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딸의 돌잔치가 있었다.
딸의 첫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과 조촐하게 식사를 하는 자리를 가졌다.
흰 드레스에 흰 구두를 신고, 머리에는 이쁜 흰 리본을 한 우리 딸.
그 어떤 때보다도 가장 빛났고 이뻤다.
돌잡이를 하는 순서에서 단숨에 마패를 잡은 딸.
청진기도 있었고, 마이크도 있었고.
이모가 특별히 놓은 5만 원짜리 지폐도 있었다.
그 외에도 다양하게 놓여있었지만 유독 마패가 눈에 들어왔나 보다.
엄마 아빠는 속으로,
제발 마이크만은 잡지 마렴...
음악가이자 예술가로 살아가는 아빠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모르겠다.
쉽지 않은 길인걸 알기에.
물론 돌잡이란 것도 상징적인 행사일 뿐이지만 마패를 잡은 딸이 대견스러웠다.
사실, 모든 식사를 다 마치고 우리끼리 재미 삼아 돌잡이를 또 했었는데
청진기도 잡고, 법정에서 쓰이는 망치도 잡더라.
딸에게도, 모두에게도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되기를.
...
그렇게 행복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2025년 새해가 되었다.
하나의 챕터를 넘긴 듯, 한층 더 성장한 딸의 모습을 본다.
걷는 속도의 변화
우선 걷는 속도가 거의 뛰어다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웬만해서는 유모차에 타고 있지 않으려고 한다.
본능적으로 아는지 길에서는 내려달라고는 하지 않지만, 건물 내부에만 들어오면 내려달라고 난리다.
걷겠다고.
예전 같으면 안아달라고 했을 아이가, 이제는 걷겠다고 내려달란다.
엄마와 아빠는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딸을 쫓아다니는라 정신이 없다.
맘마
방학을 맞이한 아빠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침 8시 전후로만 되었다 싶으면 딸이 잠에서 깨어난다.
침대에서 한동안 혼자 중얼거리다가 칭얼대기 시작하면
옆에서 자고 있던 엄마가 아이를 침대에서 꺼내서 방문을 열어준다.
마루에 활보하다가 여전히 잠에 취해있는 아빠를 발견한 즉시 미친 듯이 걸어온다.
그리고 한마디,
아빠?
사실 아빠는 아이가 깨어있을 때부터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깨자마자 아빠를 찾을걸 알았던 걸까, 딸이 바로 옆에 올 때까지 눈을 감고 있는다.
아빠를 부르며 다가온 아이는 아빠 얼굴을 한대 치자마자,
맘마 맘마 맘마 맘마 맘마!!!!!
다 됐고, 밥이나 달라고 한다.
분유가 준비가 되었다 싶으면, 혹은 이유식이 잘 준비가 되었다 싶으면
알아서 마루 소파에 먼저 가서 기대어 서있는다.
아빠가 도착해서 마룻바닥에 앉으면 아빠 다리 사이에 앉아서 입을 벌리고 있는다.
그렇게 아빠 방학의 하루가 대부분 시작된다.
아빠의 의미 1
집안의 전등 스위치를 켜고 끄는 걸 알려줬더니
오른쪽을 누르면 거실 불이 켜지고 왼쪽을 누르면 꺼지는 걸 알아버렸다.
아침이건 점심이건 상관없이 일단 안아달라고 하는 딸.
그리고 어딘가를 가리키면서,
아빠?
거실등 스위치가 있는 곳으로 가라는 거다.
불이 켜지면 다시,
아빠?
불이 켜진 곳으로 가서 그림자놀이를 해달라는 거다.
그것도 잠시,
아빠?
자기 눈에 들어오는 모든 걸 차례차례 가리키면서 만지게 해달라고 한다.
물론 본인이 직접 가지는 않는다.
아빠에게 안긴 상태에서 손가락으로 지시만 한다.
'아빠'를 외치며.
아빠의 의미 2
마루에 앉아있다 보면 딸은 본인용 책장에서 책을 가져온다.
랜덤으로.
그리고는 아빠에게 가지고 오면서,
아빠?
책을 읽어달라는 소리다.
아빠는 자신의 다리를 툭툭 치면서 앉아라고 한다.
이제는 아빠가 마루에 앉아있다 싶으면 알아서 앉는다.
그러다가도 아빠가, '책~' 혹은 '책 가져와, 읽어줄게~', 만 해도
알아서 일어나서 책장에서 책을 가져온다.
내 말을 알아듣나? 신기하다.
그리고 책을 아빠에게 건네주고는 본인은 돌아서서 알아서 아빠 다리 사이에 앉는다.
Outro
딸하고 술래잡기를 할 때마다 아빠는 시도 때도 없이 딸과 눈만 마주쳤다 하면,
기쁨이 잡으러 갈까~
이 한마디면,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웃음소리를 내면서 알아서 자기 침대가 있는 방으로 서둘러 걸어간다.
그러고는 침대에 걸쳐서 고개만 파묻고 조용히 기다린다.
그렇게 있으면 자신이 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건가. 귀엽다.
방학이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할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