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gantes Yang Jun 14. 2022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개인차가 있을 수도 있겠지.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평일의 대부분의 시간을 바깥에서 보낸다. 버스를 이용할 때도 있고, 지하철을 탈 때도 있고.

자가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운전하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아침에 울리는 무심한 알람 소리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기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침엔 시야 확보가 잘 안 된다. 그래서인지 자기 전에 습관처럼 늘 같은 자리에 벗어두는 안경을 금방 찾지 못한다. 평소에도 먹는 걸 워낙에 좋아하는 나지만 아침만큼은 잠에게 양보하는 편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서 완전히 잠에서 깨야 하는(이제는 진짜 일어나서 씻지 않으면 늦겠다 싶을 때) 순간 사이의 잠을 최대한 즐긴다. 그 순간을 놓치면 하루 종일 억울하다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평소에 집을 나서는 시간은 대략적으로 오전 7시, 빠르면 오전 5시다. 서울에 일이 있으면 대체적으로 늦게 나가는 편이고, 지방에 볼일이 있으면 전날 저녁에 내려갈 때도 있지만 대개는 일찍 나가는 편이지만, 결국에는 1~2시간 차이일 뿐이지 이렇게나 저렇게나 할 거 없이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선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일터까지의 거리는 다양하다. 1~2시간이 걸릴 때도 있지만 4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함께하는 몸의 신호는 정말 다양하지만 크게는 크게는 큰 것(大)과 작은 것(小)이 대부분. 그 외에는 대부분 소리 없는 아우성(정말 드물게 화가 나서 소리가 격한 경우도 있다. 소리의 예: 왜! 뭐!), 장음(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배속을 비우고 타기 때문에 여러 장음을 겪곤 한다). 인간은 참을성을 타고난 유일한 존재라고 했던가, 극단적으로 예외적인 상황들을 제외하고는 웬만해서는 티 내지 않고 목적지까지 참을 수 있다. 문제는 그 극단적인 경우가 발생할 때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함께 이동하는 내 옆자리 사람을 당황하게 할 만한 소리나 장음도 아니고 이동 중 갑작스럽게 나를 찾아오는 크고 작은 손님으로 인한 당황스러움에 처함으로써 극단적인 상황에 높인 나에 대해서 말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같은 거리도 평소보다 더 멀게 느껴질지라도 도착만 할 수 있다면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에 가서 해결하면 그만이다.


문제라고 한다면 문제일 수도 있고 생각에 따라서 그게 뭐가 문제가 되냐 할 수도 있을 수도 있다. 일반적인 방문 목적을 생각한다면 화장실에서 나 말고 다른 누군가 무엇 때문에 이곳을 방문했는지 크게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잔향을 분석하면서, 아 이 사람이 방금 전에 무엇을 먹었구나, 생각하면서 굳이 분석을 하지도 않는다. 내 볼일이 우선이기 때문에. 다만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그 이후의 상황이다.


화장실은 출입국 사무소가 아니기 때문에 내 방문 목적은 오로지 나만 알고 있으면 된다. 생각보다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우리가 아는 그 일부터 해서 거울을 보러 온 사람, 금연이라고 아무리 써붙여놔도 이곳을 안개로 자욱하게 만들고 떠나는 사람. 일주일에 한 번은 수원에서 첫차를 타고 지방을 내려가는데, 그때마다 화장실에 가보면 부분적으로 샤워를 하는 사람, 양치하는 사람, 사연은 모르겠지만 밤새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는 사람. 이렇게 다양하다. 정말로 이러한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본인의 방문 목적을 달성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을 씻지 않는다.  


집에서 작업하는 내 방의 상태를 보여주고 싶지만, 그래야 믿겠지만, 나는 정말 주변 환경이 어지러워서야 작업이 잘되는 편이다. 깔끔하게 정리정돈을 해놔도 며칠도 안 걸려서 다시 어지러워진다. 하지만 내 몸만큼은 청결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손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하지만, 더운 여름에 아무리 씻어도 단무지 썩은 내가 날지라도 바깥에 다녀오면 꼭 발을 씻는다.  결벽증이 있을 정도로 깔끔을 떠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얼굴, 내 몸을 만지는 내 손만큼은 가장 깔끔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바깥에서나 집에서나.


배가 아프고 몸에 쌓인 물을 빼내는 건 인간의 매우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다. 소화된 것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손을 씻는 건 자연스러운 행동이고 당연하다고 배워왔다. 운전이 익숙해질 때쯤 깜빡이 정도는 간단하게 생략하고 옆 차로를 들어가다가 발생할 수도 있는 사고 현장을 목격한 게 아니기 때문에 굳이 그 특정 인물을 붙잡고 사고를 방지하려고 신경 쓰지는 않는다.


지하철과 버스와 같은 장소에는 하루 종일 무수히 많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하다. 양쪽으로 달린 손잡이는 하루 종일 많은 사람들을 지나친다. 세계에서 잘 나가는 유명인사 보다도 많은 사람들과 접촉을 하며 악수를 한다. 코로나가 터지기 이전에 한 번은 누군가가 지하철에서 입을 손으로 막고 재채기와 기침을 동시에 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함이 몸에 베여있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그런데 그 손으로 바로 손잡이를 잡더라. 나도 그 누군가의 범주에 포함이 되겠지만, 누구를 거쳐갔을지 모를 다양한 손잡이들, 엘리베이터의 층 번호들에게도 생명이 있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멸종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될 때가 있다.


우리는 굳이 침을 뱉지 않아도 상대방과 말하는 도중에도 우리의 입에서 불순물이 터져 나온다. 일부러 하지 않아도, 조심하려고 해도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우리의 손은 잠들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경험을 한다. 만지고, 느끼는 단 두 가지 행동만으로도 다양한 경험치를 쌓는다. 모두에게 자신만의 청결의 기준이 있을 것이고 존중하지만, 하루 종일 그 고생을 한 두 녀석들을 위해 조금은 깔끔하게 유지를 해주면 어떨까.


외식도 자주 하고 영화관에도 시간만 허락된다면 자주 가는 편이다. 더하면 더했지 이곳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손을 씻지 않는다고 내 손에 묻어있는 무엇인가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병균을 옮기지는 않는다. 여러 방면으로 기회를 줄 뿐이지. 영원히 헤어져야 할 것만 같아 맘이 아플지라도 연인과의 인사를 뒤로 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잠시 동안 헤어졌던 연인이 세상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손을 잡을 때 길게도 말고 딱 3초간 선한 의심을 해보길 바란다. 우리 아이의 아빠가 손은 씻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아이의 작은 손을 잡아주는지 한 번쯤은 의심을 해보길 바란다.


지금까지는 남자화장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얘기지만, 형태만 다를 뿐 사람일은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일어난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던 사람이 나를 바라보며 세상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화장실을 나왔다. 지금 나의 손을 잡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서 비누향이 나지 않는다면, 적어도 촉촉하지 않다면? 영화관에 나란히 앉아  팝콘을 나눠 먹을 수 있겠는가.


몸의 더러운 일부와 헤어지고 그 이상의 만남을 손에 들고 나오는 이유는 뭘까.


하고 싶은 얘기를 실컷 했지만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청결의 기준은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깔끔함의 기준이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판단은 개인에게 맡기고 싶다. 나를 위해서이기보다는 상대방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무리 아닌 척 해도 결국에 몸 어딘가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는다.


언제부턴가 지하철의 손잡이를 잡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밀당의 귀재도 어긋나는 작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