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의 나에 대한 기억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인 것 같다. 당시 어디에서 내가 찍혔는지, 무엇을 하던 중이었는지 사진을 보는 순간 생생하게 기억된다. 눈앞에 한 편의 영상이 틀어지는 것처럼. 물론 태어나고서 2~3살까지 사진 속의 나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사진은 나에게 정말 특별하다. 특별히 계획을 하고 사진을 찍지 않고, 찍히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찍고, 찍힌다.
사진을 찍을 때 특별히 잘 나오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웃기게 나와도, 울상을 짓고 있어도, 심지어 화가 나있는 상태여도 다 맘에 들어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라 할지라도 다 가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서 다시 꺼내보면 사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서 다시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 때 눈을 감고서 그때를 떠올리면 희미하게 생각이 날 때도 있지만, 사진을 꺼내보면 누군가가 재생 버튼을 누른 듯 사진 속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을 보고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때가 많다. 사진으로부터 시작된 추억 한 편이 끝날 때까지 내 눈과 귀가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핸드폰으로 쉽게 사진을 찍고 저장할 수 있지만,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사진을 인화해서 사진첩에 시간대별로 정리를 해두었다. 화면 속의 사진보다는 현상된 사진 속의 나는 한참 어렸다. 사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변화되어 시작된다. 가끔은 사진을 보고 있다 보면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목소리도 들릴 때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뇌에서 흘러나오는 기억의 여러 단편들이겠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사진 속에 내가 꼭 나오지 않더라도 다시 가보고 싶은 장소가 있을 때 사진을 꺼내보면 나는 이미 그 장소에 있다.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사진을 꺼내보면, 그 사람의 목소리와 대화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