건 내가 손을 씻고 말리는 데 걸린 시간 안에 이루어진 광경이다. 

사실 화장실 안에서 타인이 무엇을 하든지 크게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다만 왜 손을 씻는 게 어려울까 싶다. 게다가 서서 볼일을 보면서 핸드폰을... 굳이?

짧은 시간 동안 놓쳐서는 안 될 영상이라도 있던 것일까.


찝찝한 마음에 화장실에서의 볼일을 마무리 짓고 나온 나는 

좀 전에 먼저 나온 이들이 한없이 다정한 모습으로 가족들과 함께 이동하는 걸 보게 된다.

아이를 안고 있는 아빠. 그리고 아빠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


[바나나콘 안전 표지판: 이날을 기억하고 싶어서 손을 씻자마자 한 장 남겼다.]


뭐 나한테만 피해 안 주면 그만이지 싶은 심정으로 여전히 잠들어 있는 딸과

아내와 함께 카페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이는 푸드코트. 그리고 멀리서 보이는 아까 화장실에서 봤던 남성.

무시하려고 해도 눈에 보이는 걸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뭔가 맛있는 음식을 주문하고 진동벨을 받는 그분.


카페에서 주문을 하고 진동벨을 전달받고 자리에 앉았지만

좀 전의 잔상 때문이었는지 울리는 진동벨을 보면서 그리 유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결벽증 하고는 거리가 멀고, 평소에 미친 듯이 깔끔을 떠는 성격은 아니지만

적어도 공공장소에서 만큼은 나와 내 가정을 위해서라도 청결을 유지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신경도 쓰이지 않던 일들이 아이가 태어나면서 더 예민해졌다.

화장실에서 굳이 불필요한 광경들을 자주 맞이하다 보니

몰에서 대여해 주는 유모차는 빌릴 생각도 안 한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위생적으로 무지한 사람들 덕분에

더 조심하게 된다. 


본인 집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뭔 상관이겠냐만은

공공장소에서 만큼은 다른 사람을 위한 최소한의 에티켓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성별을 떠나서 집에서의 습관이 바깥에서도 어쩔 수 없는 듯싶다.


사실 더한 건 지하철 화장실이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지 않은지도 오래고, 자리가 비어있어도 굳이 서서 간다.


고속버스 터미널의 화장실에도 가보면 더 가관이다.

다들 왜 소변기에 서서 한쪽 손으로 핸드폰을 하나씩 들고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을까.

궁금해서 힐끗 보면, 대부분 먹방, 정치, 주식 등등이다.

참 열심히들 산다 싶다.


뭐 이런 거 가지고 유난이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코로나 이후로 한 가지 다짐이 생겼는데

정말 바이러스 감염이 지긋지긋해지다 보니

정말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분명 누군가는 나에게 정말 유난이다 싶단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건강은 누군가 대신 챙겨줄 수도 없고, 아이를 생각하면 더 조심하고 싶은 아빠의 마음일 뿐이다.


1~2분 걸리지도 않는 거 잠깐이면 되니깐 손을 씻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그 손으로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손을 잡을 때나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의 손을 잡을 때

조금의 미안함이라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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